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톤 후아힌에서 모닝 수영까지 챙겨가며 체크아웃 시각인 12시까지 비비적거리다가 시간 맞춰 로비로 나왔다. 체크아웃 마치고 약속한 차량이 왔는가 바깥을 내다봤는데 아직 안 온 듯. 이상타, 왔을텐데, 에이 뭐 곧 오겠지, 기다리고 있노라니 아까 트렁크를 미리 부탁하며 팁을 주었던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와 혹시 방콕으로 가시는? 하고 물어온다. Yes, 하니까 아까부터 저 앞에 서 있던 승용차가 우리 차량이라면서 챙겨주네. 어라, 우리는 이메일을 주고 받았던 Poom 아저씨가 올 줄 알고 당연히 SUV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또 모르지, 아저씨 차가 두 대일런지도.


얼른 다가가 물어본다. Are you Mr. Poom? 휴대폰을 가지고 놀다가 얼른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하던 해맑은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예스! 수안나! 답한다. 뭐지, 이 애매한 시츄에이션은? 우리는 곧 눈치챈다. 이 이름 모를 청년 또한 Poom 아저씨가 아니고 그의 소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청년의 영어 구사 능력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그러나 저러나 이 청년, 아마도 우리가 바로 방콕의 수안나품 공항으로 가자고 하는 것으로 알아들은 모양인데,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수안나품 공항이 아니다. 출발 전 다시 청년에게 우리가 잡아놓은 수안나품 공항 근처 숙소(The Cottage Suvarnabhumi)의 주소를 보여준다. 

노노노 수안나품! 더 코티지! 힘차게 외치면서. 청년 끄덕이는 폼이 알아들은 듯. 


주말이라 그런지 방콕에 진입하면서 약간 트래픽잼에 걸렸던 것을 제외하면, 마찬가지로 약 3시간에 못 미치는 날쌘돌이+서로간에 말없는 주행이 쭈~욱 이어졌다. 중간에 후아힌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주유를 위해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막간을 이용해서 청년이 센스있게 차가운 물을 두 병이나 선물해주기도 했다. 한 병이면 되는데, 하면서도 얼른 다 받아들었지 ㅋㅋ 드라이버 청년이 운전 내내 그 연령대에 비해 너무 한맺힌(?) 음악 위주로 선곡을 해서 들었던지라 김원장과 잠시 그의 정신 건강에 대해 걱정했던 점을 제외하고는, 후아힌으로 올 때와 비슷한(즉 약간은 무섭고 약간은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품 아저씨"표" 택시 poomtaxi@hotmail.com방콕(시내/공항) - 후아힌까지 1800밧. 약 2시간 30분 소요 


청년은 주행 도중 서너번 우리 숙소 측과 전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였는지 무리없이 아니, 이런 곳에 있었어? 싶던 골목 안에 위치한 The Cottage Suvarnabhumi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 


The Cottage Suvarnabhumi

홈페이지 http://www.thecottagebangkokairport.com/

타이호텔뱅크에서 조식 포함 1000밧의 경쟁력있는 조건으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조식을 먹을 수 없는 이른 시간대 공항으로 이동하는 관계로 www.hoteltravel.com에서 조식 불포함으로 950밧에 예약했더랬다. 

(50밧이라도 아끼고자 했던 이 마음, 김원장이 알아줘야 하는데... 이후 확인해보니 카드 수수료 포함해서 35159원이 청구되었다).  


공항 근처에서 조용하게 하룻밤 보낼 수 있는 숙소를 찾기 위해 이번 휴가에 있어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숙소였는데,

아아, 실패하고 말았다. 

분명 도로와는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 주변이 황량한 탓에, 도로에서부터 들려오는 소음을 막아줄 차폐물이 될 만한 마땅한 건물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번이 더 코티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투숙이 되겠지만,

그 정도의 소음은 별 상관 없고, 왕복 무료 픽업이나 직원들의 친절도를 중요시 여기는 분이라면 묵어도 괜찮을 듯 싶다. 

공항행 셔틀은 숙소를 매 30분마다 떠나며 직원들은 빠릿빠릿하니(정말 큰 도시 사람처럼 ㅎㅎ) 친절하더라.   

