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스아바바에서 물-전기-물 순으로 매일매일 문제를 겪고 있다보니까 어느새 오늘은 전기 차례겠네?~하면서 낄낄거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역시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이군.

 

남부 여행을 다녀온 뒤로 며칠을 뒹굴거리기만 했던지라 오늘만큼은 벼르던 이 동네 구경 좀 해줘야지, 마음 먹는다(사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자마자 아베베가 우리를 또 꼬시려고 꽤나 그럴싸한 아디스 근교 여행책자를 줬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그다지 땡기는 곳이 없더라. 이외 그 브로셔에 나온 곳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관심을 끄는 곳이 있다면 6.25 참전용사들의 후예가 살고 있다는 아디스 외곽의 코리안 빌리지 정도?).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놀러가보기로 마음먹은 시내의 두 곳은 동아프리카 최대의 재래시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메르카토와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교(이 곳 박물관에 가면 한동안 전 인류의 조상이라 일컬어졌던 루씨를 만나볼 수 있지만 사실 우리의 관심은 풋풋한 대학생들이지, 350만년 묵은 루씨는 아니다 ^^;).

 

에티오피아는 아예 가이드북도 없고 아디스아바바 시내 지도 한 장 구해놓지를 않았으니 숙소 직원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메르카토에 어떻게 가는지부터 물어봐야한다. 숙소 근처 큰 길로 나가 우리네 봉고 같은 미니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미니버스 차장이 메르카토를 외치면 그 차에 올라타라는군. 흠, 듣기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직원은 메르카토와 아디스아바바 대학이 반대 방향인지라 택시를 이용하는게 편할 거라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뭐, 일단 가서 직접 부딪혀보면 알게 되겠지. 어디나 다 사람사는 곳은 마찬가지 아니던가.

 

메르카토를 알아듣기가 쉽진 않았지만, 결국 그 수많은 미니버스 중 메르카토행 버스에 타는데 성공했다. 생각보다 꽤나 달려 종점에 내리자 바로 메르카토가 보인다(메르카토를 향해 달리는 중에는 볼레로드에서는 별로 만나기 어려운 걸인들과 노숙자들이 많이 보인다). 다만 오늘이 일요일이라서인지 문을 닫은 상점이 제법 된다. 그리고 그래서인지(=좀 썰렁해서인지) 전체적인 상점들의 배열이나 모양이 상상했던 재래시장의 면모라기보다는 좀 더 신식 시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어찌나 바닥이 지저분하고 먼지가 날려대는지 여기저기 구석구석 탐험하기가 썩 내키질 않는다. 숙소 직원이 이 곳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한 탓에 마음 놓고 돌아다니기도 살짝 부담스럽고…(시장을 관광온 몇 백인들이 현지인을 가이드겸 방패막이 삼아 데리고 다니는 것이 보인다. 어, 저 아줌마가 목에 건 엄청 큰 카메라는 삼성 카메라다!)

 

 

 

한바퀴 돌다보니 이 곳 역시도 공산품으로는 대부분 저렴한 중국산 물건이 대세인 듯 하다(한국산 물건도 하나 발견한다. 바로 담요 ^^). 지금껏 방문했던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나 이렇게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니, 저렴한 공산품으로는 거의 중국산이 깔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당분간 이런 중국의 독주를 그 어느 나라가 따라잡을 수 있으려나? (그런데 왜 요즘 중국 증시가 그 모냥인지 -_-; 딴 이야기지만 몇 년에 걸쳐 수차례 중국을 여행하다보니 중국의 날로 변해가는 발전 모습이 절로 눈에 보이더라. 게다가 우리가 흔히 후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에서 수많은 중국 제품들이 팔리는 것을 목격한 우리는 중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게 언제였지? 하여간 묻어두고 잊고 지냈는데 몇 년전인가 있었던 중국 증시의 붐을 타고 그게 두 배로 불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오호, 한국의 짐로저스났네… 그 때 확 현금화했어야 했는데 ^^; 우리 생각에 중국은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먹을 욕심에 냅두었지. 그랬는데 요즘 반토막이라며? -_-; 반대로 인도는 아무리봐도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인도가 유망하네 어쩌구 하는 소리들을 개뿔이라 생각했지. 그런데 중국과 인도가 맞장을 뜨더라. -_-; 그러나저러나 요즘 인도 증시는 어떻지? 갑자기 궁금하네)

 

메르카토를 한 바퀴 돌고 이번엔 아디스아바바 유니버시티에 가보기로 한다.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곳에서 한 번에 가는 것은 없고 일단 멕시코라는 곳으로 가서(아마도 그 근처에 멕시코 대사관이라도 있는지?) 그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면 갈 수 있다는 것 같네. 일단 멕시코행 합승 트럭에 올라탄다. 둘이 나란히 앞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사람이 차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우리 트럭 운전사도 머리에 풀잎을 매듭지어 묶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대체 사람들이 왜들 이걸 두르고 있나 궁금하던 차였기에 그에게 물으니 곧 다가오는 부활절(Fasika)을 맞이하야 길다란 풀잎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매듭을 지어 앞이마에 오게 한 후 단단히 묶은 것이란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다면 운전사도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인가보다(대략 에티오피아 인구의 반이 정교회 신자이고 나머지 반은 무슬림이라고 한다). 그의 앞이마의 풀잎 모양을 자세히 보니 정말이지 아주 작고 통통한 십자가 모양으로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안 그래도 남부여행을 마치고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오는 길에 도로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닭이며 양을 한 두 마리씩 끌고 나와 판매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일상적인 모습인줄 알았는데 머스 말로는 다가오는 부활절용으로 평소 기르던 가축들을 끌고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흥미가 동해 잠깐 차를 세우고 들고 있는 양 한 마리에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300비르, 우리 돈 3만원이면 양 한 마리 통째로 잡겠더라 ^^; (참고로 이후 아디스에 도착하여 에티오피아 부활절에 대해 정보를 찾아보았더니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은 부활절이 오기 전 55일간의 금식을 한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는 금식이 아니라, 동물성의 것은 달걀이나 우유조차 먹지 않고 오직 식물성으로만 식사를 하는 금식이란다. 이러한 금식이 끝나는 부활절날, 이들은 그동안 먹지 못했던 고기를 한꺼번에 먹기 시작하는데 이 때 에티오피아 전국적으로 100만 마리 이상의 양과 소가 도축된다니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러고보니 지난 여정상 들렀던 레스토랑에서 야채로만 이루어진 인제라를 먹는 사람들을 종종 봤었는데 아마도 그 사람들이 금식 중이었던 정교회 신자였나보다. 그렇다면 혹시 그래서 레스토랑에서도 고기를 안 팔았던 것일까? 고기가 없었던게 아니고?)

