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아침 산책길에 이미 삔우린행 픽업 트럭이 어디에서 서는지, 그리고 숙소에서 삔우린까지의 차비가 얼마인지 재차 확인 사살까지 해둔 터라 정거장까지의 걸음은 가볍습니다. 매캐한 경유 냄새와 찌든 땀 냄새가 도시 곳곳 너무나 깊숙이 스며든 이 곳, 만달레이. 이 곳을 떠나 식민지 시대 영국 지배계층의 여름 휴양지로 쓰였다는 삔우린으로 가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그렇듯 미지의 낯선 장소를 찾을 때면 꼭 느끼는 설레임에 젖어 산들거립니다.

 


<삔우린에 우리를 데려다 줄 픽업 트럭.

사람이 다 차야, 아니 넘쳐야 출발합니다> 

 


<하나 둘씩 사람이 차에 오릅니다>

 

차는 힘겹게 산길을 오릅니다. 해발 1,070m에 위치한 그 곳, 우리가 어제 도착하려 했던 그 곳, 만달레이보다는 훨씬 시원할 그 곳을 향해 차는 안타까울 정도로 헉헉거립니다. 그 옛날, 영국인들도 이렇게 산을 올랐을까요? 더위를 피해 더위를 먹어가며 산에 올랐을까요? 그 보상으로 존재했던 삔우린에 2시간이 걸려 도착합니다. 남들보다 비싼 웃돈을 주고 운전사 옆 좌석에 앉아 왔건만 그래도 좁고 덥고 흔들리고 시끄러움에 절은 탓에 김원장은 지쳐 합니다. 이런 날은 원했던 숙소에 방이 없기 마련이지요. 차선이 최선이기를 바라면서 낯선 이름의 호텔 프런트에서 까다롭고 두터운 버마식 숙박계를 작성합니다.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던 차는 휴게소에 들러 찬 물로 엔진을 식힙니다>
 

삔우린에는 이상하게 인도인이 많이 보입니다. 버마인과 차별되는 외모뿐만 아니라 그들만의 식단, 외국인을 대하는 적극적인 태도에서도 그들은 눈에 뜨입니다. 인도인 유입설에 대해 우리 나름대로 여러 가설을 세워보지만 현재 우리 주위에 명쾌한 답을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중에 양곤에 가면 도니님께 물어봐야지, 그냥 기억만 꼭꼭 눌러 해 둡니다.

 


<삔우린의 대중 교통 수단인 마차. 주로 인도인들이 몹니다>

 


<마차안의 깨진 거울을 통해 바라본 우리>

 

시장은 생기가 넘칩니다. 만달레이에서는 나이트 마켓(야시장)에서만 몸을 푼 지라 본격적인 시장 탐색에 들어갑니다. 푸르른 야채들, 싱싱한 과일들, 어디에서 왔을까 가늠하기 힘든 생선들… 우리 부부는 이 생동감을 넘치도록 사랑합니다(나중에 보니 버마에서는 그저 시장 구경만 하다 온 것 같다 여길 정도로 많은 시간을 장에서 보냈습니다). 아, 저기 강냉이가 보입니다. 오래간만에 재래시장에서 장을 봅니다. 과일도 이것저것 사고 국수를 파는 간이 포장마차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기도 합니다. 역시나 놀랍도록 시원해진 늦은 밤까지 장을 들락날락 거리며 그렇게 삔우린에서의 하루를 보냅니다. 영국인들도 삔우린의 이 생동감을 사랑했을까요? 아니면 이 시원함을 사랑했을까요?

 





ARTICLE

버마에서의 첫 아침은 생각보다 풍성합니다. 바나나와 커피, 잼과 버터가 딸린 토스트, 달걀요리에 주스까지 도마뱀이 우는 숙소의 식당에서 느긋하게 먹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도마뱀이 우는 소리’를 압니다. 한국에 도마뱀이 우는 소리를 아는 제 또래 여자가 얼마나 더 있을까요? 간밤엔 침대도 꺼진데다가 에어컨을 켜고 자자니 춥고 팬을 돌리기엔 시끄럽고 그렇다고 그냥 자기엔 더워 조금 잠을 설쳤습니다. 창 근처 어딘가에서 도마뱀이 우는 소리는 양념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유난히 생생하게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식당 천장을 바라보니 어제는 얼굴이 보이지 않던 놈이 오늘은 아침부터 고개를 내밉니다. 이 자식도 식사를 하러 아침부터 유난을 떨었나 봅니다. 일찍 일어나는 도마뱀도 야행성인 벌레를 잘 잡을 수 있을까요? 
 

어제의 멀미 탓으로 계획했던 일정이 시작부터 어긋나 버렸습니다. 워낙 깨어지라고 있는 계획이니 그다지 아쉬움은 없었습니다(하지만 터럭만큼의 아쉬움도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그냥 하루 늦게, 천천히 버마의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하루 늦는다고 해서 이 자리에서 변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리라는, 근거를 댈 수 없는 확신이 막연히 드는 가운데.

 

배는 그득 찼을지언정 입은 고춧가루를 그리워합니다. 실제 여행지에선 입보다 머리가 앞서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 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그제 점심은 분명 한식이었고 평소 저희는 양식도 잘 먹는데 말이죠. 이상하게 여기가 한국이 아니다, 싶기만 하면 여지없이 한식이 미친 듯이 그리워집니다. ‘인식’이 그만큼 강렬한 것이었던가요. 우리는 또 한국에서였으면 미련하다 말했을 선택을 아무 죄책감 없이 합니다. 오전에 배를 꺼뜨리고 점심으로 한식을 먹자고. 그리고 삔우린으로 가자고.