참고로 아래와 같은 수영장도 있다. 수영한답시고 허우적거리기엔 좀 뻘쭘할 듯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참, 예상보다 공항과는 주행 거리가 좀 되더라(명함에는 5분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혹 모르겠다. 공항에서 나올때는 좀 덜 걸리려는지) 


The Cottage Suvarnabhumi의 객실로 말하자면 그간 워낙 좋은 데에서만 묵다 왔기 때문에, 굳이 이 곳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당근 실망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일견 치앙마이의 타패 플레이스보다도 못 해 보였지만, 여기는 태국의 수도 방콕이 아닌가(직원 인건비하며 이 땅 값만 해도 얼마겠어). 그냥 하룻밤, 트랜스퍼용으로 머무는 거라면 그다지 나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  


방콕으로 오는 동안, 우리에게는 제법 큰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건 바로 김원장이 이비인후과를 가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물론 김원장 직장 말고 다른 선생님의 이비인후과). 살다보면 아주 드물게 귀지가 김원장의 고막에 떨어지는 모양인데, 김원장은 그걸 느끼고 못 참아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그런 일이 생기면 퇴근 후 다른 이비인후과를 가곤 했는데, 때마다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이걸 느끼세요? ㅋㅋㅋ


뭐 어쨌거나 본인은 그걸 느끼고, 게다가 아주 불편해하는 터라, 이젠 나도 그러려니 하는데(뭐 김원장 예민한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김원장, 보고 있나? ㅋㅋㅋ), 아니 방콕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런 것 같다고 하면 어떡하냔 말이다. 김원장은 당장 이비인후과를 가야겠다는데 생각이 꽂힌 모양인데, 오늘로 말하자면 토요일 오후 아닌가. 게다가 여기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데... 김원장도 곧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그럼 바로 공항으로 가서 오늘 밤 비행기로 스케줄을 바꿔 탑승한 뒤, 내일, 즉 일요일 아침 인천에 떨어지면 응급실로... 어쩌구 저쩌구하는데... 아, 그건 좀 짜증이 나려고 한다. 김원장이 현재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 것도 아니고, 그깟 귀지 하나 제거하겠다고 이번 휴가마저 비행 스케줄을 바꿔야 한단 말이냐, 응급실의 그 맘에 안 드는 시스템 하에 또 놓이란 말이냐, 50밧을 아끼기 위해 여기저기 들여다 본 마누라 생각은 안 하고 숙소비를 날리란 말이냐(응? 이건 아닌가? ㅋㅋ)


내 뾰루퉁이 느껴진걸까. 일단 귀국은 예정대로 하겠다고 다시 마음을 바꾼 김원장, 그래서 불편해도 그냥 조금 참기로 했나보다, 싶었는데, 체크인을 도와주던 언니한테 묻더라. 근처에 진료 가능한 이비인후과가 있는지. 아 뭐야, 결국 이 땅에서 병원엘 가겠다고라고라(나름 여행을 여러 번 하다보니 여행 중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게 사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긴 하다. 언젠가는 네팔에서 갔었고 예멘에서는 그 동네 이비인후과 구경해 보고 싶다고 갔었지). 


언니가 전화로 어디엔가 알아보더니 지금이 토요일 오후 3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로서는 따라 발음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Chularat 7번 병원인가로 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7번은 또 뭐야? 체인점인가? 일단 방에 짐부터 풀고 다시 데스크로 내려가 네가 알려준 Chularat 7번 병원으로 지금 갈테니 택시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역시나 전화+무전기로 열심히 통화하던 언니, 이번엔 7번 말고 9번으로 가야 한다네. 엥? 9번도 있어? 어쩐지 고새 숫자가 바뀌었다니 뭔가 불안함이 밀려온다. 정말 이 시간에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을까?

