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모닝콜도 씹더니만, 오늘은 잊지 않고 제 시간에 모닝콜을 넣어준다. 으음, 여기가 어딘가, 어라, 집이 아니네. 아, 맞다. 방콕이지.

 

오전 7시 20분, 버마 양곤행 비행기를 타려면 오늘은 좀 서둘러야 한다. 우선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체크아웃부터 하고, 체크인때 함께 준 아침 부페 쿠폰을 들고 식당으로 향한다(정보 1: 국제선을 타려면 2시간 전에는 수속을 밟으라고 하는데, 아마리 에어포트는 새벽 5시부터 조식이 가능하니 먹고 갈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당신이 한겨레 독자라면 아래를 클릭하라. 버마 여행에 얽힌 복잡한 사연과 더불어 내가 왜 미얀마를 버마라고 부르기로 했는지에 대한 변이다. 이는 또한 우리 부부가 티벳을 중국의 서장자치구라 부르지 않는 이유와 그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http://www.hani.co.kr/section-021069000/2001/07/021069000200107110367066.html

 

식당에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출발 1시간 30분을 남겨두고 마지못해 공항으로 나간다. 체크인 수속을 마치고 1인당 500밧인 출국세를 내기 위해 가져간 US$의 일부를 태국 밧화로 다시 환전을 한다. 안 그래도 버마에서는 위조지폐 문제로 일련번호가 CB로 시작하는 100불짜리 지폐는 통용이 안 된다고 했는데(정보 2) 내가 환전해 온 지폐 중 한 장이 공교롭게도 CB로 시작을 한다. 얼른 이 놈을 골라 환전소에 내밀며 한 마디. “1000밧만 환전 해주시고 나머지는 US$로 주셔요”

 

3만원 가까이 돈을 지불하고 태국 출국을 한다. 태국에서 한 일이라고는 공항 안(?)에서 몇 시간 잠 잔 것 밖에 없는데, 이러고도 출입국 도장을 쾅쾅 찍다니… 시계를 바라보니 그리고도 시간이 좀 남는다. 나는 다시 12시간 이내 트랜짓 승객에게는 부과를 안 할지도 모르는 출국세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기 시작한다(이런 나를 오빠가 좀 강박적이라는 듯 바라본다). 하지만 공항 직원들은 어젯밤과 마찬가지의 반응이다. 자기들은 잘 모른다 이외에는 다른 답을 구할 수 없다. 이렇게 3만원은 날아가고 마는가. 아마리 에어포트 호텔 이용시 이렇게 예상치 못한 추가비용이 들 바에는 차라리 공항 내부의 Day Use Room을 이용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래, 다음 번에 기회가 닿으면 Day Use Room에 대해 알아보자(사실 여행을 오기 전에 아마리 에어포트 측에 이에 대한 문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떠나오는 그 순간까지도 답변을 받지 못해 좀 서운해하던 차였다).

 

3-4-3 배열의 좌석을 타고 방콕에 왔는데 양곤행 비행기는 2-3 배열의 작은 항공기이다. 자리를 찾아가니 Emergency Exit가 있는 줄의 좌석이라 중간줄인데도 앞뒤 간격이 꽤 넓다. 체크인시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나를 즐겁게 했던 Myanmar Airways International의 승무원 아저씨가 이런 배려를! 기대치도 않았던 좌석 배정에 우리는 신나라~한다(정보 3 : 우리와 같은 항공기를 이용하게 된다면 체크인시 잊지 말고 말하자. “Emergency exit row, please”라고). 창 밖으로 드넓은 평야에 금칠을 한 하얀 색 불탑들이 이곳저곳 반짝거리는가 싶더니 뱅기는 1시간 만에 우리를 신세계에 내려 놓는다(정보 4: 그래도 국제선아닌가! 가벼운 샌드위치와 머핀을 제공한다).

