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다. 계획이 또 틀어졌다. -_-; 어제 니즈와를 포기하면서까지 오늘의 일정을 위해 투자했는데도 말이다. 워낙의 오늘 계획은 이브라를 출발, 수르를 거쳐 Tiwi Wadi TiwiWadi Shab을 보고 다시 수르를 통과, Al-Kamil로 빙그레 돌아가는 포장도로 루트를 선택하여 Ras al-Jinz에 이른 뒤 늦은 밤, 알낳는 거북이를 보고 자는, 아주보람찬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해낸 미션은 와디(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계절천) 두 개를 본 데 그쳤다. 그것도 대충

침으로는 야채를 가득 넣어 뜨끈한 김치국을 끓여먹었다. 하루 묵었을 뿐이지만 괜시리 정이 가는 이브라의 숙소를 나서면서 전화카드를 사고(2리알) 주유를 하고(리터당 300원꼴) 수르를 향해 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황토빛의 산들은 자취를 감추고 갑자기 아름다운 모래사구들이 나타났다. 이 곳이 바로 오만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는 거대한 Wahiba Sands. 바람이 불면 도로가 사구에 잠식당하기라도 하는지 내게는 마냥 참신한 <사구 주의> 표지판이 도로변에 심어져있다. 하긴 어제는 낙타 주의 표지판도 있었다. 실제로 도로변에 낙타가 어슬렁거리기도 했고. 마치 아프리카 사파리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자세히 보니 얼굴이 기린이랑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 곳이 아프리카라면 얼른 차를 세우고 낙타 사진을 열라 찍어댔겠지만, 오만의 차들은 매우 빨리 달려대는지라 그렇게 행동하기엔 좀 겁이 난다. 어쨌거나 지나치는 트럭에도 한가득 낙타들이 실려간다. 쟤네들은 어디로 가는걸까? (언젠가 TV를 통해 외국에서 어린 아이들을 사다가 낙타 레이싱 선수로 빡세게 키우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면 맞다. 그 동네가 바로 이 동네다)

끝없어 보이는 사막이 어느 순간 끝나고 다시 작은 산맥 사이를 달려 산도 이제 벗어나는가 싶더니 수르에 도착했다. ~ 다시 바다다! 시원시원~ 등대를 보러 만으로 걸어나가니 배를 모는 아저씨들이 호객에 나선다. 일본인이냐면서. , 처음부터 일본인이냐 묻는 것으로 보아 그래도 여기는 나름 노출된 관광지인가보군.

 

한가로운 나와는 달리 김원장은 다소 마음이 급하다. 오늘 갈 길도 멀다는 것이다. 그래, 그럼 더 이상 수르에서 지체하지 말고 티위를 향해 가자! 수르에서 티위를 향해 달리다 동네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맨다. 하지만 현지인의 도움으로 다시 제대로 된 길 위에 올라선다. 문제는 이제부터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 지도에서는 수르와 티위의 중간 지점인 Qalhat까지는 포장이 되어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매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_- 티위까지 역시 얼마나 상태가 좋지 않은 비포장도로가 펼쳐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목하 도로공사중이다).

 


덜컹덜컹 힘겹게 콸햇을 지나면서 김원장이 1Km만 더 가보고 계속 이렇게 상태가 안 좋으면 그냥 돌아가자, 했는데 다행히도 그 지점이 최악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씩 포장도로를 쌩쌩 달려주기도 하면서 어찌어찌 티위에 도착했다(중간의 한 도로공사 구간에서 일단의 중국인 인부들을 보았다. 예전 우리나라 중동의 역군들이 생각나더라). 그런데 과연 이런데에 그럴싸한 와디가 있을까?

티위 입구에 너저분한 오아시스가 하나 있긴 하다. “길이 안 좋으니 이거라도 와디를 본 셈 치고 지금이라도 돌아 나갈까?” 김원장이 농담처럼 말을 던진다. 하지만 정말이지 조금만 더 가면 와디 티위와 와디 샵이 나올텐데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순 없다. 마지막 피치를 올려 결국 와디 티위에 도착한다. 뜻밖에 백인 관광객들이 제법 있다. 단체 투어팀도 있고, 사륜구동 차를 몰고 개별적으로 찾아온 팀도 여럿이다. 하지만 이 마을 역시 새로 도로를 놓는 공사 중이라 와디 입구 주변은 어수선하기 이를데가 없다. 초장부터 분위기가 영 황이다. 낑낑거리고 열심히 찾아온 곳치고는 실망스럽구나. 그래도 남들처럼 도시락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와디 상류 계곡를 향해 올라가 본다. 한 낮인지라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도 쾌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얼마간 걸으니 그럴싸한 풍경이 있고 또한 그늘이 있어 자리를 잡고 앉는다
. 싸온 주전부리들을 주섬주섬 먹고 있는데 다른 관광객들 몇이 우리를 지나 계곡을 따라 더 올라간다. 어랍쇼? 저 위에 뭐가 있나봐? 그들이 어디를 가는지가 궁금해져 다시 자리를 거두고 따라 올라간다. 그렇게 상류쪽 나름 멋지구리한 곳에 다시 자리를 잡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그룹이 우리를 지나쳐 올라간다. 그래서 우리도 다시 따라 올라간다. 이거 대체 끝이 어디야? 가이드북을 제대로 읽고 오지 않은지라 김원장도 나도 어디가 끝인지, 끝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얼마나 올랐을까
. 다소 시야가 트이는 곳에 왔는지라 눈으로 내 발과 이어진 길을 가늠해보니 길은 시야가 미치는 계곡 절벽 끝까지 쭈욱 이어진 뒤 절벽 뒤로 숨어 돌아간다. 저 절벽을 돌아가도 끝이 아닌가봐. 아이고, 이젠 지친다. 어쩔까? 우리 오늘 갈 길도 멀잖아. 우리는 이쯤에서 그만 후퇴하기로 한다. 설령 끝에 엄청 근사한 와디 샵이 이어져 있을지라도 올라오면서 본 오아시스들에 만족하도록 하자, 자위하면서. 가봤어야 안 와봤음 후회할 뻔 했다 소리를 하지, 안 가보면 그냥 모르고 지나가는 거 아니겠어?

