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재미있었다. 하루를 이렇게 뿌듯하게 채울 수 있다니. 사실 마나카(Manakhah)보다, 예멘에서 제일 예쁜 마을이라는 알 하자라(Al-Hajjarah)보다 마나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역시나 오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첫 장면, 사나발 마나카행 합승택시 출발 직전. 우리 둘을 포함 9명 정원의 택시에 운전사까지 모두 10명이 끼어 앉다. 나는 여성이라 김원장과 떨어져 미리 앞 좌석에 앉아있던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야 했는데 출발 전 우리 둘을 제외한 모든 승객이 비스밀라 비스밀라 어쩌구를 외치며 알라에게 안전을 기원하고 출발하더라.



두번째 장면, 사나 외곽 어드메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멈추어선 택시. 뒷 좌석에 탄 남성들은 모두 내리는데 문쪽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내가 아무리 내리겠다고 해도 자리를 안 비켜주시며 내리지 말라고 말리시네. 알고보니 이럴 경우 예멘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시에 먹지 못하는 듯. 결국 내가 외국인인 장점(?)을 십분 살려 꿋꿋하게 김원장과 식당 한 구석에서 볕을 쬐며 식사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멀리 떨어진 어두운 방에 혼자 틀여박혀 식사를 하시다.

세번째 장면, 바로 내 옆에 앉아 운전하시던 우리의 택시 아저씨, 1대 7의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운전 중 내내 열라 열변을 토하시다. 오늘의 토론 주제는 -예멘어를 이해할 수 없는 관계로 잘은 모르지만- 정치+반미 이야기.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 몇 개-예를 들어 사우디 아라비아, 예멘, 시리아, 아메리카, 부시, 하마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아랍, 알라 등등-로 미루어 볼 때 그러하며,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지구상의 여느 다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혼자 너무 흥분을 하시는 바람에 가끔씩 양 손을 놓고 이런저런 제스추어를 취하는 일이 잦아 안 그래도 꼬불꼬불한 예멘의 산악 지형을 내달리는 차의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의 새가슴이 얼마나 콩닥콩닥하던지. 아참, 그리고 목소리는 왜 또 그렇게나 크시던지, 귀가 다 얼얼~



네번째 장면, 장날의 마나카,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비슷하면서도 매력적인 풍경과 사람들(예멘 역시 주로 남자들이 장 보러 나오긴 했다만). 가장 줄을 길게 늘어선 가게는 아마도 신선한 캇을 판매하는 곳? ^^;



다섯번째 장면, 마나카에서 알 하자라 방면으로 트레킹 중 장터에서 심부름하고 집으로 들어가던 꼬마 아이를 하나 만나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 나같은 아줌마면 무조건 마담, 이라고 부르라고 배우는 모양(나는 예멘인들이 나를 가끔 마담이라고 불러줘서 의아하게 생각했더니만)인지 말끝마다 마담, 마담, 하는 것이 무척 귀엽게 느껴졌다. 아이는 역시나 우리를 본인의 집으로 초대했고, 우리가 마나카 외곽의, 마치 자연 그대로의 동굴 분위기가 물씬 나는(실제 산에 박힌 커다란 자연석의 일부를 실내 계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의 집에 들어섰을 때, 윗층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이의 엄마와 누나는 얼굴을 가리며 아랫층 부엌으로 서둘러 자리를 피했으며 우리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자 아이편에 박하향이 살짝 풍기는 달콤한 샤이를 내왔다. 마치 파키스탄 훈자 카리마바드의 그 아이들네 집에서처럼 우리는 또 한 번 포근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시간을 가진거지. ^^





대체 길가다 우연히 만난 외국인을 언제 봤다고 집으로 초대하는 아이들이며, 또한 갑자기 집을 찾아온 생면부지의 손님에게 아무런 불평없이 자리를 비켜주고 차를 대접하는 가족들이 이렇게 실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신기한 일인지(반대로 초대한다고 얼른 따라가는 나는 또 얼마나 세속적인지 -_-;). 
 