 

양곤 국제 공항은 뭐랄까, 우리나라의 그 어떤 지방 공항보다도 수준이 떨어진다. 트랩을 내려서니 조오기~ 바로 입국장이 보이는데도 우리 모두를 낡은 일제 버스에 태운다. 예전엔 일본의 한 지역에서 시내버스로 운행되었음이 분명한 그 버스에는 일본어 안내문뿐만 아니라 승객이 내리고 싶음을 알리는 벨이 곳곳에 붙어있다. 난 ‘울리면 어떡하지’ 하면서도 그 벨을 슬쩍 눌러본다. ㅋㅋ 다행인지 망가져있는 듯 그 벨은 안 울렸다. 명색이 한 나라의 국제공항인데, 다른 나라의 언어가 버젓이 붙어있는 중고 버스로 외국인을 맞이하다니... 1분도 안 되어 입국장 앞에 내렸다. 공사 중인지, 아니 그렇게라도 공사가 꼭 필요해 보이는 공항의 내부는 너저분하면서도 번잡스러웠다. 음… 심란하군.

 

입국 심사대 앞에 늘어선 줄에서는 이런 표현은 가급적 안 쓰려고 했지만 쪽바리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 아니, 공항에서 담배를? 돈 많은 외국인이라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이건가? 우리는 그 줄에 꼴찌로 서 있다가 그 자식들이 더러워서 다른 줄로 피한다. 내, 일본인을 싫어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런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부글부글하는 감정은 숨길 수가 없다(이후 도니님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버마는 흡연자들의 천국이라는 것을.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흡연이 가능하단다. 뭐,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 대한 감정이 변한 건 아니지만. ㅎㅎ).

 

무던히도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입국심사가 끝나고 공항 밖으로 나선다. 음, 제법 더워 주는군. 태국보다도 30분이 이르고, 한국과는 2시간 30분이 차이 나는지라 아직 아침시간인데도 햇살은 제법 눈부시다. 이제 택시를 한 번 잡아봐? 이런 장소에서 택시를 잡는 방법에 대한 족보는 이런 것이다. 지금 막 사람들이 타고 들어오는 출국장으로 가거나 공항 밖으로 나가 잡는 것.

 

코딱지만한 공항이기 때문에 우리는 밖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손쉽게 택시를 잡는다(정보 5: 택시 아저씨가 공항-토니여행사가 있는 요마뱅크까지의 택시비로 1500짯을 불렀는데, 우리는 버마 화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대신 2불을 지불했다). 택시는 거의 캄보디아와 마찬가지의 수준이다. 연식을 짐작할 수 없는 낡디 낡은 일제 승용차로 차량은 우측으로 통행하는데 반해 이 승용차의 운전석은 오른쪽이라는 것조차 캄보디아의 그것과 닮았다. 이런 차의 장점은 추월시 거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문이 잘 안 여닫긴다는 것도 나름대로의 장점되겠다.

 

말씀대로 도니님은 안 계셨고, 대신 계시리라 생각했던 사모님도 안 계셨다. 대신 도니님의 편지와 더불어 이따만큼의 버마 지폐 다발과 국내선 티켓 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는 도니님께 이번 여행에 필요한 3번의 국내선 항공편 예약과 얼마간의 환전을 부탁 드렸었다. 버마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양곤의 보족마켓의 환율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우리의 빠듯한 일정으로는 보족마켓에 들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도니님께서 서비스하시지도 않는 환전 항목을 우리를 위해 서비스해 주시는 수고를 하셨다). 오호, 그럼 나중에 여행 끝나고 나갈 때나 뵐 수 있겠는걸? 돈의 크기 자체도 크거니와(요즘 나온 따끈한 신권은 좀 작아졌더라만) 물가와 불일치하는 화폐 단위의 부적절함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돈다발을 손에 들고(복대를 준비해 왔으나 도저히 삽입 불가능이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웬 까무잡잡한 남자분께서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혹 이 분이 사장님? 맞으시단다. 우리를 보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고 사무실로 뛰어오신 도니님을 우린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만났다.

