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14일 화요일 밤에 전화가 왔다. 낮에 너무 열받게 만든 환자가 있어서 - 병원에 경찰분들까지 출동하다 - 오빠랑 소주 한 병 꺾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내 동기, 고 OO 선생님. 현재 의대 졸업 후 한의대를 다시 다니는 친구다. 지난 여름과 겨울, 우리가 여행 간 사이 병원을 봐 준 적이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 나 아는 분이 2월 말 즈음에 잠시 시간이 난다는데 너희 병원 봐 드리라고 할까?

 

헉! 순간 숨이 막혔다. 이렇게 좋을수가!

 

우리가 서로 겨우 조율해서 받아낸 날짜는 2월 24일부터 3월 5일. 전화를 끊고 파지 한 장을 꺼내어 가고 싶은 나라들을 급히 적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오만, 스리랑카, 라오스...

 

각국에 대한 비행 시간 계산 끝에 결론은 "방글라데시"로 정해졌다.

 

이미 늦은 시간인데다 집에 컴퓨터가 없는 관계로 항공권 상황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글라데시에 관한 책자 몇 권을 들추다가 잠이 들었고 2006년 2월 15일 수요일이 밝았다.

 

8시에 출근 하자마자 방글라데시의 요즘 날씨 확인하고(음, 역시 덥구나 ^^;), 어차피 직항은 없으므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경유 항공편 확인하고 방글라데시 여행 루트 잡고 그러면서 9시가 되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 방콕 경유 다카 왕복편 부탁 드려요

 

얼마 후 좌석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는 답변을 들었다. 뭐, 곧 풀리겠지.

 

다음엔 한국 - 태국 - 방글라데시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유리한지,

한국 - 태국 끊고, 태국 - 방글라데시를 따로 끊는 것이 유리한지 알아보기로 했다. 태국 현지 여행사에 메일을 넣고 기다렸다.

 

몇 시간 후, 해당 일정이라면 이 돈이나 저 돈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좌석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잘 되겠지, 뭐. 좀 더 기다려보자. 인터넷 서점에 방글라데시 영문 가이드북을 주문 넣었다.

 

그날밤,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하단 광고란을 가득 매운 패키지 상품이 눈에 뜨였다. 항공권 좌석도 안 풀리고, 일정도 너무 촉박해서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던 차였는데... 그럼 오래간만에 패키지를 한 번 가 볼까? 수 많은 상품 후보를 놓고 이리저리 고려해 본 끝에 결국 초특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모 여행사의 뉴질랜드 남북섬 8일짜리를 하기로 했다. 그럼 복잡하게 준비할 것도 아무 것도 없고 그냥 제 날짜에 편히 따라댕기다만 오면 되고, 게다가 매일 한식도 한 번은 먹여줄테고... 그래, 이번엔 그냥 패키지로 가는거야! 푸른 초원에 양들이 뛰어노는 뉴질랜드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

 

2006년 2월 16일 목요일, 아침부터 혹시 더 저렴한 뉴질랜드 패키지 가격이 있나를 비교하며 여행사들이 내건 옵션 목록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기사 팁, 가이드 팁, 유류할증료, 그리고 쇼핑, 쇼핑, 쇼핑...

 

뭔가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든다. 9시가 넘자 다시 일반 여행사가 아닌, 항공권 전문 여행사로 전화를 넣는다.

 

- 발리로도 예약 넣어주셔요.

 

마찬가지로 발리도 꽉꽉꽉이다. 게다가 직항은 토요일, 일요일에나 뜨는데 이 때는 신혼여행객들이 바글거릴 때가 아닌가! 마음이 다급해져서 온갖 발리 전문 여행사에 전화를 넣는다. 그러나 모두 다 풀부킹이란다. 비지니스까지 다 찼으니 아무리 기다려도 좌석 못 구할 것 같단다.

 

덴장, 조금만 기다려보다 안 되면 그냥 뉴질랜드 가야겠다.

 

그 날 오후, 결국 전화를 한 통 받는다. 

 

- 방글라데시보다 발리가 먼저 풀렸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무조건 콜이다. 그렇게 아래 일정을 받았다. 방글라데시 가이드북 다시 취소하고. 


◈ 항공여정(FLIGHT ITINERARY)
구간
ITINERARY
편명
FLIGHT
NUMBER
출발
DEPARTURE
도착
ARRIVAL
좌석등급
CLASS
예약상태
STATUS
01. INCHEON(ICN) →
     DENPASARBALI(DPS)
GA9965 25-FEB-06
20:20
26-FEB-06
02:30
ECONOMY
일반석
CONFIRMED
확약
02. DENPASARBALI(DPS) →
     INCHEON(ICN)
GA9964 05-MAR-06
03:50
05-MAR-06
11:40
ECONOMY
일반석
CONFIRMED
확약


그리고 겨우 얻어낸 자리인만큼 지불도 빨리 해야된다기에, 얼른 카드로 긁어버렸다. -_-;

 

다음 단계는 잘 곳. 여행의 출발이 일주일 남짓 남았을 뿐이고 새벽(?)에 도착하느니만큼 발리에서의 숙박 예약도 급하다면 급하다고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일단 공항 가까운 숙소를 하나 골라 예약을 걸어 두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원하는 곳은 사실 발리가 아니다. -_-; 인도네시아 동쪽 끝 <이리안자야>라는 섬의 한 가운데, 발리엠 계곡의 <와메나>라는 곳에 사는, 최후의 원시부족이라 불리우는 <다니>족을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발리에서 이리안자야의 주도인 <자야푸라>를 경유, 와메나로 가는 비행편을 알아보고 있다. 흑,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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