, 이 아이네 집의 외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이 집엔 TV와 접시 안테나가 있었는데(사나에서 경찰로 일한다는 형이 월급 받아 사주기라도 했나?) 아이가 내게 아주 좋은 채널이라며 틀어준 화면 속에선 화장 뽀사시하게 한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고 몸에 달라붙는 서양식 옷을 차려입은 아랍 여성들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 느린 템포의 아랍 음악에 맞추어 서양식도 아니고 아랍식도 아닌 춤을 제법 빠른 박자로 추어대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춤과 노래가 매우 엇박스러운, 좀 우스꽝스러운 조합이긴 했는데 어쨌거나 이런 프로그램에서 간혹 카메라 앵글이 여성의 신체를 쫘악 아래위로 훑어주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더라. 아니 대체 저런 반이슬람적 채널은 어느 나라에서 제작해 쏘아대는거야? 아이는 평소 이 채널을 넋놓고 보는 듯 싶었는데, 우리가 이런 채널은 나쁜거야, 하면서 아이 나이에 맞는 만화 채널을 찾아 돌려 틀어줘도 본인은 ‘댄싱 마담’이 좋다며 계속 그 채널에 시선 고정이더라. 댄싱 마담이라... 마담 호칭에 대한 나의 호감이 와르르 무너지는구나.

 

 

 

다섯번째 장면, 하룻밤 자고 가라는 아이의 간곡한 청 ^^;을 뒤로 하고 알하자라 마을을 향해 오르는 길, 장날 오가는 사람들과 수없이 인사를 하다 그 중 한 청년과 제법 길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고3인 이 청년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정식으로 가이드를 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지금도 본인이 살고 있는 알하자라 마을에 대해서라면 가이드가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은 삐끼스러워 ^^; 제안을 거절했지만 어쨌거나 그 청년을 통해 알하자라 마을의 개관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그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혹 트레킹에 관심이 있다면 소개한다며 건네준 명함에는 www.yementrek.com이라 박혀 있다. 그러고보니 몇 년 전이었지? 그 당시 예멘에 오려고 정보를 모을 때 뜻밖에 트레킹에 대한 정보들이 잡혀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 때 예멘에서 멋진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래서 혹 예멘에 가게 된다면 트레킹을 열심히 해야지, 했었는데 지금에와 내 두 눈으로 직접 살펴보니 예멘의 마른 지표면은 나를 수없이 미끄러지게 할 것만 같다 -_-;). 그러나저러나 이런 산골 마을에 처박혀 산다고 하기엔 걔 참 영어 잘 하더라. 이에 자극받은 김원장이 (내 바램대로) 언제고 어학연수를 받자고 하네. ㅎㅎㅎ 나야 좋지. 우리 어디로 갈까? 

여섯번째 장면, 미스터 슈와제네거를 또 만나다. 슈와제너거씨는... 물론 이름이 아놀드는 아니고... 으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하나?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오만 루위의 버스 터미널, 우리 외에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그와 함께 살랄라행 버스를 탔었고 이후 살랄라에서 헤어진 후 다시 우연히 예멘행 버스를 함께 타게 되면서 말을 섞게 되었다. 4개월간 동남아 순회 공연을 마치고 두바이-오만-예멘을 거쳐 예멘에서의 마지막 1주일을 보낸 뒤 고향인 스위스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행색으로는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수준 ^^;이었지만 물어보니 묵는 숙소는 내내 우리보다 한 등급 위임이 확인되었다(역시 스위스인인가 ㅋ). 그렇게 그와 함께 예멘에 도착했고 다시 헤어졌는데 다음날 세윤 시내에서 두 번인가 우연히 또 만났다. 그 때 그에게서 그가 묵고 있다는 쉬밤 모텔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었기에 이후 우리가 쉬밤 모텔에 묵게 되었을 때 그를 찾으니 그는 마침 당일 오전 일찍, 우연히 만난 다른 독일인 관광객들과 함께 떠났다고 하더라. 그렇게 그와 안녕인가 싶었는데 사나에 도착, 숙소 탐방에 나섰던 우리가 가이드북 강추의 한 숙소에 들렀을 때 그 곳 안 마당 식당에서 엽서를 쓰고 있던 그와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이다. 이후 사나에서 머무는 며칠간, 투어리스트 스팟이 아닌 곳에서 두어번 더 그를 만났고 마지막으로는 어제, 퍼밋을 받으러 갔다가 그를 다시 만났으니 헤아려보자면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지. ^^; 어제 그가 차를 한 대 렌트하여 직접 마나카를 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으나 이렇게 다시 그를 만나니, 그리고 그가 알하자라 마을까지 걸어 올라가기엔 다소 더운 날씨라며 오던 길을 다시 되짚어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하니 이 어찌 반갑지 않을쏘냐. 그는 우리를 알하자라에 사뿐히 올려주고 마나카 외곽의 몇 마을을 더 둘러보겠다며 떠났다. 김원장은 그런 그에게 “내일 사나에서 또 봐~” 웃으며 인사를 건넸는데, 과연 또 만날 수 있을까? 