 

하여간 언니가 불러준 택시에 + 포터 청년의 설명으로 택시 아저씨는 약 10~15분 정도의 드라이브 끝에 우리를 무사히 Chularat 9번 병원 앞에 내려놓았다(팁 포함 100밧 지불. 대략 이 정도 거리. 돌아올 때는 처음과는 달리 방향상 유턴을 두 번이나 안 해도 되어서 팁 포함 80밧 지불)


처음엔 하도 언니가 자신있게 알려줘서 Chularat 병원이 외국인 전용(?) 병원인 줄 알았더랬다(처음엔 병원명인줄도 모르고 쯀랄랏? 그게 대체 뭐야? 그랬다는 ㅋㅋ). 아니, 그런게 아니라면 적어도 자발적으로 토요일 오후 진료를 하는, 작은 개인 의원인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아니네, 달리는 택시의 창 밖으로도 어어, 저깄다! 수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매우 큰, (준)종합병원이었다. 정말로 이름 뒤에는 넘버 9. 살다보니 내가 정말 태국 종합 병원에 다 와보는 일이 생기는구나! 


발음 안 되는 그 병원의 홈페이지 http://www.chularat.com/


일단 접수 창구로 예상되는 곳으로 가서 말이 잘 안 통하는 바람에 우왕좌왕 당황하는 언니들을 몇 보낸 뒤, 결국 한 언니가 약사님을 불러와 약사님의 통역으로 증상을 설명, (신분증 대신) 여권을 제출, 접수 절차를 모두 마쳤고, 이후 한 언니가 (말이 안 통하니) 직접 우리를 안내해 2층의 한 외래 앞 대기 소파에 앉혀주곤 사라졌다. 우리는 과연 이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쯤에서 내 맘대로 짐작해 보는 태국 병원 대기표



접수표를 소중히 쥐고 우리 번호가 불리기만을 기다리다 문득! 내가 왼쪽 진료실 문 앞에 아주 작게 써진 세 글자의 영어 E.N.T.를 발견한다. 앗, 김원장, 저기 이비인후과 표시가 있어! 정말 오늘 여기서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을 수 있나봐! 그렇다면 우리는 왼편에서 부르겠구나(그리고 보니 오른편은 내과 진료실인 모양이다). 

저 ENT 옆에 작게 쓰여진 숫자가 만약 진료 시간을 뜻한다면, 저 진료실 안에 계신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오늘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만 진료를 하시는 모양이다. 와, 아슬아슬하게 왔네(어쩜 우리 숙소 언니가 그래서 7번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가, 시계 보고 9번 병원으로 가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귀지 제거를 하러 왔을 뿐인데, 이역만리 타국의 커다란 병원에서 급 환자(?) 취급 받게 된 김원장. 몸무게와 혈압 측정 중> 


너무나 반갑게도(?) 그리하여 정말 태국의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만나게 된 우리. 담당의는 나보다도 어려보이는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우와, 영어가 무지 유창해서 기가 확 죽었다. ㅋㅋ 게다가 우리가 어리바리 외국인이라서 그러시는건지, 아니면 원래 이 병원의 진료가 이렇게 이루어지는지 몰라도 귀지를 제거한 후에도 정말 길고도 길게, 참으로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신다(원한다면 해부학부터 시작할 기세 ㅋㅋ). 서당개 3년인 내가 설명 듣다 말고 한국말로 조용히 김원장에게, 그냥 네 정체를 밝히고 그만 일어서자, 했는데, 김원장 대답이,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데 본인은 이 선생님처럼 영어 못 하는게 부끄러우니 끝까지 정체를 숨기고 싶다고 -_-; 해서 우왕, 김원장이 환자들한테 매번 하곤 하는 (내게는 지겨운) 설명들을 이번엔 영.어.로.(허허허. 내 팔자야), 그것도 훨씬 길게 이것저것 다 합쳐서 들어야 했다는 ㅋ 

하여간 이 선생님께서도 김원장의 고막에 달라 붙은 귀지를 제거하면서, 내 해달라고 하니 해 주긴 하는데, 이게 정말 느껴져? 하는 얼굴이셔 ㅋㅋㅋ


첨언하자면 선생님은 참 좋으신데 결정적으로 진료실/의료기기가 너무 후졌으. 이게 대체 우리나라로 치면 몇 십년대 버전의 진료실일까. 진료실 자체도 좁고 답답한 감옥 스타일이고, 기기들은 과연 제대로 작동할까 싶은. 병원은 이렇게 큰데...


