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 이러다 다음 번 뱅기 타기 전에 이 지난 네팔+인도 여행기 다 못 끝내지 싶다. 흑. 얼렁뚱땅 사진만이라도.

 

<만족스러웠던 파노라마의 체크 아웃 영수증>

 

어제 예매해 두었던 그린라인 버스를 타고 포카라에서 룸비니(정확히는 바이라와)로(550루피X2인).

 

이른 아침 출발 전 Bus Park 풍경

 

 

 

네팔 여기저기로 떠나려는 여행객들과 차(tea)와 빵, 과일주스 등을 파는 행상들까지 더해져 나름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도 장도에 오르기 전 빵이랑 찌아 한 잔.

  

하여간 이 동네, 어딜 가나 배경 하나는.

 

오전 6시 50분, 드디어 뭉개고 뭉개던 포카라를 뒤로 하고 인도를 향하여! (물론 그 전에 룸비니를 먼저 들를 예정이지만)

지도에서 보듯 길은 매우 꼬불꼬불. 산을 넘는다기 보다는 산허리를 끊임없이 돌고 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몸이 이리저리, 좌로 쏠리고 우로 쏠리기를 수 십 수 백번,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부트왈(Butwal. 상기 지도상으로는 파란 동글뱅이 바이라와 바로 위 사거리 교차점)에 이르러서야 진정 분위기.

고도가 낮아져서 그런가, 부트왈부터는 급 인도스럽다고 느끼게 되는데 아무래도 그간 보기 힘들었던 싸이클 릭샤가 그 주범이 아닐까.

아니면 혹 저 먼지 구름 때문?

 

하여간 우리가 탄 버스는 포카라를 떠난 이후로 신나게 경적을 울리며 몇 시간을 내달렸는데(이들이 경적을 울리는 데에는 우리나라의 그것에 더해 몇 가지 이유가 더 추가된다. 예를 들자면 길을 걷고 있는 잠재적 승객을 호객하는데 쓴다거나, 꼬불거려 전방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길에서 반대편에서 오고 있을 다른 차량에게 나 여기 있소~ 신호를 보낸다거나, 혹은 그렇게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을 아는 운전사가 운전하고 있다거나... 뭐 이런 저런 이유로 끊임없이 경적을 울리며 운전하는게 이 동네 특징이다) 바로 이 경적의 하이톤이 김원장의 귀에 매우 거슬린다는 것이 아주 큰 문제였다. 예전에도 언젠가 이런 비슷한 이유로(그 때는 운전사가 틀어놓은 쿵짝쿵짝 요란한 음악 소리가 원인) 김원장과 한 번 투닥거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역시 이 경적 때문에 김원장과 크게 싸우게 되었다(라고 쓰고 일방적으로 당했다, 라고 읽는다). 

김원장은 내 입으로 우리 버스 운전사에게 경적을 울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라는 거였고, 나는 그 소리가 정 괴로우면 본인이 직접 얘기하라고 했다. 예전의 음악 사건이야 그 음악이 운전사의 안전/생계 따위와 크게 연관이 없어 보였기에 내가 말을 해서 볼륨을 낮출 수 있었지만, 이번 청은, 내 남편의 입장에서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원장은 본인의 성격상, 본인이 직접 이야기할 경우 오히려 운전사와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_-; 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여성인 내가 대신 보다 부드럽게 일을 처리하기를 원했고 내가 끝까지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결국 이 사건은 우리 둘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결국 오후 1시 50분, 룸비니를 가기 위해서 하차해야 하는 바이라와에 이르기까지(중간에 주어진 점심시간 약 20~30분), 김원장과 나의 팽팽한 기싸움은 계속 되었고 완전 냉랭+싸늘한 분위기에서 황량한 바이라와에 도착했다(2년도 훌쩍 더 넘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상기 시점에 추가로 밝히자면 김원장은 특정 음역대에 매우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즘에도 소음으로 인한 크고 작은 민원을 수도 없이 제기하고 있다나 뭐라나 -_-;).   

