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가벼운 산책이나 해야겠다, 하고 가볍게 길을 나선 것이 에미뇌뉘 선착장 부근으로 갔다가 다시 귈하네 공원으로, 그리고 다시 그랜드 바자르로 연이어 이집션 바자르로, 그랬다가 다시 되짚어 이집션 바자르를 재관통해 그랜드 바자르에 이르기까지 열심히도 싸돌아 다녔다.

 

오후에 하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지금 당장 원래의 중앙우체국으로 찾아간다면 우리 소포가 거기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는 것. 몸이 좀 피곤하긴 하지만 소포가 와 있다는데 방안에서 뒹굴고 있을쏘냐. 부리나케 중앙우체국으로 가본다. 그러고보니 지난 토요일, 이스탄불에 도착한 이래 일요일(위치 파악한다고), 월요일(한국에서 짐 왔나 본다고), 화요일(한국으로 우리 짐 부친다고), 그리고 수요일인 오늘까지 나흘 연속 터키 이스탄불의 중앙우체국을 방문한 셈이네. -_-; 역시나 낯익(을대로 익)은 아저씨들이 목하 근무 중이시다. 그런데 우리 소포는 커녕 오늘은 아예 도착해있는 소포가 하나도 없다고 하시는 것 같다(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게 어찌된 일이람. 우리와는 말이 잘 안 통하니 이 아저씨들과 하칸을 직접 연결해 주고 싶은데, 하칸의 전화번호를 건네주며 통화를 해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우리를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여직원 앞에 데려다 주시고는 그냥 휑~하니 가버리시네. 급한대로 여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여직원이 중앙우체국 아저씨들 말을 통역을 해주는데 오늘은 도착한 소포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소포 취급소 맞은 편 전화국에 가서 하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본다. 하칸은 이상하다며 본인 역시 소포 취급소 직원과 통화를 해보고 싶다고 연결해 달라는데, 연결이 가능해야 말이지. -_-; 그러면서 어쨌거나 오늘은 도착한 소포가 없다니 집배원 아저씨가 중간 어느 지점쯤에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며 내일 다시 이 곳, 중앙우체국으로 찾아와 보란다. 아 쓰벌, 욕 나오네. 똥개 훈련도 아니고.

 

일단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중앙우체국 계단에 철퍼덕 앉아있자니 김원장도 속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내일도 소포가 도착해있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 이렇게 무한정 이스탄불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우리가 직접 찾아나서보자, 김원장이 제안을 한다. 우리가 직접? 말도 잘 안 통하는 터키에서?

 

그래, 다시 한 번 부딪혀보자. 오늘 해볼수 있는데까지 해보는거야. 다시 소포(Paket) 취급소로 들어가 그럼 대체 우리 짐은 어디쯤 있는 것 같으냐, 힘겹게 의사 전달을 하니 한 아저씨가 귀찮다는 듯 웬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준다. 흠… 전화번호 뒤의 이 세자리 숫자는 뭐지? 일단 그 전화번호를 신주단지 모시듯 들고 다시 전화국으로 간다. 적어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익숙한 톤으로 녹음된 기계 목소리가 뭐라뭐라 한다. 오호라, 이 세자리 숫자가 구내번호인가보다. 꾹꾹 누르니 웬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긴 하는데… 영어가 절대 안 되시는 분이시다. 일단 끊고, 어쩔 수 없이 아까 우리 통역을 도와줬던 언니를 찾아간다. 열심히 근무 중이던 언니가 우리를 재발견하고 하던 업무를 중단하고 우리를 도와 전화국으로 함께 가준다. 그리고 언니가 그 할아버지와 재통화, 그 부서가 우리가 찾던 부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 -_-; 한 후 그 할아버지로부터 또 다른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를 한다. 그리고 뭐라뭐라 한참 떠들더니 우리에게 다시 하칸이 근무하고 있는 톱카프역 우체국으로 가보라네. -_-;

 

“거기 근무하고 있는 하칸이라는 애가 거기 없고 여기에 있데서 이리로 온건데? 하칸이라는 애랑 한 번만 통화 더 해주라”

“하칸이고 뭐고 필요없어. 그냥 톱카프역 우체국으로 찾아가면 돼. 너희 짐 거기 있데”

 

워낙 단호하게 나오니 더 이상 부탁하기도 뭣하다. 이거 똥개훈련의 극치가 아닐까 의심스러워지긴 했지만, 어쩌랴, 우리는 이미 오늘 하루 똥개가 되기로 맘먹은 것을.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소포가 거기 있었다. 산넘고 물건너 찾아간 톱카프역 우체국에. 하칸이 근무하고 있는 그곳에. 대체 하칸은 그동안 뭘 알아봐준것일까. -_-;

 