하여간 무사히 진료를 마치고(혹 모르니 약까지 처방 하시겠다는 선생님을 열심히 말린 뒤), 퇴실. 마찬가지로 이번엔 어시스트하던 언니가 우리를 1층 수납 창구까지 다시 안내해주고, 잠시 기다린 뒤 드디어 김원장이 호명되고 내 손에 받아들게 된 청구서. 과연 이렇게 진료를 받으면 얼마나 청구될 것인가, 은근 걱정 반 두근 반이었는데,


총 청구액은 550밧. 현 환율로는 우리 돈으로 2만원이 좀 넘어가는 액수. 이 정도라면 얼굴 많이 안 붉히고 기꺼이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달까. 뭐, 우리야 (의료비가 저렴한) 한국에서 왔으니까 외국인의 일반 진료에 이 정도라면 나름 리즈너블하다고 생각하기로. 만약 태국인으로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무지막지한 액수라는 생각이 잠깐들긴 했지만(지금 찾아보니 태국인은 본인 부담금으로 30밧만 내면 된다네). 


참고로 550밧의 내역은 다음과 같다. 

General Medical Equipment 200밧 + Hospital Service 50밧 + Health Professional Fees (Outpatient Care) 300밧 


하여간 이로서 본인이 겪던 심각한 문제를 끝내 해결하고만 김원장은 마냥 해피해하더니 이젠 식욕이 동하는지 숙소 근처 맥도날드부터 가겠다고 한다(빅맥 라지 세트 138밧). 



숙소였던 The Cottage Suvarnabhumi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파세오 몰(The Paseo Mall)이라는, 이 근방에선 나름 먹히는 규모의 새로 생긴 쇼핑센터(?)가 있다. 

홈페이지 http://www.thepaseomall.com/

맥도날드, KFC, MK 등 알려진 먹거리집들과 작은 수퍼마켓(한국 라면도 보이는), 맛사지샵, 커피샵 등등 포진. 


햄버거 하나 나눠먹고 바로 앞 Coffee World라는 근사한 카페에서 모카 모시기 커피 한 잔을 주문했는데 얘가 글쎄 100밧이래. 아, 내가 알던 태국이 아닌 것 같아. 


이후 잠시 숙소에서 뒹굴거리다 저녁때 심심해서 산책 삼아 다시 파세오 몰로 나가보니, 때마침 The Idol Battle이라는 오디션이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멀리서 보고 그냥 애들 몇이 모여서 춤추고 노나보다, 였는데 어라, 이 음악은, 모르는 노래이긴 하지만 분명 가사는 한글처럼 들리는데??? 타국에서 듣는 한국어에 저절로 이끌려 무대 앞까지 가보니 여기는 이미 한껏 열띤 오디션 현장. 그런데 어쩜, 출전 팀 모두가 백이면 백, 우리나라 요즘 아이돌의 유행곡들(로 추정. ^^; 워낙 요즘 노래는 모르는 세대라 ㅋㅋ)을 들고 나왔네. 여기가 태국이야 한국이야. 







재미난 건 이렇게 흥이 나는 댄스 뮤직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한복판에서도, 피끓는 나이의 어린 학생들은 그저 찢어지는 환호성만 지를 뿐,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흔들 생각을 안 하네. 여기가 유럽 어드메라면 이 리듬의 반의 반만 되도 관람객들이 다들 난리날텐데 ㅎㅎ 이 동서양의 문화 차이라니. 


하여간 이런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서, 내내 한국어로 된 노래가 흘러나오고, 태국의 젊은이들이 이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며(한글 가사의 뜻이나 아는지)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은 뭐랄까,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무척이나 뿌듯했다고나 할까. 이것이 진정 한류의 현장인가봐! 때문에 한동안 다리가 아프도록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그들의 경연을 열심히 관람했다. 팀별, 개인별로 수준차가 좀 있긴 했지만(잘 모르는 내가 보기엔 저들의 엄청났을 노력에도 불구하고 딱히 눈에 띄는 인재가 없어보인다는게 그저 안타까울 뿐), 김원장 말마따나, 너희 부모님들은 너희 이러는 것 아시니, 생각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지만(우리는 한국의 전형적인 아저씨와 아줌마 -_-;), 내일이면 태국을 떠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마지막 즐거운 선물.    