 

돌아서서 내려가는 길에 한 무리의 백인들을 또 만난다. 마찬가지로 땡볕에 이 길을 오르는 게 힘든가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돼? 묻는 그녀에게난 포기해서 모른단다, 얘야”, 해준다. 그녀가 알듯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차로 돌아오니 김원장이 다시 두통약을 찾는다. 오늘 두통의 이유로는 오는 길에 착용했던 선글래스의 도수가 좀 안 맞아서 그런 것 같단다. 예민하기도 하지. ^^;

, 이젠 얼른 거북이 보러 가자. 티위 마을을 벗어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아까 들어올 때 보았던 너저분한 오아시스에와디 티위라 쓰여진 표지판을 발견한 것이다. 아까는 진입 반대 방향이라 미처 못 보았던 표지판이다. 뭐야, 이게?

상황 파악을 다시 해보니 이 지저분한 오아시스가 바로 와디 티위였다. 그리고 우리가 와디 티위라고 믿고 올랐던, 그리하여 그 끝에 와디 샵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와디는 바로 와디 샵이었다. -_-; 그러니까 우리는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구경을 한 셈(나중에 가이드북을 읽으니 와디 샵의 경우 그 길을 따라 2시간 정도 오르면 수영이 가능한 동굴이 나오는 모양이다. , 2시간이나?)

힘겨운 등산길이 아니라면 보통 되짚어 돌아오는 길은 처음 찾아가는 길보다 좀 더 짧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장 상태가 좋지 않았던 콸햇 마을 비포장도로 구간은 살짝 실례를 무릅쓰고 현재 열라 공사중이지만 그래도 마을 도로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은 구간을 통과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수르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었다. 이제 거북이를 보러 남하하기만 하면 된다. 가이드북에선 수르에서 바다 거북 산란지인 라스 알 진즈까지 최단 거리로 나있는 도로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지라 4륜 구동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한참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확인해보니 어제의 경우와는 반대로 그 구간이 이제 상당부분 포장이 된 모양인지 우리 차로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론상 겨우 1시간 남짓이면 남부 해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헤헤, 이것 참 반가운 소식인데?

... 김원장이 오늘은 그만 이동하고 싶단다. 아직 두통이 안 가라앉은 모양이다. 그래? 그럼 가지 말자. 알낳는 거북이야 동말레이지아 따위의 가까운 곳에서 또 볼 기회가 있겠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여행에 있어 아쉬움이 줄어들었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저렴한 숙소를 찾아 수르의 구시가지로 들어오니 다행히도 숙소 간판이 금방 눈에 띈다. 하지만 저 자리라면 좀 시끄러울 것 같군. 마침 주변에 Hotel Apartment라 쓰여진 건물들이 보인다. 저건 뭐지? 찾아가 보니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콘도 같은 곳이다(부엌이 딸려있는). 가격도 나쁘지 않다(12리알). 그래, 오늘은 그냥 여기서 푹 쉬자

뭐 쓸만한 것이 있으려나, 부엌을 여기저기 뒤져보고 있는데 침실에서 TV 채널을 돌려보던 김원장이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어라, KBS World가 잡힌다. 흐미~ 대박났네. 다시 여행과 생활이 만났다. ^^ 오늘 오후는 TV와 함께! 우리가 한국 방송을 이렇게 반가워하는 이유를(한국에서 평소 우리는 TV를 보지 않는다) 김원장은 비일상 한계점(?)인 여행 만 3주째에 이르렀기 때문이란다. 어라, 그러고보니 정말 딱 만 3주째 되는 날이네? 신기하다. 정말 그래서 그런걸까?

에라, 특별히 한 일은 없다만 오늘 저녁도 라면 특식이닷! 먹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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