 

운전사는 우리를 멕시코가 아니라 갈아타기 편한 곳이라며 중간에 내려주었고(미니버스 요금은 무척 싸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현지인들에 비해 이 요금 역시 조금씩 더 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_-) 이후 마찬가지로 머리에 풀잎 십자가를 달고 있는 한 현지인의 친절한 도움으로 무사히 아디스아바바 유니버시티행 미니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반가운 태권도장 간판>

 

아디스아바바 대학 앞에 내리니 근처 교회에서도 부활절 맞이 행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신자들은 독특한 복장(마치 우리나라 처녀 귀신 같은 ^^;)을 하고 찬송가 같은 것을 열심히 부르며 몰려 다닌다. 무작정 대학 근처를 돌아다니다 그럴싸한 피자가게를 하나(Pizzeria) 발견하고 식사를 한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선 고급 식당에 속할 만한데(그러나 정전의 위력에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 그봐, 오늘 전기 차례라니까? ㅋㅋ) 중간 사이즈 피자가 33비르, 페퍼 스테이크는 37비르에 불과하다.

 

<정전이라 조명덕도 못 본 사진> 

 

에티오피아를 떠나면 이런 인프라가 그리워지겠는데? 이제 우리 여정에 이 이상 저렴한 곳은 없겠지? 며칠 전 아디스에 돌아와 이집트행 항공편 여정을 당기지 못해 속상해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디스를 곧 떠나야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고 있다니 사람 참…(음료 두 병 12비르에 택스 12% = 총 92비르 지불/그러나저러나 이번 여행에서 청량음료를 너무 마시는 경향이 있다. 매일 하루에 한 두 병은 기본으로 먹는 것 같지? 이러다 당 생기지 싶다 -_-)

 

 

배도 부르겠다, 남은 피자를 싸들고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작은 마을 한 복판에 들어와 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바라본다(내가 봐도 이 길로는 앞으로도 한참은 절대 외국인이 다니지 않을 것 같다 ^^;). 파리가 귀찮아서 그렇지,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너무 귀찮게들 들러붙는다고 싫어하는 여행자들이 제법 있던데… 오히려 그 문장이 에티오피아 여행을 맞이하는 내게 선입견을 심었던 것 같다. 따지고보면 우리에겐 좋은 기억을 남겨준 에티오피아인들이 훨씬 많았다.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아디스아바바 대학교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보니 아프리카 연합 건물을 지나 어느새 볼레로드 입구가 보이는 마스칼 광장에 이르렀다. 이왕 여기까지 걸어온 것, 숙소까지 걷기로 한다. 딱히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한 것도 아니지만 나름 알찬 하루야, 우리끼리 히히덕거리면서. 숙소 근처에 이르러 ‘퍼플 카페’에서 카푸치노 케이크(7비르), 믹스드 아이스크림(8비르), 미린다(4비르)를 또 먹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 환상적인 가격에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있는데 마침 껌팔이 소녀가 나타 우리에게 껌을 팔기 시작한다. 엇, 아이의 가판에 우리나라 아카시아껌이 보인다. 내가 놀라 김원장에게 “저거 우리나라 아카시아껌이다” 말을 하는 걸 들은 아이가 오해를 하고 아카시아껌을 얼른 집어 내게 건넨다. 그런데 한 통도 아니고 한 개를 준다. -_-; 김원장이 그간 담배를 개피로 파는 나라는 봤어도 껌을 하나씩 파는 나라는 또 처음이라며 하나 사주라고 한다. 졸지에 아카시아껌이 하나 생겼다. 장하다, 한국 껌이여!

 

@ 오늘의 다큐 : <히스토리채널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 <걸어서 세계속으로 102회 신비와 환상이 숨쉰다-이집트 카이로> 후자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란 카샨에서 우리가 묵었던 호텔 뒷마당에서 벌어졌던 잔치(?)가 바로 결혼식 잔치였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이들이 차로 울리는 ‘빰빠빠빰빰’ 경적은 바로 “여기 방금 결혼한 신혼부부 나가신다~” 뭐 그런 뜻인 것 같다 ^^ (그런 사실을 이제서야 알다니 -_-;) 어쨌거나 이집트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나니 그간 기대하지 않았던 이집트의 관광 인프라가 슬슬 기대되기 시작한다. 이 곳보다 물가는 비싸지만, 그래도 볼거리 널렸고 편리한 점도 많을거야~함시롱.

, 다큐 전자 말이지. 솔로몬왕, 새삼 알고보니 그도 외로웠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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