 

도니님도 원래 일정이 있으신데다 만달레이로 출발하는 국내선을 타기까지 우리 역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일단 반가운 첫 만남은 짧게 끝이 났다. 이후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날 양곤에 다시 들리게 될때 다시 뵙기로 하고 잠시 사무실 근처를 거닐다 다시 공항으로 향한다(정보 5-1: 1000짯. 올 때는 1500짯을 지불했지만 사실 이게 공항과 토니 여행사간의 정상 가격이 아닐까?). 

 

워낙엔 만달레이까지 직항이었지만 버마의 이해하고 싶지 않은 시스템으로 인해 어느새 헤호 경유편으로 바뀌어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삔우린인데, 만달레이 공항에 2시까지만 도착하면 갈 수 있을 듯 싶으니 경유편이라 한들 크게 문제될 것 같진 않다(그러나 이는 우리의 엄청난 착각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진다. 흑).

 

대합실은 단촐하니 우리나라 소읍의 버스터미널을 떠올리게 한다. 대합실 내에는 그 흔한 전광판도 없어 그저 떠날 시간이 된 비행편을 피켓에 적어 들고 문 앞에서 편명과 행선지를 불러제끼면 와르르 따라나가면 되는 시스템이다. 비행기가 꼭 정해진 시간에만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일찍도 출발한다는 말을 도니님께 들은지라 1시간 가량 일찍 도착했건만 우리 비행기의 출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다. 공항직원이 나와 항공편을 불러제낄 때마다 쪼르르 따라나가 혹 우리 비행기가 아닌지 확인해 보지만 도리질만 할 뿐이다. 그렇게 좌불안석으로 30분쯤 지났을까. 있는지도 몰랐던 대합실의 한 편 문이 열리면서 군복을 입은 장성들 몇이 쏟아져 나온다. 뭐야? 저 사람들은.

 

그 문 위에는 VIP room이라 쓰여있다. 안 그래도 장성들이 자기들 편하게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맘대로 스케줄을 조절한다는 말을 들은터라 심히 심기가 불편하다. 만약 저 자식들 때문에 우리 비행기가 늦게 뜨는 거라면 진짜 열받을 것 같다. 그들이 와르르, 나가 비행기를 타러 가더니만 곧 다시 와르르, 들어와 VIP room으로 사라진다. 아마도 비행기 준비가 채 안 되었나보다. 큭큭, 좀 뻘쭘하겠구만.

 

직원은 또 어딘가를 불러제낀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이제 나가서 물어보기도 지겨운 나를 대신하여 혹시나 오빠가 나가서 물어본다. 뭐? 이거래? 허둥지둥 짐을 챙겨 꼴찌로 버스에 오른다. 막상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일제 버스 안에서 나는 불안해진다. 분명 다른 편명을 불렀는데... 트랩을 오르며 방그레 웃고 있는 승무원에게 묻는다. 

"이거, 만달레이 가요?", "예"

버스도 아니고 비행기를, 그것도 타면서 어디 가는지 물어보고 타기는 난생 처음이다(그래도 명색이 비행기 좀 타본 우리인데).

 

좌석은 2-2 배열이다. 티켓에는 우리 자리가 각기 D와 F로 되어 있다. 어, 우리 자리가 서로 떨어져 있나봐~ 아니었다. E가 아예 없었다. -_-; 

 

정해진 시간보다 45분이 지나서야 비행기는 택싱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륙, 작은 비행기는 생각보다 심하게 흔들린다. 으윽, 나 이런 느낌 싫어서 바이킹 안 타는 거 모르는가 보다. 으윽 으윽. 괴롭다. 그러나, 김원장은 그 상태가 훨씬 심하다. 낯빛이 심상치 않다. 다행히 1시간 남짓 후 헤호에 내려 20분 정도 잠시 쉬면서 승객들이 타고 내린다. 오빠는 반은 쓰러져있다. 에공, 불쌍해라. 잠시 후, 다시 만달레이를 향해 우리 비행기는 재이륙한다. 이번엔 30분 정도의 짧은 비행이기 때문에 더욱 흔들린다. 팔걸이를 부여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으윽 으윽 엄마야... 오만 인상만 쓰다 결국 땅을 밟았다(정보 6: 1시간 정도의 비행엔 빵쪼가리가, 30분 정도의 비행엔 사탕부스러기가 제공된다).