우리 소포의 송장을 확인하고 김원장 여권 복사본을 제출하고도 우리 짐을 찾지 못해(결국 내가 직접 우리 짐을 발견했다는 -_-;) 시간은 제법 걸렸다. 엄청난 수의 소포 박스들이 쌓여있는 보관소에서 우리 짐을 발견한 것으로 수속이 끝난 게 아니였던지라 담당 아저씨가 작성해주는 서류를 들고 다시 다른 창구로 가서 도장을 받고 돌아와 돈을 지불하고(총 2리라. 기쁘게도 놀랍도록 저렴한 가격 ^^. 나는 여기보다 물가가 저렴한 이집트에서 이번처럼 한국에서 온 짐을 찾을 때 제법 큰 돈을 낸 적이 있는지라 터키에선 그 이상 나올거라 예상했는데 / 관련정보 http://blog.daum.net/worldtravel/13088395) 하느라 비록 시간은 좀 걸렸지만 드.디.어. 한국에서 엄마가 보낸 커다란 박스를 들고 우체국을 나서는 길, 발걸음이 정말 가볍다(뭐 꼭 김원장이 박스를 들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 참, 안 그래도 우체국을 나오는 길에 하칸이랑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지. 얘야, 우리 짐, 네가 말한대로 중앙우체국에 있었던 게 아니고 여기에 있었더라~하니까 그랬어? 하며 어깨 한 번 들썩이고 말더라만 -_-;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내, 짐을 무사히 찾았으니 용서해 준다(잘못된 정보를 주긴 했어도 하칸, 너, 그간 내 전화 받느라 고생 많았다 ^^).

 

<사진 상단 구석탱이에 엄마가 함께 넣어보낸 사랑의 쪽지가 보인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넣어보낸 햇반과 꽁치 통조림, 거기에 뻥튀기 과자까지 -_-;>

 

짐도 찾았겠다, 나름 긴 하루였지만 김원장은 오늘 밤 당장 기차를 타고 불가리아로 떠나겠다고 한다. 엄마가 보내준 꽁치 통조림 넣어 김치찌개부터 부글부글 끓여먹고 기차역으로 가서 불가리아 플로브디브행 티켓을 예매한 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왜 갑자기 이스탄불을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건지. 이스탄불의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더욱 더 예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그런데 막판에 완전 이런 기분 잡치는 일이 발생했는데 말이지, 바로 환전 사기를 당한 것이다 -_-; 우리는 곧 터키를 떠날 몸인지라 남아있는 터키 돈을 유로화로 환전했는데 이 넘의 환전상이 우리가 건넨 75리라를 얼렁뚱땅 45리라로 바꿔치기해서 유로화로 환전을 해준 것이다. 더군다나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한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는 것 -_-; 어쩜 술탄아흐멧 대로변의 환전상이 그런 짓을, 그것도 우리가 얼마나 어리숙하게 보였으면 -_-;(30리라도 무지 아까운 돈이지만 우리가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우울하다). 뭐, 마지막 액땜한 셈 쳐야지. 앞으로의 유럽 여행을 위한 액땜이랄까. 그러나저러나 유종의 미라는데 터키는 이번 일로 막판 인상이 확 흐려지고야 마는구나.

 

@ 돌이켜보니 드넓은 터키를 보름간 여행한 루트가 안타키아(1)-하르비예(1)-가지안텝(1)-카이세리(1)-괴레메(5)-앙카라(1)-이스탄불(5)로 거의 시리아에서 불가리아에 이르는 최단거리로 지나온 셈이 되었다.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터키의 지중해와 에게해변에는 언제나 가보려나.

 

 

@ 오늘의 먹거리 : 일명 홍합밥이라 불리우는 미디예 돌마시(Midye Dolmasi, 3개 1리라로 홍합 비슷하게 생긴 조개 껍데기에 볶음밥인 필라프를 채워 주먹밥처럼 먹는 것)와 다음 터키 카페에 맛집으로 알려진 그랜드 바자르 근처의 노점 식당에서 아다나 케밥(매운 맛이 나는 치킨을 얇은 빵에 돌돌말아 싸줌, 4리라).

 

 

 

후자의 경우에는 그간 거의 매일 그랜드 바자르를 지나다녀도 발견하기 어려운 노점이었는데 오늘 우연히 발견하여 시식에 성공, 그러나 김원장에게는 특별히 맛있는 집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실패한 듯. 보름간 터키를 여행하면서 웬만한 터키 음식은 그럭저럭 먹어본 것 같은데, 괴즐레메(Gozleme)라고 불리우는 터키식 밀전병만큼은 끝내 먹어보지 못했다. 배가 불렀어도 억지로 한 번은 먹어볼 것을… 좀 아쉽네(먹거리 집착증). 

 

 

@ 터키 이스탄불 – 불가리아 플로브디브 기차 여행 : 매일 밤 10시 1회 터키 이스탄불을 출발,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향해 예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달리던 길을 따라 칙칙폭폭 기차가 달린다.

 

 

 

 

우리가 끊은 티켓은 3인실 침대칸(각 명목은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29.80+23.1=총 52.9리라/인), 티켓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자로 가득하나 차장 할아버지께 그저 보여주는 것으로 모든 것이 OK(차장 할아버지가 탑승시 티켓 수거, 하차시 돌려줌). 배정받은 컴파트먼트에는 말 그대로 3층짜리 침대와 작은 수납공간이 있었는데 우리 둘만 탑승한지라 거의 2인실 분위기로 간만에 밤 기차를 타서 그런지 아주~ 낭만적이다. 차장 할아버지 역시 담요도 챙겨주고 물도 주고 휴지와 물티슈, 1회용 변기 커버(?)등도 나눠주시는 등 다정다감하시다(나는 할아버지가 뭘 주실 때마다 계속 터키어로 감사하다 인사를 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김원장왈 불가리아분 같다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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