절로 옮겨진 그들의 뜨거운 열기를 베리 빙수 한 그릇으로 식히고 이렇게 마지막 날을 마무리.




어제 체크인시 알아서 챙겨주던 새벽 5시 모닝콜은 제대로 들어왔고, 대충 씻고 5시 30분 셔틀을 타러 내려갔다. 이른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그 시각 로비에 셔틀을 타려던 외국인들이 제법 많더라(다시금 생각해 보면, 하긴 이런 시간대 비행기를 타야하는 승객들이 주로 이런 공항 근처 숙소들의 주 이용 고객이겠지 싶기도 하고). 


우리의 한국행 비행기는 오전 7시 10분 발로, 출발 24시간 전인 어제 아침, 후아힌의 쉐라톤 리조트에서 김원장의 닥달에 칼같이 시간 맞춰 인터넷으로 미리 체크인을 했었고, 이 과정에서 기쁘게도 엄청난 자리(우리가 세미 비지니스석이라고 생각하는 벌크헤드석)를 선점하게 되었더랬다(사실 나는 체크인이야 좀 늦게 하면 어때, 주의자였는데, 김원장의 주장대로 시간 맞춰 인터넷 체크인 페이지 열었다가 뜻밖의 대박을 터뜨리게 된 경우라 김원장이 매우 뿌듯해 했다는). 그래서 이미 최고로 좋은 좌석까지 맡았겠다, 인터넷 체크인 과정도 모두 마쳤으니 출발 1시간 전에만 공항에 도착하면 널럴하겠지, 싶어 5시 30분 셔틀을 타기로 계획했던 것인데, 방에서 늦게 내려오는 투숙객, 그들의 짐을 차에 싣는 과정 등에서 몇 분이 지나고, 또 유턴하고 돌고 하면서 주행 시간마저 제법 걸리고, 또 공항에서 트렁크 다 내리고 하다보니 6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공항 청사 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깜짝 놀란 것은, 그 이른 시각에 공항에 여행객들이 무지 많았다는 것. 게다가 어디행인지 알 수 없지만 엄청난 줄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더랬다. 아이고, 저 사람들 어떡하니, 저래서 어느 세월에 체크인 하겠니, 남 걱정하면서 타이항공 데스크를 찾아갔는데, 럴수럴수이럴수가, 그 긴 줄이 여기로 이어진 줄이었네!!!!!! 다시 말해 그 수많은 사람들이 타이항공을 타기 위해 줄 서 있었던 것(타이항공 데스크는 여럿이었으나 항공편별로 구분해서 열어놓은 것이 아니고, 타이항공을 이용하는 모든 승객들을 두 줄로 세워 차례대로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어어, 이래서는 줄 서서 기다리는데만 1시간이 훌쩍 넘어설 듯 한데? 순간 당황한 우리. 이러다 비행기 놓치는 것 아니야? 그럼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대박(?)인데.


일단 김원장에게 짐을 맡겨놓고, 줄 선 사람들을 넘나들며 앞 쪽으로 뚫고 나아가보니, 다행히도 나란히 늘어선 데스크의 한 구석에 인터넷 체크인 전용 카운터가 따로 있는 것이 보였다. 문제라면 그 카운터조차 저 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게끔 막아놓았다는 것. 마음이 급하니 일단 못 넘어가도록 쳐놓은 줄 아래로 몸을 넣어 통과, 그 데스크 앞으로 나아가 질문만 하나 할께요! 인터넷 체크인을 한 승객도 저 줄 뒤에 서야 되는 건가요? 다급하게 물으니 담당 카운터 직원 왈, 아니요, 그냥 이리로 들어오시면 되요, 하네(당신이 안 된다고 하면 읍소라도 하려고 했어 ㅎㅎ). 하이고, 그 10분이 꼭 몇 시간 같아라. 일이 이렇게 해결된지도 모르고 좀 전의 나처럼 이 난국을 어찌 할꼬,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저 멀리 서있던 김원장을 손짓으로 부른다. 이리로 넘어와~ 해결했어~


그리하여 그 긴 줄에 서 있던 수백명의 탑승객들을 유유히 뒤로 한 채, 체크인 무사히 마치고 보딩패스 받아들고 면세구역으로 고고씽. 