 

오빠는 거의 초죽음 상태이다. 공항 대합실로 오빠를 부축하다시피 끌고 왔더니 그만 누워버린다. 가만 헤아려보니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총 4번의 뜨고 내림이었다. 허허허. 오빠가 쓰러질만도 하군(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원장은 의외로 멀미대장이다). 우리와 함께 만달레이에서 내린사람들은 벌써 공항을 빠져 나가고 새로 지어 깨끗하긴 하지만 황량하기까지한 공항에 우리 둘만 달랑 남았다. 오호, 매우 썰렁하오~ 승객 하나 없는 공항 내부를 청소 담당 직원들만이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기절(?)한 오빠와 그를 부채질하고 있는 나를 이상스레 쳐다본다. 음... 오늘 삔우린은 다 갔다.

 


<만달레이에 이르기까지 총 4번에 걸친 비행편>

 

얼마나 지났을까? 누워서 뻗어있던 오빠가 부시시 일어났다. 공항에서 만달레이 시내까지는 약 40Km로 택시로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다른 교통 수단이 있을런지도 모르지만 택시를 타는 수 밖에 없다. 텅빈 공항으로만 생각했는데 우리가 나서니 어디선가 택시 운전사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만달레이 시내 로얄 게스트 하우스까지 얼마냐?"  

"9000짯이다"

"무어라? 이 안내책자 봐라. 4000짯이라고 되어있다"

"(내 책을 가져가 뒤적거리다 다시 나를 보여주며)봐라, 2002년 판이다. 지금은 2005년이다. 9000짯이 정가다"

"음...(이렇게 나오면 좀 괴롭다). 그럼 7000짯에 가자"

"음... 그럼 8000짯에 해 줄께. 더 이상은 안 된다"

(정보 7: 그러고보니 버마의 환율에 대해 이야기를 안 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도니님께서 1불당 907짯에 바꾸어주시는 기염을 토하셨으므로 당시 상황으로는 버마의 1짯이 우리나라의 1.14원쯤 된다. 그러나 우리는 편하게 그냥 "짯=원"으로 생각하기로 했다.고로 우리 돈으로 8000원쯤 되겠다)

 

뭐, 몹시 바가지스럽지만 여태 하이얀 오빠의 얼굴색에 눌려 더 이상 네고하지 않는다. 우리는 택시라 불리우는 중고 일제 승용차에 지친 몸을 옮긴다. 그리고 그 택시는 1시간이 지나 우리를 무사히 숙소 앞에 내려 놓는다.

 


<만달레이 시내>

 

(정보 8: Royal Guest House. 화장실, 온수, 에어콘, 냉장고까지 갖춰진 더블룸이 아침 포함 10불/건물 내부 구조가 식민지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직원들은 매우 친절하고 방도 깨끗한데 설비는 낡은 편이다/버마 숙소에서는 US$만 받는다)   

 

가운데가 푸욱 꺼진 더블 침대에서 비행기 멀미로 지친 몸을 쉬게 한다. 와, 그러고보니 팔자가 폈다. 비행기를 여러 번 타서 멀미를 다 하고. 이 쯤 되면 멀미도 보통 멀미가 아니다. 배부른 멀미다.

 


<만달레이 시내를 누비는 트리쇼(Trishaws).

특이하게도 뒤에도 좌석을 맞붙여 한 번에 두 명의 승객을 나를 수 있다. 만달레이에 머무는 동안 보다 멀미에 강한 나는 내내 뒤에 타고 댕겼는데 바로 뒤에 따라오는 트리쇼의 앞 좌석 사람과 본의 아니게 쑥스런 미팅을 해야만 했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만달레이의 유명한 아이스크림집, 나일론.

멀미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오빠가 시킨 바닐라 아이스크림>

 

(정보 9: 나일론 메뉴판엔 가격이 없지만, 뭘 시켜 먹어도 가격이 저렴한 것 같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150짯, 내가 먹은 honey fresh lime juice는 350짯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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