하와이를 다녀온 여행객들의 클리셰가 니가 가라 하와이, 라면

모로코를 다녀온 여행객들의 클리셰는 마라케시에서 길을 잃다 혹은 페스에서 길을 잃다, 따위가 아닐까.


평소 여자치고는(?) 길눈이 밝은 편이라는 말을 곧잘 들어온 나로서는 마라케시나 페스가 과연 어떻길래, 호승심을 불러 일으키는 여행지가 아닐 수 없었는데, 로커스 없었으면 좀 헤맸을 것 같지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위 아해는 닭꼬치(35디르함), 아래 아해는 양꼬치(45디르함). 라바트만 못해도 양고기 맛이 참 좋습니다




페스에 목요일에 도착하여 목요일 밤, 금요일 밤 이렇게 이틀을 묵었는데, 

수크 내 상당수의 가게들은 물론, 가죽 염색 공장 - 김원장한테 나 몇 달전에 페스 여행 정보 모으다가 tannery란 단어를 처음 알았다? 하니까 김원장 왈 자긴 지금 나한테 처음 듣는다고 ㅋㅋㅋ - 마저 금요일은 쉰댄다, 여서 태너리 탐방은 토요일로 미뤄두고 금요일 낮에는 그냥 심심풀이 땅콩으로 우리끼리 태너리 찾아 삼만리를 해보았더랬다. 수많은 삐끼들을 잘도 물리치고 거침 없이 나아가다가 전통 의상을 멋지게 차려 입은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 한 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 아저씨 인상이 꽤나 좋아서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답을 하고 있더라. 


이런 저런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 받다가 아저씨가 그래서 지금은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묻길래, 뭐 딱히 가려는데는 없고...(여전히 의심 모드) 하니까 아저씨 왈, 혹 태너리에는 안 가보냐고. 일반적인 가게들(의 테라스)은 태너리 보여주고 입장료를 받는데 그거 다 뻥이라고. 당근 무료라고. 그러니 혹 지나가다 태너리 구경하라고 호객하는 놈들 있으면 다 무시하라고... 익히 알고 실천 중이었던 이야기를 열심히 해주시더라. 그러면서 본인이 무료로 올라갈 수 있는 한 테라스를 알긴 하는데, 마침 그 쪽으로 지나갈 예정이니 관심 있으면 따라오라고 하는 순간, 아저씨의 친절하면서도 쿨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흔들렸던 모양이다. 


아 그래요? 그러면 저도 그 쪽으로 함께 가볼까요? 하면서 앞서 가던 김원장을 부르려는데 그 순간 그 아저씨 입에서 "참, 나는 학교에서 OO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어쩌구 그런 비슷한 문장이 나오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 아 이건 인도에서나 이집트에서나 그리고 모로코에서나 한 글자도 벗어나질 않는 레퍼토리 아니던가. 그 말 듣자마자 아저씨 말을 딱 끊고,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산책하던 중이었으니 가던 대로 갈께요. 어쨌든 고마워요, 하고 서둘러 빠이빠이 헤어졌다. 그 길로 갈림길에서 아저씨와 헤어진 후 김원장한테 완전 깜빡 넘어갈 뻔했던 이야기를 전하며 낄낄 거리다가 문득, 아저씨 몰래 아저씨가 알려준 골목으로 가봐야겠다 싶어 다시 뒤돌아서니,


아놔


아저씨가 골목길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우리가 다시 돌아오나 지켜 보고 있다가 내가 휙 뒤돌아서는 순간 쌰삭 숨어 ㅋㅋㅋㅋㅋ  

아 나 또 호갱될 뻔 했네. 오늘은 작전상 여기서 후퇴한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마시기가 아까웠던(그러나 글만 이렇게 쓰고 실제로는 후르륵쩝쩝 다 마셔버린) 예쁜 커피


페스 오렌지 주스도 참 맛있다. 하지만 어디서나 유효한 법칙. 잔돈을 준비하고 먹자 ㅋㅋㅋ










어째 오늘은 좀 파래 보이는가?


이 문을 경계로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펼쳐진다. 마치 폴과 니나가 된 듯한.


이 날 저녁은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오늘도 모로코에 있는 동안 1일 1양고기를 하겠다는 김원장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각자 고기를 뜯는 동안 블루 게이트에는 밤이 내리고.

BGM으론 불멸의 히트곡인 아잔. 알라후 아크바르. 좋구나 좋아. 







사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이 떠난 태너리였지만, 그래도 페스 왔으니까 한 번은.





참고로 체크인시 숙소에서 태너리 관광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묻길래 필요없다고 우리끼리 볼 거라고 하니까, Very Good ! 하면서 그럼 태너리 테라스까지 안내해 줄 사람 한 명 붙여 주겠다고, 우리 부부 거기까지 데려다 주는데 10디르함만 지불하면 된다고 하길래, 둘이 10디르함이라니 너무나도 저렴해서 3번이나 재확인 후 오케이 하고(내가 영 믿지를 않으니까 숙소 서비스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우리가 지불하는 10디르함 외에 숙소 측에서 얼마간 지원한다고 했다) 토요일 오전에 숙소 통해 소개 받은 아저씨를 만나 따라 갔다. 

숙소에서 소개했으니 이 아저씨야말로 전날 삐끼 아저씨가 말한 그 무료 테라스라는 곳으로 데려가나 싶었는데, 이 아저씨 또한 우리를 한 가죽 공예품 매장 건물로 안내했고, 그렇다 보니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매장 직원에게 토스되어 그의 안내로 테라스에 올라 (이미 알아온 가죽 염색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우리 만의 구경이 끝나자 어쩔 수 없이 그 직원의 한국어 "낙타 가죽, 잠바, 가방 있어요"를 들으며 약 5분 정도 물건들을 보는 척 하면서 아예아예 호응해주다가 최대한 부드럽고 신속하게 탈출했다. 안내를 맡았던 아저씨는 이제 아르간 오일 매장 구경할래? 라고 물었고 우리는 아니 됐어, 하고 그 길로 바로 헤어졌다는. 사족으로 10디르함이 없어서 20디르함을 줬다(이 동네서는 대체 거스름돈이라는게 없으ㅋ). 돌아오는 길, 김원장 말로는 이런 식이라면 숙소에서 뭐 따로 더 지원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다고. 오히려 (잠재적 구매 고객인) 우리가 가죽 제품이라도 하나 사면 숙소 주인이 거기서 몇 프로 떼어먹는 구조가 아니겠냐고 하더라. 

 

사실 아래처럼 더 큰 태너리에서, 더 제대로 된 방향에서,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기도 했지만


여보게. 그깟 욕심 내려놓고 오렌지 주스나 마시고 가게 냉수 먹고 속 차리게



모로코에서 몇 밤 지낸 뒤 기억에 남은 것들


- 생 오렌지 주스, 현란한 새 울음 소리, 양 갈비, 유럽에선 못 볼 수크의 활력

- 멕시코 칸쿤에선 여기는 미국애들의 놀이터구나 싶었는데, 모로코에 와선 딱 그런 느낌. 여기는 유럽애들의 놀이터구나. 

잘 살고 세련된 터키와는 분명 차이가 나며, 흔히 비교되곤 하는 이집트보다는 유럽 물 많이 먹은 듯.

소소한 사기와 짜증은 뿌리칠 수 없을지언정, 별 거부감 없이, 큰 충격 없이 이슬람의 멋진 문화를 접하고 싶다면 난이도에 따라 터키-모로코-이집트를 추천(이 세 나라에 비하니 이란이나 예멘은 어떤 면에서 다소 하드코어 ㅋ)


페스 메디나 약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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