 

배를 꺼뜨리기 위해 가이드북을 뒤적입니다. 이상하게 영어는 이렇게 닥쳐야만 읽힙니다. 이번 여행이 끝나도 또 한 번 익숙한 다짐을 하겠지요. 영어 공부 좀 해야지, 라고요. 마찬가지로 여행 후 곧 그 다짐은 오뉴월 눈 녹듯 사라집니다. 언제 여기에 눈이 내렸었냐는 듯. 지치지 않는 반복적 다짐입니다.

 

지난 여름 태국과 캄보디아의 여행으로 우리는 이제 유명 관광지는 안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곳 만달레이가 워낙 찬란한 문화 도시이다 보니 가이브북에서 소개하는 곳 역시 주로 발음이 잘 안 되는 사원과 유적지들입니다. 음…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그 중 만달레이 힐을 고릅니다. 누군가 일몰을 보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적어도 지금 가면 시끄러운 관광객들은 없겠군, 우리는 자위하며 트리쇼에 기댑니다.

 


<만달레이 힐 가는 길.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 

 

생각보다 트리쇼는 한참을 달립니다. 자전거 뒤에 실려가며 뒤로 멀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버마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늘씬하여 오빠와 저의 부러움을 삽니다. 물론 그 부러움에 있어서는 주체와 객체가 서로 다릅니다. 저는 저와는 너무도 다른 그 모습 자체가 부러운 것이고, 오빠는 그런 여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버마 남자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듯 보입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우리는 한 가지 부러움을 갖고 있네요. 바로 ‘내가 가지지 못함’에서 오는 부러움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들 역시 나를 부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이 풍만함을 부의 한 상징으로 여길 수도 있으니까요. 한 나라의 국민이 공유하는 가치관은 시대적 공간적으로 달라질 수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한참 떨어진 작은 나라에서 비행기를 4번이나 타고 여기 와 있으니까요.

 

만달레이 힐은 근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맨발로 올라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오전이라 그런지 오르는 이도 별로 없습니다. 지붕이 딸린, 독특한 양식으로 꾸며진 계단 길을 하나하나 올라가는 기분이 아주 상쾌합니다. 어디가 이 계단의 끝인지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마냥 여유롭습니다. 룰루랄라~ 저희 부부는 세월아 네월아 즐겁게 올라갑니다. 물론 체력이 딸린다 느끼기 전까지의 감정이 그랬단 이야기입니다. 어느 순간, 자의보다도 느리게 따라오는 다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음… 이젠 어서 이 계단의 끝이 보이기를 바랍니다. 다행히, 곧 끝이 나타났습니다.

 


<오전에는 관광객들 대신 개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한국에서 온 뚱뚱한 아줌마 하나가 만달레이힐을 오르고 있네요> 

 


<지붕이 참 이쁩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오르기 좋겠네요. 참, 눈은 안 오겠군요 ^^;>

 

이름에서 오는 느낌은 그저 전망 좋은 작은 동산이었는데 – 아마도 일몰 운운 하니까 캄보디아의 프놈바켕(Phnom Bakheng) 이미지를 담고 올라갔던 것 같습니다 – 막상 정상에 오르니 휘황찬란한 궁전이 있습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갔으니 이게 궁전처럼 보여도 아마 사원이겠지, 몰래 속으로 생각합니다. 궁전이든 사원이든 오히려 저희 부부의 관심을 끄는 건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만달레이의 전경입니다. 동서남북을 빨빨거리며 마음 속에 전경을 담습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양곤의 그것처럼, 만달레이에도 뾰족한 금빛 모자를 쓴 흰 탑들이 여러 곳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언덕의 남쪽으로 펼쳐진 엄청난 크기의 만달레이 요새입니다. 중국의 자금성을 연상시키는 요새를 멍청히 바라보며 또 어떤 왕이 국민들을 욜라 고생시켰구나, 잠시 생각합니다.

 


<정체가 아직껏 파악안 된 번쩍거리는 정상의 건물.

제게는 영원히 미확인 물체로 남을 듯> 

 


<만달레이 평원에 여기저기 금빛 파야(paya)가 보입니다>

 

내려오는 건 역시나 잠깐입니다. 우리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동안 혹 우리 트리쇼 아저씨가 기다리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맡겨놓은 우리 신발을 가지고 도망갔으면 어떡하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잠깐 합니다. 속물인 제가 생각 키로는 오전 내내 우리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대가로 아까 약속한 2500원보다 우리 신발이 훨씬 더 비쌌기 때문입니다. 내려와보니 저는 바보뿐만 아니라 속물에, 아직도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맨발의 청춘. 그래도 오르기 전엔 제법 하얗더랬습니다>

 

“See you again”

 

인사는 그렇게 하고 숙소를 나섰지만 정다운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가까이는 며칠 뒤, 인레 호수를 갈 때 만달레이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니 의지를 가한다면 가능도 하겠지요.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어디 뜻대로만 된답니까? 어쩌면 저는 영원히 이들을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버마표 스타콜라. 우리가 흔히 먹는 코카콜라는 800원인데 이 쌍둥이 동생은 15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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