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비행기를 탄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대부분 밤 비행기 신세였지). 인사도 드릴 겸 어제 미리 시댁에 왔는데 아버님께서 새벽에 나가겠다는 우리를 어엿비 여기사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셔서 덕분에 편히 공항까지 왔다.

 

비행기에서 히말라야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체크인을 하면서 방콕발 카트만두행 좌석은 오른편 창가로 부탁했다.짧은 경유 시간으로 인해 서울발 방콕행, 방콕발 카트만두행 보딩패스를 모두 받아들고, 그동안의 여정을 통틀어 가장 무거울 배낭 2개(각 12, 14Kg)를 부쳤다. 그런데 이제 라이터와 스프레이 종류는 부치지도 못한다네?(대신 라이터는 들고 탈 수 있단다) 아무렇게나 짐을 꾸려넣은지라 그 자리에서 찾기도 난감하고. 그러면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잠시만 기다려 달란다. 아니나다를까, 5분도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호명되고 알려준 카운터 옆 방으로 들어가니 우리 배낭이 엑스레이 검색대에 걸려 나와있다. 라이터는 어찌된 일인지 무사 통과였는데, 인도에서 모기 잡는다고 넣어온, 요르단 아카바에서 산 살충 스프레이는 딱 걸렸다.

 

-               엑스레이상 이 배낭의 윗부분에 있어요

 

알려주는 대로 열어보니 정말 그 위치에 스프레이가 들어가있다. 폐기하라네. 아까워라.

 

출국심사를 후딱 마치고 미리 알아온대로 가까운 아시아나 라운지를 들어가본다(이젠 PP 카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라운지 모두를 쓸 수 있다는데 아시아나 라운지가 좀 더 낫다는 글을 읽은지라). 입구의 언니는 타이항공을 이용하실 예정이시면 여기 말고 게이트 근처 어디로 가라며 다른 곳을 알려준다. 얌전히 언니 말대로 게이트를 찾아가는데 어랍쇼, 이게 뭐야, 언젠가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탄 듯한 열차가 인천 공항에도 다닌다! 이런게 언제 생겼지? 따져보니 한국 들어온지 3개월도 채 안 된 셈인데 그 땐 보지 못했던 열차다. 여하튼 이 열차를 타고 또 다른 건물로, 그리고 그 건물의 아시아나 라운지로. 참신한 잔치국수 사발면이 시선을 끈다.

 

일단 여느 때처럼 이것저것 줏어먹은 뒤 김원장은 마사지 의자에 눕고 나는 막간을 이용하여 엄마한테 전화를 넣어본다. 진짜 어딜 가긴 가나보네. 이미 면세 구역에 들어와 라운지에 있긴 하지만 마음이 싱숭생숭.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인지.

 

김원장이 나름 누워서 올 만큼 태국행 비행기에는 별로 승객이 없었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야시시하게 차려입은 젊은 언니들 셋의 설레임이 넘치는 톤의 수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저런게 바로 여행 아닌가. 어느 정도 긴장되고 얼마간은 설레이는. 안나푸르나 갔다가 산길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내 마음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현재 우리 부부에게는 여행에 대한 긴장도 설레임도 없다. 아아, 이런 모습, 바람직하지 않아

 

태국 공항에서도 잠시 무료 라운지를 이용한다. 올 한 해는 정말이지 PP 카드 덕을 톡톡히 본다. 좀 더 잘 사는 나라들을 여행했다면 더욱 많은 라운지들을 무료로 이용했을 테지만, 여하튼 이 정도로도 충분히 뽕을 뽑았다. 라운지 이용의 단점 중 하나는 라운지에서 워낙 많이 먹는 바람에 정작 기내식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인데, 방콕발 카트만두행 항공편의 기내식은 서남아시아의 기준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오래간만이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는, 한편으로는 오히려 익숙한 향이 나는 기내식이 우리 앞에 놓이자 잠시나마 아, 내가 드디어 이런 음식을 먹는 나라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구름보다 높은 산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혹자는 이쯤부터 히말라야에 경외심을 갖는다던데...>

 

드디어 6년 반 만에 네팔에 다시 왔다. 내게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지만, 김원장에게는 무려 네번째가 된다. 공항은 다소 수용소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그런 점조차 네팔스럽다 할만했다. 또 다시 시스템이랄게 딱히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책상들에서 입국 비자(유효기간 한 달, 40USD. 사진 한 장 필요)를 받고, 어설픈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무거운 배낭 두 개를 찾아들고 공항 밖으로 나섰다. 아니, 고 전에, 공항을 마악 나서기 전, 20불 환전을 했는데 1불이 77루피라 적어두고는 정작 1440루피만 주더라.

 

-               나머지 100루피는?

-               수수료야.

 

젠장. 확 그냥 물러버릴까 하다가 그냥 나왔다. 그래, 이 정도는 귀엽게 봐주자고.

 

그렇게 귀엽게 봐주려고 했는데 프리페이드 택시며 공항 밖 줄서서 호객하는 택시며 모두 짠 듯이 타멜까지 500루피를 부르는 모습을 보자 살짝 짜증이 나려고 했다. 얼마 전까지 공항발 타멜행 택시들이 400루피로 담합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고새 500루피가 되었단 말인가! 아예 공항 밖까지 걸어나갈 포스를 풍기며 걷기 시작하자 곧 우리에게 다가온 아저씨 하나와 결국 400루피에 흥정을 하고 소개시켜주는 택시에 올랐다.