와, 십년감수했네(왜 인터넷 체크인 전용 카운터까지 막아 놓는건데! 깜짝 놀랬잖아). 김원장이 나의 아줌마스러운 행동에 심히 만족해 했음은 물론이고(우리끼리는 순발력이라고 그저 좋게만 표현 ㅋㅋ)


다시금 말하건데, 인터넷 체크인이 되는 항공사를 이용한다면 꼭 미리 하고 가자(=그럼 똥줄 안 타도 된다).  

우리가 이용한 타이항공의 인터넷 체크인은 출발 시각 24시간 전부터 가능하다.

ttp://www.thaiairways.com/plan-your-trip/internet-checkin/en/internet-checkin.htm


언제 똥줄이 탔냐는 듯, 이제야말로 PP카드가 그 우아한 빛을 발할 차례. 숙소에서 해결 못 했던 조식과 새벽잠 보충. 




그리고 방콕발 타이페이 경유 인천행 뱅기에 탑승.

(바이오 리듬을 고려할 나이대가 되었다는 생각에 이번 여정은 최대한 낮 비행으로만 고집했기에 귀국편은 대만을 경유해야만 했다). 


<여전히 한국은 전두환이 어떻고 골프장 회원권이 저떻고... 다음엔 면도기 꼭 챙겨가야지> 


그리고 다시 시작된 김원장용 저칼로리 기내식의 향연. 아 뭐야. 김원장 다시는 저칼로리로 주문 안 한다 재차 다짐, 거의 손 안 대고,


도전의식 충만한 그의 마누라조차 쉽게 손이 안 가던 묘한 향내의 죽을 깨작깨작(사실은 라운지에서 이미 포식을 ㅎㅎ). 



나야 라운지에서 포식해서 그렇다치고 김원장은 그렇게 안 먹어서 이따가 배 안 고플까? 하다가, 문득 타이페이 라운지에 있을 군고구마가 생각, 김원장 그럼 군고구마 먹을래? 영문을 모르는 김원장, 눈 똥그렇게 뜨고 대체 어디서 때아닌+맛있는 군고구마를? 어디긴 어디야, 1년 365일 군고구마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대만에서지. 


그리하여 잠시 들른(원래 계획상으로는 기내식을 먹을테니까 타이페이 경유하는 동안에는 산책을 하지, 공항 라운지는 안 가게 될 듯 싶어서 위치를 미리 안 알아왔는데, 게다가 마침 공사 중이기도 했던 청사였는데, 다행히도 PP카드를 내건 라운지를 찾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미션이었다) 타이페이 공항의 More Premium 라운지


<숨어있는 김원장을 찾아보세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여기가 대만이라면 공항에서까지 먹을 수 있는 군고구마 ㅋㅋㅋ 와웅, 진짜 맛나다>


<입맛에 맞는지 김원장이 두 그릇이나 먹은, 즉석에서 말아주는 국수. 나로 말하자면 메이지 녹차맛 아이스크림 챙겨먹는 걸 잊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다시 기내식. 막판까지 찐 닭가슴살로 나오던 김원장 식단. 역시나 안 먹고 건너뛰고(다음엔 아예 과일로 주문해볼까 ㅋㅋ). 

내꺼는 고칼로리 기내식이니까 또 꼭 먹어주고 ㅋㅋㅋ


하여간 이렇게 먹고 먹고 또 먹고, 인천 공항 도착. 짐이 안 나와서 한참 기다렸고, 짐 찾은 뒤 다시 공항열차 타고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엄마 아빠 만나 트렁크 두 개에 달하는 반찬을 조달받고(갑자기 트렁크가 세 개로 늘어났네) 예매해 둔 KTX 출발 시각까지 시간이 남아 서울역에서 또 저녁 먹고... 대전 집에 왔다.


이로써 7권의 책과, 5곳의 별 다섯개짜리 숙소와, 5번의 비행으로 채워진 이번 2주간 휴가가 모두 끄~읕!

(참고로 어떤 선생님이 이렇게 2주간 여행하는데 얼마나 들었냐고 물어보신지라 계산해보니 항공권 포함 총 400만원에 못 미치더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