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회사 제품을 광고하고자 하는 의도는 절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6500원짜리 구버 덕분에 진짜 행복하다.

 

내가 피넛버터를 처음 먹어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비록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안 나지만 -_-; 초등학교 1학년때 안양에서 서울 강남으로 전학을 와서 3학년때 다시 강북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대략 2년간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살았던 곳은 방배동이었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난 처음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땅콩빠다'를 먹어 보았다.

 

방배동에는 몇 개의 언덕이 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언덕 위쪽 집들은 그야말로 대저택들이 자리잡은 부촌이었다. 그리고 내가 놀러간 친구네 집도 그 중 하나였다. 잔디밭 위에 파라솔이 세워진 정원이 넓다락하게 펼쳐져 있고, 고풍스러운 나무 계단이 웬지 모르게 나를 어서 올라오라 부르던 이층 양옥집. 부엌과 따로 분리된 식당의 커다란 식탁에 앉았을 때 우아하게 원피스를 입으신 친구 어머님이 간식이라며 꺼내오신 것이 바로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토스트 몇 쪽과 바로 영문이 크게 적힌 '땅콩빠다'였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존재했다니! 빵 부스러기를 우수수~ 부수수~ 흘려가며 내 입은 연신 감탄을 해대고 있었다. 아니, 왜 이리 맛있는 걸 울 엄마는 진작 안 사 줬을까, 약한 원망도 했던 것 같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런 누리끼리한 음식에 대해 한껏 설명했을 때의, 지금은 십분 이해가 되는 엄마의 어색한 표정도 아직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흐르고, 친구 중 한 아이가 "우유에 밥 말아 먹으면 맛있어"라는 말에 다른 한 아이가 "나는 땅콩빠다에 밥을 비며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 줄 아니? 너희도 한 번 먹어봐"란 대꾸를 하는데 조금은 느끼함을 느끼는 수준이 되었을 때, 그 때 내 앞에 새로이 등장한 것이 바로 구버(goober)였다. 구버는 일반 땅콩빠다와는 달리 땅콩빠다만 먹기엔 너무 뻑뻑하고 목이 메인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나, 평소 빵 두 쪽에 각기 다른 잼을 발라 붙여 두 가지 이상의 맛이 합쳐져 창출해내는 새로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버를 언제 처음 먹었는지 역시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다시 방배동으로 돌아온 대학교 3학년 때 이후가 아닌가 싶다(땅콩빠다가 방배동과 무슨 인연이라도?).

 

먹다남은구버구버는 땅콩빠다와 딸기잼이, 혹은 땅콩빠다와 포도잼이 섞여있는 제품의 상품명이다. 엄밀히 말하면 섞여 있다기 보담은 한 병 안에 두 재료가 공존하고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색깔도 예쁜 구버 뚜껑을 열면 방사형으로 땅콩빠다와 딸기잼 혹은 포도잼이 한 줄씩 번갈아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병을 눈 앞에 들고 바깥에서 봐도 그 독특한 모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결혼하고서는 내내 잊고 있던 구버를 다시 만난 것은 대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유명 제과점인 성심당에서였다. 삼시세끼를 매번 외식으로 해결하는 우리에게 있어 매일 저녁 대전 시내를 나가는 것은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일 뿐 별다른 특별 이벤트가 아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 정해진 수순처럼 성심당에 들러 진열대 위에 시식용으로 놓인 빵 조각들을 몇 개씩 후식 삼아 집어 먹는 것 역시 의미있는 행사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성심당에 들렀다가 그날따라 시식용 빵이 없음에 한탄하며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안쪽 매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거기서 그만, 구버와 재회하게 되었다. 앗, 여기 구버가!    

 

대전은 물가가 저렴하여 성인 2인의 저녁식사 비용으로 만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오빠랑 나랑 100번을 먹으면 60~70번 정도는 6천원 정도 나오고, 20~30번 정도는 그 이하에서 해결이 된다. 그렇게 1년 남짓 지내 온 우리에게 돌아온 장고, 구버는 보무도 당당하게 6500원 딱지를 자랑스레 붙이고, 거기서 오랜 세월 외로이 우리를 기다리고, 그리고 간절히 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또한 딸기냐, 포도냐 조금 머뭇거리긴 했지만 결국 우리는 - 솔직히 얘기해 보자면 '나'는 - 구버를 매정하게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었다. 딸기잼에 보다 더 노출되어 있다는 판단 아래 포도잼이 믹스된 구버를 하나 들고, 거기에 어울리는 식빵도 한 줄 잡아 들고 계산대 앞에 서면서부터 우리의 기나긴 행복은 시작되었다. 아, 그 행복은 정말이지,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ㅋㅋ

 

시간이 지날수록 구버의 양이 점점 줄어들면서 반비례로 우리의 안타까움은 그만큼 커졌다. 아직은 텅빈 냉장고 한 가운데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구버의 끝은 과연 언제일까?(이런 속도로 나가다간 조만간 운명을 달리할 듯) 하지만 6500원으로 이렇게 귀가길 며칠을 행복하게 보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불현듯 우리에게 나타나 행복을 안겨주고 어느새 뱃속으로 사라져가는 구버에 대한 아쉬움에 몇 자 적었다.

 

♥ 덧붙임 : 구버 이외에 유나가 좋아하는 조합

 

1. 빵 한 쪽 면에 마가린 + 다른 한 쪽 면에는 흑설탕(백설탕보다 흑설탕이 땡긴다)

2. 빵 한 쪽 면에 딸기잼 + 다른 한 쪽 면에는 마요네즈

3. 지금 막 구워낸 말랑말랑거리는 빵에 마요네즈만 듬뿍 발라 먹어도 환상인데, 대신 이 경우에는 두 쪽을 합치지 말고 한 쪽씩만 먹어야 더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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