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네팔 고르카를 출발하여 예상하지 않았던 강행군 끝에 밤 10시, 인도 파트나(Patna)에 도착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네팔을 나와 처음 만나는 인도의 국경 도시, 락사울(Raxaul)에서 반나절의 여정에 지칠 몸을 누이자는 것이었는데, 글쎄, 그렇게 일이 쉽게 풀려주지 않았다. 아, 인도가 나를 이렇게 배신하다니…

 

이른 아침, 예매해 둔 표를 들고 고르카의 버스 정류장을 헤매고 있을 때 - 아시다시피 우리는 네팔어를 읽을 줄 모르는지라 - 여느 때처럼 친절한 네팔인들이 다가와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어떤 버스인지를 알려 주었다. 우리에게는 새벽이나 다름 없는 시간인데도 고르카를 내려가려는 사람들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버스에 들어찼고, 우리의 옆에 제대로 중심을 잡고 서지도 못한 채 어린 아이를 둘씩이나 데리고 탄 아주머니가 있어 - 아주머니라 하기엔 나보다도 훨씬 어려보였지만 - 그 중 큰 아이를 오빠가 번쩍 들어 무릎에 앉혔다. 네 살이나 되었을까? 머리는 짧게 잘렸지만, 얼굴 생김새나 하는 양이 계집아이가 틀림없는데, 바라보이는 목 뒤로 피부염 같은 것이 심하게 번져있다. 상처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오빠가 이런, 하고 한 마디 내뱉더니 내게 아이를 넘겨주고 좁은 버스 안에서 가방을 뒤져 약을 꺼내느라 법석이다. 영문을 모르고 우리가 하는 행동을 못내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아이 엄마의 눈길이, 오빠가 약을 발라주자 어느새 고마움의 눈길로 바뀌어있다. 서로 말은 안 통하지만 이런 상황에 까짓 말 따위 무슨 필요가 있으랴…

 

네팔의 국경 마을인 비르간지(Birganj)로 가는 길, 검문, 검색을 위해 몇 번씩 차가 서고, 운전사가 바뀌고,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 할 때마다 사람들이 상황 설명을 해주어 고맙다. 차가 치트완 국립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부터는 네팔, 하면 머리 속에 떠올랐던 산이 사라지고 어느새 원시 정글이, 그리고 평탄한 들이 잇닿아 펼쳐진다. 이제 정말 네팔을 떠나는가 싶다.

 

비르간지가 인도와의 물품이 오가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된다고 하여 꽤나 번화한 도시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황량하다. 네팔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말을 이용한 달구지 같은 교통 수단(저걸 ‘통가’라 부르던가?)이 눈에 많이 뜨이고, 훨씬 교통 질서가 문란해짐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8211; 특히나 귀청이 찢어져라 끊임없이 울려대는 자동차들의 경적에서 - 막연하게나마 아, 이제 인도에 가까워진 모양이구나, 할 뿐이다. 
 
네팔 비르간지의 출입국 심사대는 마치 작은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데, 이 작은 오두막 내에 직원으로만 서너 사람이 북적댄다. 장부를 보아하니 어제도 겨우 한 두 명, 오늘도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여행자들일 것 같은데(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파트나가 아닌 바라나시쪽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뭐 그리 어려울 것이 있는지 우리를 붙들어 놓고 자기들끼리 한참이다. 언제 왔냐, 어디에서 왔냐, 어디로 가냐 따위의 뻔한 질문 말고도, 그간 들렸던 네팔의 어떤 도시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훌륭한 축구 솜씨 이야기, 그리고 완전 매뉴얼로 출국자 장부에 이런 저런 사항을 옮겨 적는데 얼마가 걸렸는지 모르겠다(더욱 재미있는 건 책상을 마주 두고 앉은 두 사람이 우리 여권을 중간에 서있는 사람에게 건네주면, 그 사람이 다시 서로의 반대편 사람에게 건네주는 식이다. 둘이 팔만 뻗으면 충분히 주고 받을 수 있는데도. 뭐,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선 적어도 우리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네팔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에 대한 인상이 좋았던 것이리라. 그렇담 과연 인도는 우리를 어떻게 맞아주었느냐…

 

비르간지에서 출국 심사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부터 타고 온 릭샤를 다시 올라탄 후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는 것으로 드디어 인도에 도착했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 릭샤 아저씨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치고 말았을 지점에 출입국 심사대가 있다. 허름한, 아주 허름한 사무소 앞에 내어놓은 책상 하나, 그리고 그 곳에 앉아있는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꼬장꼬장한 그의 얼굴에서 진작에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그의 발음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에게 짜증 섞인 화를 내지 않나, 이미 우리가 그가 원하는 내용을 모두 담은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고 마찬가지로 함께 내민 우리 여권을 보더라도 충분히 확인해 볼 수 있는 사항인데도 꼬치꼬치 캐묻지를 않나, 결정적으로 모든 절차를 마친 우리에게 아무렇게나 휙- 던져버리는 여권이라니…(평소에는 별 쓸모가 없지만 여행 나왔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여권 아닌가!)

