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쉬라즈에서 테헤란으로 오는 비행기는 3-3의 좌석 배열이었다. 처음엔 배정대로 나는 창측, 김원장은 가운데 좌석에 앉았는데 복도측 좌석에 젊은 여성이 앉아야 하는 관계로 우리 둘이 자리를 바꿨다(이슬람 지역을 여행할 때 흔히 발생하는 자리 바꿈 ^^;). 그런 인연으로 내 옆에 앉게 된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은 Foroogh.

 

바로 전 날이 노루즈였으므로 나는 그녀가 고향인 쉬라즈에 방문했다가 다시 테헤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집이 쉬라즈이며 다가오는 26, 테헤란에서 있을 본인의 결혼식을 위해 이 비행기에 오른 거라 답했다.

 

·         결혼? 그럼 새신부구나? 그래서 이렇게 예쁜가보네. 결혼 축하해!

 

쉬라즈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녀를 통해 그녀의 남자친구, 그러니까 새신랑이 테헤란 사람이며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인재로 마찬가지로 그도 영어를 매우 잘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 신랑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         그럼 너는 어디서 영어를 배웠길래 이렇게 영어를 잘하니?

·         나는 그냥 이란에서 공부했어.

·         결혼을 해서도 일을 계속할 예정이야?

·         그럼, 물론이지. 결혼 후에도 계속 학생들을 가르칠거야. 하지만 아마도 테헤란에서 새로이 직장을 잡아야하겠지.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는 이란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더니.

 

·         이런 질문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너희 둘은 그럼 중매결혼이야?

·         호호, 아니, 우리는 2년 전쯤 한 영어 모임에서 만났어. 처음에는 그냥 친구로서 알고 지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지. 그래서 이렇게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         이란인들은 보통 몇 살때 결혼을 하는데?

·         ... 지방에 따라, 가풍에 따라 크게 달라. 지금도 시골에서는 여자나이 15~16살이면 혼인을 시켜. 하지만 도시에서라면 그렇지 않아.

·         넌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

·         그럼, 29살이야.

·         스물 아홉? 그럼 이란 기준으로는 결혼이 늦은거야?

·         아니, 안 그래. 요즘 주변엔 내 나이보다도 더 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아. 알다시피, 여성들도 공부하고 일을 하다보면 저절로 나이를 먹게 되잖아.

 

, 흥미로운 사실이다. 난 대부분의 이란 사람들이 20대 초반이면 결혼하는 줄 알았더니.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         (김원장을 가리키며) 남편이야?

·         .

·         결혼 몇 년차야?

·         8.

·         몇 살때 결혼했는데?

·         그 때가 스물 여덟이었으니까 너랑 비슷하네.

·         그럼 지금 네 나이가...

·         서른 여섯이지(아마 이란인 기준이라면 만 서른 넷일라나? ^^;).

·         우와, 동양인들은 왜 이렇게 실제보다 어려보이지? 식생활이 달라서 그런가?

·         ㅎㅎㅎ 기후도 한 몫하지 않을까? 여기는 너무 건조하고 볕이 따가워서 피부에 안 좋을 것 같아.

·         맞아 맞아. 건조해서 피부가 쉽게 상해. 그래서 이란 여자들은 로션을 무지 발라대지. 남편은 무슨 일을 해? 그리고 너는?

·         의사야. 이비인후과. 나는 간호사고.

·         그래? 내 남자형제도 의사야. 반갑네. 나는 의료계통 일이 매력적이더라(뉘앙스상으로 본인 전공이 어학쪽이라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저러나 남편이 의사라니 lucky하구나.

·         ㅎㅎ 우리 엄마도 그렇게 이야기하곤 하지. 남편이 의사라 lucky하다고.

·         하하, 정말?

