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날도 저물었겠다, 저녁도 먹었으니 우리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

그래, 어서 숙소로 가자.

 

현재 우리가 묵는 숙소에는 침대와 TV만 달랑 놓여 있어도 꽉 차는, 문조차 달리지 않는 방 하나와 비록 문은 달려 있지만 일상 생활에 있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비슷하게 작은 방이 또 하나, 접는 간이식 식탁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부엌, 몇 개월 전부터 온수가 나오기 시작한 샤워기와 수세식 변기가 딸린 욕실, 이 지역 8경 중 하나라는 명산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지는 미니 베란다까지 갖추어져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명목상으로는 냉동실과 냉장실이 각각 나뉜 363 liters 들이,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total 내용물이 3.63 liters도 들어있지 않은 구식 냉장고가 죽지 않았음을 알리는 듯 간혹 윙~ 소리를 내며 부엌 한 구석에 놓여져 있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는 날도 쌀쌀한데 샤워기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아 아침마다 머리를 감느라 고생을 좀 했고, 필요 이상으로 빵빵한 난방과는 달리 냉방이 전혀 안 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저녁마다 우리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이 지역 downtown과 가깝고, 한 달에 한 두 번, 어쩌다 햇반에 도시락 김이라도 뜯어 끼니를 준비하거나 출출한 야밤에 라면 한 봉지를 끓여 먹는 둥 숙소에서 식사를 준비할 때 그다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한국 방송이 잘 잡히는 TV도 있고, 변기 물도 잘 내려가고,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24시간 영업하는 가게도 있고…… 뭐, 그간 우리가 묵어온 다른 숙소들에 비하면 게 중 가장 만족스럽다.

 

이번 숙소 바로 이전의 숙소는 갖춰진 시설은 대략 비슷했으나 현재의 숙소보다 일단 좀 더 작았는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묵는데 크게 불편한 건 아니었지만 숙박비가 너무 비쌌다. 현재의 숙소와 비교하면 자그마치 두 배 이상이나……(듣자 하니 요즘에는 그 숙박비에 또 한 차례의 대폭 인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쯧쯧). 굳이 그 숙소의 장점을 들자면 관광 명소와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 교통편을 포함, 주변 부대 시설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뿐, 숙소 베란다를 열어도 답답한 건물 숲 속 한가운데이고, 그래서 당연히 공기도 안 좋고 하긴 그래도 관광 단지 내 입지가 뛰어난 다른 숙소들 보다는 공기가 좋다고들 하지만 일상 생활에 있어서도 숙박비에 걸맞게 이래저래 드는 비용까지 상당히 고물가여서 이래저래 안 좋았던 셈이다. 사실 그 숙소에서 지낼 땐 그런 제반 문제점을 잊고 지냈지만……

 

또 그 이전의 숙소, 즉 전전 숙소는 전 숙소보다 더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숙소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숙소보다는 꽤나 비싼 숙박비를 내야 했고…… 그래도 그 때는 숙소 내 갖춰진 시설이 모두 새 것이라 깨끗했고 우리가 그걸 처음 사용하는 첫 숙박객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Downtown도 멀고 교통편도 편치 않아 약간 동떨어진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렇기에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그 숙소를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숙소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시내와 가까우면 좀 낡았어도 숙박비가 비싸고, 시내와 떨어져 있으면 숙소가 웬만큼 좋아도 가격이 내려가기 마련.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 조금씩 넓은 숙소로 옮기고 있는 셈이다. 굳이 수치화시키자면 첫 숙소는 15평 정도, 두 번째 숙소는 17평 정도, 세 번째이자 현재 묵고 있는 숙소는 19평 정도로, 앞서 밝혔듯 현 숙소가 가장 크면서 가장 저렴하다. 비록 가구는 낡았지만 아직 쓸만하고, 앞서 묵은 숙박객들이 도무지 청소라고는 할 줄 몰라 엄청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우리도 그다지 신경 쓰고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큰 상관은 없다. 숙소가 지은 지 오래 된 편이라 옆 방에서 오늘 저녁에 뭘 해 먹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조금만 신경 쓰면 알아낼 수 있긴 하지만, 그 역시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다만 오빠가 머리 위에서 쿵쿵 울리는 소음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이번 숙소를 구할 때 꼭대기층을 고집하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얼마 전, 방을 옮겼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한 숙소 내에서 방만 옮긴 셈이다. 원래 우리가 묵던 방은 꼭대기층 3번 방이었는데 바로 옆 방인 4번 방으로 옮겼다. 방을 옮기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본인도 소음에 민감한 오빠가 조금만 신경을 안 쓰고 걸으면 아랫방에서 바로 항의가 들어왔기 때문. 숙소가 낡은 탓인걸, 우리보고 어찌 하란 말인가! 여하간 지금 사용하고 있는 옆 방으로 옮긴 후부터는 그런 짜증나는 항의가 싹 사라졌다. 다행히도 아랫방에 묵는 사람들이 좀 더 무던한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렇다. 우리는 남들이 보통 우리 집이라 부르는 공간을 숙소라 부르고 있다. 전세 보증금을 야진, 혹은 데포짓이라 부르면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