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예전 같았으면, 저가항공을 타고 마라케시 공항에 내리면 당연히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광장에 내려서 예약해 온 가까운 - 무거운 배낭의 압박과 다음 이동을 위한 교통편을 고려할 때 중심부에서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한다 - 숙소를 찾아가거나, 혹은 저렴하고 깨끗한 곳으로 소개하겠다는 삐끼의 입질에 낚여 숙소로 끌려갔을 것이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마라케시에 머무는 동안 한나절 시간을 할애해 직접 기차역을 '걸어' 찾아가서 다음 구간 이동을 위한 2등석 좌석을 미리 줄 서서 예매하고는 큰 일이라도 해낸 듯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을 테고.


그러나 이젠, 김원장이 선호하는 사양의 숙소를 미리 (나름 심혈?을 기울여) 예약한 뒤, 공항에선 숙소에서 보내준 비싼 픽업 차량에 바로 올라타고, 친절한 숙소 주인장에게 우리 이 날 기차 타고 여기에서 저기로 가고 싶은데 대신 예약 좀 해줄 수 있겠니,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압둘이 전날 저녁 우리 대신 역을 찾아가 예매를 해 온 티켓을 아침 먹으면서 편히 받아들고, 압둘에게는 웃으며 팁을 날리는 아줌마 아저씨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압둘에게 미리 물어본 바, 편안함 면에서 1등석이 2등석보다 훨씬 낫고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1등석으로 할까나, 하는 아줌마 아저씨 말이다. 거기에 더해 체크아웃하고 기차역으로 갈 때 타고 갈 택시도 좀 알아봐줘~ 하고.  




마라케시-라바트 기차


모로코 철도청 ONCF 홈페이지 http://www.oncf.ma/Pages/Accueil.aspx (인터넷 예매는 안 되어도 시간표와 가격 정도는 알 수 있다)

해당 구간의 경우 대략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며 소요 시간은 4시간 25분이고, 내 경우 양측 숙소의 체크인/아웃 시각을 고려하여 마라케시에서 10시 45분에 출발, 라바트(Rabat ville)에 15시 10분에 도착하는 열차를 선택했다.  

2등석은 127 디르함/인, 1등석은 195 디르함/인.

2등석은 지정 좌석이 따로 없고 에어컨이 안 나오며 한 컴파트먼트에 4인씩 마주 보는 구조로 8명이 탑승하며

1등석은 지정 좌석제로 에어컨이 나오고 한 컴파트먼트에 3인씩 마주 보는 구조로 6명이 탑승한다.




마라케시 숙소 미덕 중 하나는 원하는 장소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제는 4층, 오늘은 3층.




메뉴 역시 매일 조금씩 바뀐다고 하더니 정말이네 :) 



김원장, 모로코에 와서 김집사로 이직


체크인 할 때도 마중 나와주더니 체크아웃 할 때도 토니와 (우리 짐을 짊어진) 압둘이 함께 배웅 나와 주었다. 아이고 황송하여라.  

토니는 영국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 집도 절도 다 팔고 - 마라케시에 정착한 거라고 했다. 지금 운영 중인 숙소를 35만유로, 그러니까 대략 5억쯤에 구입했다고. 김원장이 모로코에선 외국인이 아무 문제 없이 집 살 수 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관심 있으면 언제든 도와줄테니 추후 연락 하라고 했다 ㅋ 친절이 지나치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토니와 압둘이 기차역까지 가는 쁘띠 택시도 40디르함에 흥정해서 잡아주고서야 빠이빠이. 마라케시에서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반짝반짝 빛나는 마라케시 기차역


지정 좌석이니까 시간 딱 맞춰 도착 ㅋ




해당 컴파트먼트에 도착해 보니 이미 세 여성분이 순방향으로 쪼르륵 앉아 계셨는데... 우리 좌석은 창가쪽으로 마주 보는 두 자리였으므로 한 분은 당신 좌석이 아닌데 앉아 계신게 틀림 없었다. 그 분께 우리 티켓을 보여주니 벌떡 일어나 당신 좌석으로 가는게 아니라, 우리보고 남아있는 반대편 아무 좌석에나 앉으라고, 이와 동시에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두 여성도 그렇게 하라고, 아무 데나 앉아도 괜찮다고 입을 모았다(괜찮긴 뭐가 괜찮아)

여기가 다른 나라였다면 미안하지만 김원장이 멀미에 취약한 인간이니 원래 그의 몫인 순방향 좌석을 내어 주십사 할텐데... 이슬람의 나라 모로코에서, 그것도 나이 지긋한 여성에게 그렇게 부탁하기란 좀 망설여지는 일이어서, 일단 비어있던 역방향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아무리 지정 좌석제라도 진짜 내 좌석에 앉으려면 일찍 오고 봐야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음시롱.       


재미있는건 남아있는 한 자리 - 역방향 복도쪽 - 에 마지막으로 덩치만큼 숨소리가 거친 비즈니스맨이 탑승했는데, 꼬부랑 아랍어 서류를 펼쳐 들고 한참 통화하던 그 아저씨가 이번엔 역방향 창쪽에 앉아있던 김원장에게, 본인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면 안 되겠냐고, 자기가 서류 작업을 해야 하는데 창측에 붙은 그 작은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결국 김원장은 역방향 복도쪽에 100% 타의로 당첨된 채 라바트까지 왔다 ㅋㅋ 



마라케시에 머무는 동안엔 입술이 트고 코피가 묻어날 만큼 건조한, 그리고 한낮으론 더운 날씨가 이어졌는데 - 그래서 처음 기차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황량하고 거친 그것이었는데, 

카사블랑카가 가까워지면서 대기에 대서양의 끈적한 습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바람도 제법 시원해지고 - 그만큼 놀랍도록 초록빛으로 급속히 물드는 세상. 마치 비라도 막 흩뿌리고 지나갈 듯한.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최소 두 배 정도로 추정되는 바가지 가격표였지만 내 언제 또 모로코 기차 간식 카트에서 뭔가를 먹어보겠는가. 질러! 



배가 안 고파서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 먹었다 ㅋㅋ




제마 엘 프나 광장도 아닌데, 카트 직원이 김원장에게 당장 거스름돈이 없다며 저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잔돈 챙겨서 줄께! 했다던데 

정작 돌아오는 길에 생까고 또 지나가 ㅋㅋㅋ 김원장이 불러서 나한테 거스름돈 줄 거 있잖아! 하니까 그때서야 마치 깜빡 까먹었 - 그럴리가 - 다는 듯 얼른 챙겨준 10디르함(원래 김원장이 받기로 한 돈은 5디르함인데 ㅋㅋㅋ).

그리고 보니 카트에 다가간 김원장에게 건넨 첫 마디가 "아쉽지만 이 카트에 스시는 없어" 였다고 ㅋㅋㅋ     


여행을 준비할 당시, 영 정이 안 가던 카사블랑카. 노래만 불러보고 그냥 지나친다.  




외양은 내 기준에 다소 촌스러워보여도 나보다 더 최신 전자기기로 완벽히 무장했던 우리 칸 승객들. 심지어 내 옆 비즈니스맨 아저씨는 간식 카트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배고프다고 이것저것 참 많이도 사먹음 ㅋ 부자네 부자야. 


2등석 승객들이었으면 싸온 것 서로 나눠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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