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리 1


어제 저녁 후쿠오카 하카타역 지하 1층 하카타 1번가 우오가시 스시에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우리 차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우오가시 스시의 관련 방침은 (다른 인기있는 식당들처럼) 대기자 명단에 손님이 직접 이름과 일행의 수를 적어놓고 기다리게끔 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국인 둘, 일본인 둘, 우리 둘, 중국인 둘... 이런 순서로 기다리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우리 뒤에 있던 중국인 둘이, 대기자 명단에 아무 것도 안 적고 그냥 우리 뒤에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그 사실을 알게 된 직원이 명단을 들고 그들에게로 다가가 처음엔 일본어로,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그 다음부터는 영어로, 그들에게 이름을 적어달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들이 이름을 적어달라는 직원의 영어를 도통 알아듣지 못 한다는 점이었는데... 대기자 명단과 펜을 내밀며 이름을 적으라며 똑같은 말을 대여섯 번이고 계속 하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직원의 감정이 슬슬 실리는거라(물론 주조는 짜증 ㅋㅋㅋㅋㅋ). 결국 어느 순간 직원의 짜증이 극에 달했는데... 대체 뭔 일인가 하고 슬쩍 보니까 뒤의 중국인이 이름 자리에 OK 라고 적었더라. 아 진짜, 나라도 뒤돌아 중국인 손바닥에 名 하고 써주고 싶었다. 

나중에 김원장한테 뒷 사람들이 OK 라고 적었다 하니까 김원장도 빵 터졌는데, 왜 이름이 玉 일 수도 있지. 

손님이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늘어져 있으면 몰라, 당시에는 그렇게 많지도 않았는데 나 같으면 대충 적고 말았겠다. 그걸 뭐 그리 꼭꼭꼭 받아 적어야만 한다고 서로 감정만 상해 ㅠ 


유도리 2 


이번에도 버젯 렌터카에서 차를 빌렸는데, 1차 규슈올레 때도 그랬듯, 담당 언냐왈 "전 일정" 숙소와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하더라. 14개의 일본 숙소 이름을 영어로 적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 애니타임 연락이 닿는 휴대폰 전화번호를 이미 두 개나 적었는데 숙소 전화번호까지 정말 진정 리얼리 꼭 적어야만 하니? 하니까 그렇데. 순간 내가 한국인이라 엿 먹이는 줄 차별하는 줄.  

숙소를 한 예약처에서 잡아온 게 아니라 (이번엔 라쿠텐, 자란넷, 아고다, 재패니칸 4곳을 이용했고 스마트폰이 있으니 바우처 출력을 다 해오지도 않았더랬다) 라쿠텐 어플부터 띄워서 하나씩 찾아 투덜투덜 적어나가는데... 담당 언냐가 내가 먼저 적어둔 숙소 이름들을 힐끗 보더니 인터넷 검색해서 본인도 함께 채워주네? 뭐야, 이거 진짜 must 인 과정인거야? 아니 이게 대체 왜 필요한거야? 오히려 더 중요해 보이는 다른 과정들은 화웨이 태블릿으로 터치터치해서 수이 넘기게 해놓고, 정작 이런 쓰잘데기 없는(필요시 검색하면 바로 다 나올 것을) 숙소 전화번호를 일일이 수기로 적어야 하다니... (사족으로 1차 규슈올레 당시 렌트할 때는 휴대폰 번호 하나 적고 나머지 숙소 전화번호는 언냐 안 볼 때 대충 아무렇게나 적었더랬다) 

더불어 태블릿 화면 넘기고 넘기고 하다보면 맨 마지막에 웬 QR 코드가 나오는데, 이번엔 그걸 스캔하라고 하더라. 평소 QR 코드는 거의 쓰지 않는지라 혼잣말로 '나 이거 하려면 어플 찾아야하는데...' 하니까 옆에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친 김기사가 그냥 스캔하는 척 하라고 ㅋㅋㅋㅋㅋ 그래서 진짜 그렇게 하고 넘어갔다는. 이것이 한국인.






유도리 3


상기와 같은 일련의 귀찮은 과정을 거쳐 겨우 렌터카를 받았다. 이번에 받은 차량은 작년 홋카이도에서 빌려 타봤던 닛산 노트(이번엔 16,000 Km 달린 차량). 평소 3300cc turbo 차량을 몰고 있는 김기사는 1300cc 이번 차가 안 나가네 불편하네 시끄럽네 흔들리네 후졌네 잔말이 많았는데 닥쳐라, 이 구루마를 끄는 것이 네 운명이다. 이랴이랴. 

그렇게 30 여분을 달렸을까, 갑자기 로밍해 간 휴대폰으로 일본 발신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어쩐지 느낌이 싸~해.