 

그 모습을 본 오빠는 인사도 하지말고 그냥 가잔다. 그래, 나도 기분이 상했다. 그냥 가자. 심사대를 뒤로 하고 락사울 시내를 몇 발짝 걸어본다. 시끄럽고 지저분한데다 날은 또 왜 이리 더운지… 다시 릭샤를 불러 세우고 파트나행 버스 스탠드(Bus Stand)로 가자고 한다. 일단 터미널 근처에 숙소부터 잡고 내일 아침 일찍 안 더울 때 뜰 생각으로. 하지만 릭샤를 타고 터미널로 가는 길 내내 마땅한 숙소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릭샤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도무지 터미널처럼 안 보이는 버스들의 집합소. 주위는 그저 황량하기만 할 뿐인데 때마침 한 버스의 차장이 우리를 마구 불러댄다.

“이 차, 어디로 가는데요?”
“파트나 갑니다” - 앗, 파트나라니... 우리의 다음 목적지가 아닌가?
“락사울에서 파트나까지 얼마나 걸리는데요?”
“딱 5시간 걸립니다. 10분 있다 출발하니까 빨리 타요.”

얼른 시계를 보니 정각 오후 3시. 파트나에 도착하면 8시란 말이지… 오빠와 나는 얼굴 한 번 마주 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 도무지 정이 안 가는 락사울을 그대로 떠나기로 한다.

 

엉덩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널뛰기를 해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창 밖으로 지나가는 열차 위 지붕에 옹기종기 모여 올라타고 바람을 가르며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 인도에 오긴 온 모양이구나… 하루 종일 버스를 탄데다 길은 험하고 게다가 날은 더워 많이 지치는데 아저씨가 말한 8시가 벌써 한참 지났는데도 차는 도무지 설 기색이 없다. 우리는 그냥 버스 안에 널브러진다.

 

그렇게 뜨겁고도 축축한 밤 바람을 2시간 가량 더 맞고서야 어둠이 내려앉은 파트나에 겨우 도착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린 우리들을 앞 다투어 환영한 건 다름아닌 사이클 릭샤 아저씨들… 몇 번의 실랑이와 흥정이 오고 간 후에 겨우 한 대를 올라타고 안내책자에 나온 저렴한 숙소를 찾아가는데 웬걸, 분명 방이 다 차지 않아 보이는데도 우리를 위아래로 쓰윽 한 번 훑어본 숙소 아저씨는 방이 없다고 냉랭히 잘라 말한다. 아, 인도여… 왜 이리 처음부터 우리를 힘들게 맞느냐…

 

Tip

교통 : 고르카 - 비르간지 / Local bus / 7시간(보통은 6시간 남짓 걸리는 모양인데 요즘은 검문검색이 잦은지라) / 1인당 145루피 / 고르카 버스 터미널(작은 광장)에서 1일 3회 운행, 우리는 오전 6시 30분 첫 차를 앞 좌석에 앉고자 전날 지정 예매하여 승차
         네팔 비르간지 버스 터미널 - 환전소 - 네팔 비르간지 출입국 심사대 - 인도 락사울 출입국 심사대 / 사이클 릭샤 / 30루피
         락사울 출입국 심사대 - 락사울 버스 스탠드 / 사이클 릭샤 / 15루피(이제부터 인도 화폐)
         락사울 버스 스탠드 - 파트나 / 6시간 50분(오후 3시 10분에 승차, 오후 10시 하차) / 1인당 100루피 / 중간에 Sagauli와 Muzaffarpur에서 전부 합쳐 1시간 가량 쉰다


* 비르간지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호객하는 릭샤 아저씨에게 타기 전에 미리 말하면 네팔 출입국 심사대로 가기 직전 환전소 앞에 잠깐 세워준다 / 네팔 1.6루피 = 인도 1루피(우리나라 25원 정도)의 고정 환율

 

숙박 : Hotel Satkar International / Patna Junction Train Station을 등에 지고 Fraser Rd를 따라 걷다 Dak Bungalow Rd와 만나는 사거리 바로 못 미쳐 오른쪽에 위치 / 천장의 fan과 개인 욕실, TV가 딸린 더블룸이 무려 600루피(세금이 별도로 7%가 붙어 총 642루피나 한다) / 건물 외관만으로는 망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 입구를 잘 찾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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