 

 

 

 

    

 

일곱번째 장면, 알 마그라바에서 사나로 돌아올 때 잡아탄 합승 용달차 안. 앞 좌석엔 운전사와 우리 부부, 뒷 좌석에 또 셋이 더 탔는데 모두가 영어를 못 하는지라 우리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나마 뒷 좌석의 한 사람이 기본 영단어를 몇 개 알아서 그 단어 몇 개와 우리 가이드북의 아랍어 몇 단어를 가지고 서로 모든 대화를 나누는 ^^; 경지에 이르렀는데 정말이지 무진장 재미있었다. 나중엔 모두 다 함께 ABCDEFG~ 알파벳송 노래도 소리 높여 부르고 원투쓰리 숫자도 함께 세어보고(거의 달리는 영어 유치원 수준 ^^;)...



그렇게 사나를 향해 달리다 기도 시간이 되자 모든 승객들과 더불어 허벌나게 캇을 씹어대던(우리에게도 캇을 어찌나 권하던지) 운전사가 근처 가까운 모스크 앞에 차를 세우더니 김원장과 함께 들어가자는 손짓을 한다. 어, 김원장이 같이 들어가도 되나?

그와 함께 모스크에서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에 참석한 김원장에게 이후 설명을 들어보니 들어가기 전에 손발은 물론 캇을 뱉더니 입도 헹구고 심지어 귓속까지 닦더라나? 양말을 신고 있던 김원장에게는 양말 겉으로 물을 묻히는 시늉만 하라고 했단다. 얼결에 김원장은 그와 함께 무슬림 형제가 되어 ^^; 그를 따라 절까지 몇 번이고 하다 나왔다고. 아.. 나도 따라 들어가봤으면 좋았을 것을.. 와방 부러버라..(보통 비무슬림들은 모스크에 들어가지 못한다) 

뒷 좌석의 승객들로부터 몇 단어를 힘들게 조합하여 결국 우리에게 “컴 온,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홈”이라 본인 집으로 초대를 해주기도 했던 운전사, 그야말로 오늘의 히어로가 아닐 수 없다.

 

@ 가계부 :
사나->마나카 합승택시 1인당 600리알
마나카->알 마그라바(Al-Maghraba) 일반택시 1인당 250리알
알 마그라바->사나 합승용달차 1인당 600리알

@ 앞서 밝혔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나카나 알 하자라 자체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오가는 풍경이 무척 수려하고 사나에서 당일치기로 적당한 코스이므로 몇 마디 첨언하자면, 기왕이면 마나카 장날(일요일?) 마나카를 찾는 것이 좋을 듯. 마나카에서 알하자라까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처럼 걸어도 좋고 아니면 원웨이 차편을 이용해도 좋다. 기왕 차를 탄다면 알하자라가 마나카보다 윗마을이므로 갈 때 타고 알하자라 마을을 구경한 뒤 천천히 마나카로 걸어내려오는 것이 나을 듯. 오후 1시가 넘어가면서부터 마나카의 장은 파장 분위기가 되면서 에브리바디 캇 타임에 돌입하므로 -_-; 사나로 돌아올 차편을 수배하려면 그 전에 모든 구경을 끝내거나 아니면 아예 마나카에서 4시경까지 개기다 돌아오는 방법을 택하면 되시겠다(우리는 1시가 안 되어 마나카로 돌아왔는데도 내려가는 차편이 별로 없어 일단 산 아랫마을 알 마그라바까지 택시를 타고 내려온 뒤 다시 합승차를 이용했다). 물론 슈와제네거처럼 마나카에서 잘 수도 있으며(현재 마나카에는 숙박업소가 두 개 이상 있다), 생각보다 알하자라 마을은 이미 관광지화되었는지 주민들이 달라붙는 경향이 있더라. -_-; 그래서 이쁘다는 알하자라보다도 오히려 보다 토속적으로 느껴지던 마나카가 더 좋았다.

@ 딴 이야기지만, 저녁에 사나를 돌아다니다 이비인후과 간판을 발견,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김원장이 본인 역시 한국의 이비인후과 의사임을 밝히고 클리닉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니 여기 원장님이 기꺼이 방방이 안내를 해주셨다. (김원장과 달리)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남자 간호사와 ^^; 역시나 분리가 된 남녀 대기실. 그리고 보통의 예멘인들에 비해 확연히 풍채가 좋으신 -_-; 원장님(그러고보니 이 나라엔 비만이 별로 없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