 

공항에서 타멜까지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지만, 풍경은 그야말로 신선할만큼 자극적이었다. 왜 이리 poor해? 창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보며 최근 여행을 돌이켜보자니 네팔은 분명 에티오피아보다는 잘 살지만, 예멘보다도 못 사는 것처럼 보였다. 네팔이 정녕 예멘보다도 못 살았던가? (이후 확인해보니 네팔은 정말 예멘보다 못 산다. 그간 여행해 본 나라들과 비교해보자면 네팔의 GDP는 탄자니아나 우간다와 같은 수준이다) 네팔이 정말 그만큼이나 못 살았구나. 네팔에 대한 인상이 워낙 좋았기에 그들의 빈곤에 대해서는 기억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나보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 있어 네팔은,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중 하나랍니다, 자신있게 말해오던 곳이 아니였던가.

 

반가운 타멜의 거리가 눈에 들어오자 그런 생각도 잊혀졌다. 미리 줏어온 정보를 토대로 괜찮다는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찾아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위치에 그 게스트하우스는 없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6년 전 묵었던 숙소로 되돌아가던 중 우연히 또 하나의 추천 숙소를 발견했지만 이 역시 김원장에게는 치명적 단점인 소음에 노출된 입지였던지라 무시된다.

 

그렇게 도착한 6년 전, 그 때 그 숙소 샹그릴라. 안타깝게도 주인이 바뀌었고, 우리가 장기간 투숙했던 방도 이미 다른 이의 차지였다. 가격마저 흐른 세월과 현 성수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예전 우리가 기억하던 가격은 터무니 없다는 투의 현 매니저에게 겨우 1불을 깎아내어 14불에 일단 1박을 하기로 했다(핫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과 TV가 딸린 더블룸이 택스 포함 14불 / 예전에 우리가 묵던 3층 방은 현재 25불이라고).

   

저녁은 트레킹에 관해 정보를 얻을 겸 짱(http://www.nepal-jjang.com/)에서 하기로 한다. 그간 네팔의 정세가 무척 혼란스러웠다고 들어왔는데도 오히려 타멜은 많이 번화해졌다. 너무 소란스럽고 복잡해서 오히려 예전의 타멜이 그리울 정도. 사실 6년이나 흘렀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고, 그 땐 네팔의 비수기였기 때문에 더욱 한가했던 점 역시 어느 정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10월 말 타멜은 게다가 네와리 무슨 축제까지 겹쳐 안타깝게도 카오산의 그것과 더욱 닮아있다.

 

<지금 타멜은 축제 중>

 

놀랍게도 짱에는 손님이 매우 많았다. 여러 젊고 늙은 여행객들 사이에 한 무리의 비구니 스님들까지 그 넓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으니까. 김밥(130루피)과 만두국(250루피)을 주문해 놓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자니 아스란히 6년 전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면서 말로 형언키 어려운 묘한 느낌에 사로 잡힌다.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방콕에서, 그리고 저녁은 카트만두에서 먹게 된다는, 그야말로 지구촌의 한 미미한 여행자로서 느끼는 공간적 이미지와 6년 전 이 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시간적 이미지가 뒤섞여 이런 이상스런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다. 김원장 역시 오래간만에 네팔에 다시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네팔 방문이 김원장에게는 벌써 네번째인 셈이라서인지, 마치 몇 달 전, 3개월 간의 중동 여행을 마치고 마악 불가리아에 들어와 맞는 첫날 밤과 같다고 한다. 불가리아에서의 첫날 밤이라... 아마 한편으로는 분명 전에 비해 무언가 확 달라지고 새로와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익숙한 그 무엇을 느꼈던 그 날 밤을 말하는 것일게다. 

 

짱의 산적 두목, 한 사장님께 안나푸르나 라운드(혹은 안나푸르나 서킷) 트레킹을 위한 퍼밋과 TIMS 카드, 포터 등을 부탁드리고 난 뒤, 여기저기에서 터져대는 폭죽으로 인해 한층 축제 분위기가 고조된 타멜 골목 골목을 돌아 시장 골목에서 늦은 과일 쇼핑(중국산 사과 4개 75루피, 석류 2개 65루피)을 하고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온다. 분명 이 곳은 네팔 카트만두이고 우리나라와 3시간 15분의 시차가 나는 땅이지만, 어쩐지 바로 며칠 전에 지나쳤던 동네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 네팔 비자는 공항에서 도착 비자로 받을 수 있다. 원하는 체류 기간에 따라 발급 비용이 달라지므로 필요한 기간에 해당하는 비자를 신청하도록 한다.

@ 공항에서는 수수료가 있단 말도 없이 파격적인 환전 수수료를 떼어먹으며 1달러=77루피를 주지만, 현재 타멜 거리의 일반 환전소들은 수수료 없이 1달러=77.95루피를 준다. 짱에서는 1달러=78.5루피까지 쳐주시고.

@ 짱을 통해 트레킹에 필요한 모든 제반 사항을 부탁하다. 포터는 1일 10불이라 하셨고 퍼밋과 TIMS 카드 발급 대행 수수료를 모두 합쳐 2인 5000루피 지불(실제 안나푸르나 지역 퍼밋은 1인 2000루피). 개별적으로 포터를 구할 경우 일일 지불 비용을 줄일 수 있겠지만 혹 생길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예방하고자 여행사를 끼고 포터를 수배하기로 했다. 네팔 카트만두 짱의 경우, 포카라 짱과 자매(?) 업체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당장 필요없는 인도 여행용 배낭만을 따로 포카라 짱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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