헬로우~ 하고 받아보니 조금 전 차량을 빌린 버젯 렌터카 업소에서 제 3자 통역 신청을 했는지 (와중에 다행으로) 한국 남자분이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셨다. 내용인즉 렌트 절차 중 빠진 부분이 있으니 사업소로 돌아와 달라, 였다. 뭬이야? 대체 뭐가 빠졌답니까? (질문은 이렇게 했지만 묻는 동시에 이미 떠오르는 절차가 있었다. 국제 전화 벨이 울림을 확인하는 순간 번득였던, 그래서 싸한 느낌을 들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 그것은 다름 아닌 신용 카드를 긁는 결제 과정이었다. 렌터카 업소에서 출발하면서부터 나는, 이번에는 신용 카드 달라는 말을 안 하네? 렌트 절차가 태블릿화 되면서 이미 입력해 둔 신용카드 정보로 자동 청구가 되나봐~ 라는 말을 이미 김기사에게 했었기 때문에 ㅎ (절차 내내 결제 얘기가 나오면 신용 카드를 바로 꺼내기 위해 지갑을 손에 쥐고 있었기에 더욱 기억이 잘 났다. 나중에 전화번호 다 써야한데서 옆에 있던 김기사에게 지갑을 넘기긴 했지만)  

뭐 어쩌면 후쿠오카 하카타 그 번잡한 지역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만약 우리가 오늘 배를 타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필 배를 타고 오시마(섬)로 들어가야 했고, 배는 하루에 몇 대 없었다. 이 말인 즉, 지금 우리가 차를 다시 돌려 1시간~1시간 30분 이상 길에서 허비를 한다면, 오늘의 일정은 그냥 날아가 버리는 거였다. 일정이 짧든 길든 해외 여행중 하루를 그냥 이렇게 허무하게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지금 배 시간 맞춰 항구로 가는 중이다. 미안하지만 그래서 못 돌아간다.

어디까지 갔는데?

후쿠오카에서 기타큐슈 방면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근처 지점이 있다면 그 곳에서 결제 과정을 대신 밟겠다.

알아보겠다. .......... 기타큐슈에는 버젯 렌터카 지점 위치가 블라블라...

아니다. 기타큐슈 방면으로 가는 중이지, 기타큐슈는 여기서 멀다. 오늘 숙소 위치가 블라블라이니 근처 가능한 지점을 알아봐 달라.

알아보겠다. .......... 그 근처에는 없다.

그럼 내일 벳부로 가니 해결 가능한 벳부 지점을 알아봐 달라(벳부는 크니까 당근 있겠지)

알아보겠다. .......... 안 된다.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한다. 하루가 지나면 요금 조건(?)이 달라지니 무조건 이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내 잘못도 아닌데 그럼 댁이 내가 묵을 숙소로 오시던지요

이미 알려준 신용카드 정보에 CVC 번호까지 전화로 알려주겠다. 그걸로 그냥 온라인 결제를 해달라.

알아보겠다. .......... 안 된다. 꼭 와야한다. 

아니 대체 왜... 정녕 다른 방법은 없겠느냐. 내가 이따가 숙소에 가면 숙소 직원에게 부탁해 너희 지점으로 현금 송금을 해주면 어떻겠냐.

알아보겠다. .......... 안 된다. 

...

...

...


내가 그간의 대화를 글로 다 옮긴 것도 아니다. 하여간 실상 우리의 대화는 중간 통역을 통해 이루어졌고, 내가 어떤 대안을 제시할 때마다 통역을 통해 그 내용을 전해 들은 버젯 렌터카측 직원은 매번 잠시만요, 상사(?) 혹은 본사(?)에 재확인을 해보겠다며 사라졌기 때문에 통화 시간 태반을 띠리띠리띠리리리리 ♬ 하는 연결음 음악을 듣고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내가 길 안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김기사는 골목 하나를 놓치고, 또 한 번은 잘못된 골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짜증을 내서 이건 뭐 양쪽에서 공격하고 지랄인 형국이었다(이게 다 내가 내비게이션 양보다 목소리가 이쁜 죄). 

결론을 말하면 이런 개떡 같은 통화는 장장 20여분에 걸쳐 진행되었고, 불행중 다행으로 반납시 반납 지점에서 신용카드 대신 현금 결제를 해달라는 요구를 내가 무조건 오케이 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아쓰봉, 국제전화수신요금 이거 누가 낼건데(누가 내긴 누가 내. 김기사 폰이니 김기사가 내겠지).


하여튼 반납 지점에서 현금 결제 하는 것으로 해결될 만한 사안이면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김기사 의견에 따르면, 일본 애들은 매뉴얼 사회라는 소문대로 그저 매뉴얼 대로만 일을 진행하고, 그 매뉴얼에서 벗어난 일이 발생하면 상당히 어마어마 큰 일(?)이 벌어진 것으로, 그럴 경우 담당 직원이 자체적으로 융통성을 발휘해 일을 처리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한들 나중에 책임 여부 문제를 감당하기도 싫고... 한 마디로 매뉴얼에 없으면 대처 불가 상황이 되는 것이다. 뭐 하여간 그래서 오늘 우리의 경우가 이 모양 이 꼴이 난 게 아니겠냐고 하는데(이 밑도 끝도 없는 대화는 이래서야 일본의 창조적 발전적 미래는 영 그려지지가 않으니 현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은 뒤쳐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블라블라 한국 만만세 국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다시 말해 "반납 지점에서 현금 결제 하는 것" 또한 내가 강하게 못 돌아간다 어필하니 머리를 맞대고 어쩔 수 없이 합의 하에 쥐어짜낸 안이지, 원래부터 존재하거나 가능했던 대안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    


전화요금 올라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아 다소 괴로웠던 통화였긴 했지만 그래도 교훈 하나는 확실하게 얻었다. 


렌터카 수령을 위한 준비물 : 여권, 국제 운전면허증, 한국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렌터카 (예약) 계약서


이며 아무리 직원이 차키 내어주며 다 끝났다 안녕! 여행 잘해! 해도 신용카드는 해당 업소 기기에 꼭 긁고 나오자. 


 셀카 모드로 돌려 찍었더니 마치 한국 같지만 일본 맞습니다. 운전석 반대입니다. 근데 김기사가 이젠 반대편 운전도 할 만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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