·         ^^;

 

이미 우리나라에선 최고의 신랑감 순위에서 다른 직종에 밀린지 한참 되었지만, 이란에서 의사가 얼마나 인기있는(돈 잘버는?) 직업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 하나 더 해볼까? 이란의 숙소에서는 숙박계를 쓸 때 특이하게도 아버지 이름 ^^;과 더불어 직업을 쓰는 란이 있다. 지금 묵고 있는 테헤란의 숙소 주인도 그런 이유로 김원장이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리셉션 앞을 왔다리갔다리하던 김원장을 붙들고 전공이 뭔지, 전문의가 되려면 얼마나 오래 공부해야 하는지, 병원을 연지는 얼마나 되었는지를 꼬치꼬치 캐더니 마지막에 이렇게 묻더라.

 

·         그런데 왜 여기에 묵는거지? 여행 기간이 얼마나 돼?

·         6개월 계획이야. 그런데 왜 여기에 묵냐니. 그게 무슨 뜻이지?

·         아하, 보통 의사들이라면 최소 3성급에서 4성급 호텔에 묵거든. 그런데 왜 네가 이런데 묵나 해서. 하지만 6개월 여행이라니 이해가 되네. 여행 기간이 길어서 아껴야 하는거구나?

·         -_-;

 

이 대화로 미루어보면 이란의 의사들이 돈을 좀 만지는지도 모른다. 이란의 공공 의료는 거의 무료 수준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아니면 버마같은 나라처럼 공공 의료 부문은 저렴해도 고급 서비스를 위해 사설 의료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는걸까? 우리가 묵고 주로 돌아다니는 테헤란의 남부에 비해 북쪽 동네는 서울 강남마냥 꽤나 잘 사는데, 이 지역에서 개인 클리닉들을 특히 많이 볼 수 있다. 둘러보니 없는 과가 없더라.

 

여하간 다시 Foroogh과의 대화로 돌아와 보자.

 

·         네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되니?

·         테헤란 시댁에서 결혼식겸 잔치를 할 거야. 양가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해서 보통 며칠씩 밤마다 춤추며 놀지.

·         그럼 네 가족들도 모두 테헤란으로 가야겠네?

·         ,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내 언니와 형부, 그리고 조카. 저쪽에 앉아있는 애들이 내 동생들이야. 부모님은 노루즈 때문에 오늘 비행기 티켓을 못 구해서 내일 따로 올라오셔.

·         신혼 여행은 어디로 가?

·         아직 안 정했어. 아마도 말레이지아가 되지 않을까 해(이란 여성들에게 여권이 안 나오던 시절은 지났나보다. 아니면 포스에서 느껴지듯 양가 모두 이란의 돈 많은 집안이던가). 어디 좋은 곳을 알고 있어?

·         말레이지아보다는 태국이 나을 것도 같아. 허니문 인프라가 아주 잘 갖춰져 있거든.

 

그녀 역시 다른 이란인들처럼 이란 정부에 대해 불만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복장 규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         스카프 두르기 귀찮지? 우리도 이게 불편해.

·         좀 불편하긴 해. 하지만 때때로 스카프를 두른 이란 여성들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져.

·         아마 우리는 오랜 시간 해온지라 익숙해서 그럴거야. , 볼래? 내가 두른 스카프는 너와는 다른 모양이야. 그래서 이렇게 두를 수 있어. 스카프에도 몇 종류가 있거든. 너도 지금 그 스카프를 가지고 다른 방법으로 묶을 수 있어.

 

그녀는 턱 밑으로 묶은 내 스카프의 매듭을 풀러 뒤로 넘겨 색다른 방식으로 묶어주었다. 건네주는 거울속 내 모습을 보니 이란에서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보다 노출을 일으키는 새로운 방식이 마치 날라리처럼 느껴지더라.

 

·         이거 너무 야한거 아냐?

·         괜찮아. 넌 외국인 여행자잖아 ^^

 

그녀를 통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         너희는 아직 아이가 없어?

·         , 아직 ^^;

·         나도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보통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그 후 부모들은 육아에만 온통 정신을 쏟게 되거든. 그렇게 되면 부부의 시간은 사라지지(이 부분이 참 놀라웠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의 과거나 미래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만 어쩔 땐 지금과 같이 나와 다른 얼굴을 가졌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게다가 난 아이들이 싫어.