 

 

소음으로 인한 괴로움에 거의 죽을만큼 시달리던 김원장과 그런 김원장에게 감정적으로 시달리며 괴로움을 겪었던 나는 앞으로 남아있는 여정을 생각, 애써 서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고자 잠시 휴전 시간을 갖고 바이라와 삼거리 노변 찻집에서 찌아를 한 잔씩 조용히 마셨다(잔당 5루피의 착한 가격. 이 길거리 찻집 한켠에서 식빵 안에 사모사 속을 넣어 샌드위치처럼 만든 후 통째로 튀겨내고 있었는데 김원장과 그런 일만 없었다면 신난다고 사먹어 봤을텐데... 아쉽다 T_T). 그리고 여전히 말 없이 길 건너편, 룸비니행 버스 정류장을 향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었다(그나마 따뜻하고 달콤한 차라도 한 잔 먹이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찻길을 건너며 차 잘 보고 건너라고 김원장이 한 마디 챙겨주긴 했다 ㅋ).  

 

 

<탑승 전 룸비니행 버스 정류장에서 땅콩을 사는 김원장>

 

<10루피짜리 땅콩. 두 개 사서 하나는 나중에 룸비니에서 먹었다. 나중에 증거사진 첨부>

 

바이라와에서 룸비니까지는 버스로 대략 45분 정도 걸렸다(1인당 40루피).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룸비니에 있다는 한국 절, 대성석가사.

 

워낙은 버스 하차 지점에서 은근 떨어져 있는 대성석가사까지 걸어갈 예정이었지만, 둘 사이의 기분이 아직 완전히 풀리질 않아 룰루랄라 걸어갈 기분이 영 아닌지라 싸이클 릭샤를 탔다(음, 이럴땐 냉전도 도움이 되는군 ㅋ). 그 와중에 흥정을 해서 -_-; 200루피 부르는 것을 100루피로 깎아 탔는데 내릴 때 익숙한 시나리오대로 거슬러 줄 잔돈이 없다고 우겨대는 바람에 가지고 있던 인디안 루피랑 합쳐서 결국 120루피쯤 준 것 같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대성석가사. 첫 인상=생각보다 꽤 크다!

<아직도 공사중인 대웅전>

 

 

 

 

우선 스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며칠 묵고 싶다 말씀 드리니 일단 방을 내어 주긴 하는데 오늘 베트남에서 불교 신자 69명이 오기로 이미 예약이 되어 있는지라 보다 쓰기 편한 1층 방들은 내어줄 수 없다고 하신다(아니 베트남인들은 자기 나라 절이 없나. 왜 울 나라 절에서 숙박을 ㅎㅎ) 알려주신 대로 2층 방을 찾아가 보니 원래 여러 명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지라 우리 둘이 쓰기에는 매우 큰 방인데 정말 딱 그 뿐, 그야말로 기본만 달랑 갖춘 방이다(포카라에서 너무 좋은 숙소에 묵다가 온 탓일까? -_-;).

 

<마치 병영스러워 보이던 방. 오래간만에 다시 우리 침낭을 꺼내 놓았다>

 

 

네팔의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는 안내문도 있고 낮 시간에는 방에 전기도 안 들어오는지라 안 그래도 심란한데 어두컴컴한 방에 있기가 뭣해 짐만 대충 풀어두고 이후엔 밖에 나와 지냈다.

  

<보너스샷. 하릴없이 땅콩만 까대는 김원장>

 

그리고 공양 시간에 참석했다가 접한 작은 놀라움, 여기서 김홍성님을 또 다시 만나다 ^^; http://blog.daum.net/worldtravel/13689726

(장소가 대성석가사여서 그랬나, 이 정도면 나름 인연이란 생각이... 사실 워낙 이 곳에 자주 오신다고 한다) 

공양 이후엔 정말 간만에 저녁 예불에 참석했다. 내가 네팔에 오자마자 돌아가신 외할머님의 명복을 빌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