·         한국 어른들 말씀에 아무리 결혼전 아기를 싫어하는 여성이라도 막상 본인이 출산을 하게되면 아이를 엄청 예쁘게 여기게 된다는 말이 있어.

·         어쩜,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결국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은 모양이다 ^^).

·         보통의 이란 가정은 평균 몇 명 정도 아이를 가져?

·         요즘은 거의 하나나 둘이야. 여러 명의 아이를 갖는건 우리 부모 세대에서나 그랬지.

 

그녀는 이란인으로서 당연히(?) 우리를 본인의 결혼식에 초대했다. 이틀 후 오만으로 날아가야 할 우리는 너무나 참석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며 완곡히 거절했는데 그녀는 그런 사실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정 그렇다면 오늘이라도 함께 지내자나? 내가 새색시 결혼 준비에 무척 바쁠텐데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내일부터는 할 일이 있지만 오늘은 괜찮다며 다시금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한국인으로서 벌써 수십년을 살아온 나로서는, 결혼을 며칠 앞둔 신부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생전 처음보는 외국인을 본인의 집도 아니고 예비 시댁으로, 그것도 미리 시댁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은 채 초대를 한다는 스토리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이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대체 어찌 가능한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이상한건가, 그들이 이상한건가.

 

짧은 비행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금새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먼저 나의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며 한국으로 올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고 했더니, Foroogh 역시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며(09123760921) 남아있는 이틀간 테헤란에 머물면서 도움이 필요한 어떤 상황이 생기거나, 혹 마음이 바뀌어 본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다면 언제든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본인이 사용하던 거울을 선물이라며 선뜻 내게 주는 것이 아닌가?

 

·         어머, 정말 고마워. 이란에서는 거울이 아주 좋은 뜻을 지닌다고 들었어.

·         맞아, 거울은 행운을 상징하지. 부디 또 만날 수 있기를 빌어.

·         나도 그러기를 바래. 우리, 다음에 만날 땐 아이도 생겼겠네?

·         호호, 아마도 그렇겠지?

 

이란을 다시 와야할 이유가 내게는 분명히 생겼다. Foroogh, 다시 한 번 결혼 축하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 Darband 계곡에 다녀오기 : 오늘은 테헤란 시민들에게 북한산격인 다르반드 계곡에 다녀왔다(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1호선 북쪽 끝까지 간 후 그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다르반드행 합승택시를 탈 수 있는 산 아래 로타리에서 하차할 수 있다). 산 자체는 우리의 산과 너무도 다르게 생겼더라만, 산으로 오르는 길의 정겨운 풍경은 우리네 유명산의 모습과 다를게 없더라. 

 

 

 

 

 

# 개인적으로 여유 없는 이란 여행에 있어 테헤란을 방문지로서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다거나, 테헤란에서만 가능한 인프라가 필요하다거나, 여행지간 이동 중 경유지 삼아 테헤란에 묵을 기회가 생긴다면(그리고 볼일은 공용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 Firouzeh Hotel을 추천하고 싶다.
홈페이지 http://www.firouzehhotel.com/language_english/facilities.shtml


<무사비 아저씨와 대화중인 김원장>

숙소가 좀 낡았고, 그다지 조용하지도 않고, 인터넷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리고, 방금 밝힌 화장실 문제도 있긴 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비 아저씨의 친절함과 유용성(?)을 생각한다면(더불어 무료 조식 포함)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아저씨 혼자 저렇게 일하다가 쓰러지지나 않을지 몰라. 직원중 똘똘한 놈 하나만이라도 교육 시켜 업무를 나누던지 하시지...

 

# 오늘의 영화 : 무서울 것 같아 나는 거절하고 김원장 혼자혈의 누를 보다. 다본 뒤 한국 영화의 탄탄한 구성에 또 한 번 감탄하던 김원장이 나보고도 보라고 계속 추천하는데 볼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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