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계획을 짤 당시 욕심껏 꾸역꾸역 가득 짜넣은 이 날의 루트는, 앞서 밝혔듯 내가 이번 여정에 있어 가장 기대했던 1박 2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해도 과연 소화가 가능할까 싶은 일정이긴 했다 ^^; 이후 재차 일정 리뷰를 하며 현실을 직시, 꽤 줄이긴 했지만, 그 때만 해도 김원장이 이렇게 뻗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터라... 전날 잠시 정신을 차린 김기사에게 나름 파격적으로 줄여온 (아래와 같은) 여정을 보여주며 이행 가능 여부를 물었더랬다. 



그랬더니 익일 컨디션을 봐야 알겠지만 현재 계획된 일정은 말도 안 된다며 "최소"만 남기고 다 쳐내라고 ㅜㅠ 

당장 하루 전에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아픈 와중인데 김원장처럼 드러눕지도 못 하고 재고민. 여기서 대체 무슨 패를 버려야할꼬. 


한동안의 고민 끝에... 아쉽지만 완전 간결안으로 만들었다.

첫 마을에서만 살짝 걷고, 수도원은 상황 봐서 바로 돌아나올 거고, 고흐드는 들어가지 않고 전망대에서 사진만 한 장 찍을거야! 로 쇼부.


그러나 상기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하루 전날 이야기이고, 막상 오늘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채 생 레미 드 프로방스 장조차 구경 못 하겠다는 김원장을 보니, 이건 뭐 오늘 몫의 숙소 예약을 날리고 여기서 하루 더 묵어가야 하나 싶기까지 한 상황이다...라고 쓰고 남편 따위 아프든 말든 혼자 장 구경 다녀온 나 ㅋㅋㅋㅋㅋ

하여간 체크아웃 시각에 맞춰 끝까지 알뜰히 누워있던 김기사 왈, 여기서 체류 연장은 안 하고 (아래처럼) 숙소 to the 숙소로 (그래도 중간에 수퍼에 들러 살건 사고) 운전만 해주시겠다네. 이걸 불행이라 받아들여야하나 다행이라 받아들여야하나. 이래서 내가 운전면허가 있어야 했어!


그래서...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런 표지판들을 보며 속으로 그저 눈물만 흘리는 것이다. 내 저런 데들을 끝내 못 가보네 하면서 ㅜㅠ  



이름도 잘 모르는 프로방스의 아주 작은 마을들을 휙휙 지나는데 문득,

 알려진 이름난 마을들보다 이런 마을들이 오히려 우리 취향의 목적지로는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작은 마을들 또한 지금껏 상상했던 프로방스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있네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또 한 번 내가 그간 굳건히 쌓아온 나의 프로방스 성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간 상상의 나래를 너무 힘껏 펼친 듯 

 

뤼브롱을 지날 때도 그랬다. (물론 가만히 따져보면 그럴 일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좀 더 로맨틱하고 좀 더 이국적이기를 바랬던 산인데... 

 

"그래, 여기서 산단 말이지? 참 가엾기도 해라. 밤낮 이렇게 외로이 세월을 보내자니 얼마나 갑갑할까!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지? 무슨 생각을 하며?" 
'당신을 생각하며...... 아가씨.'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치밀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대답한다고 해도 거짓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어찌 당황했던지, 한 마디도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마 그러한 낌새를 눈치채고도, 깜찍스러운 것이 일부러 얄궂은 질문을 던지고는, 내가 쩔쩔매는 꼴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예쁜 여자 친구라도 가끔 만나러 올라오니? 정말 여자 친구가 여기를 찾아올 때면, 황금의 양이나 저 산봉우리 위로만 날아 다니는 에스테렐 선녀를 눈앞에 보는 듯하겠구나." 
이런 말을 하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는 그 귀여운 몸짓이라든지, 요정이 나타나듯이 얼른 왔다가는 숨 돌릴 겨를 없이 가버리는 그 서운한 뒷맛이, 정말 아가씨 자신이야말로 내게는 영락없이 에스테렐 선녀같이만 보였습니다.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로 시작하는 알퐁스도데의 별 중에서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달리다보니 어느새 나의 프로방스는 현실에서도 점점 뒤로 멀어져가고...

오늘의 숙소가 자리잡은 완전 작은 시골 마을 Ongles 도착했다. 

아래 첨부한 지도에서와 같이 숙소는 이 마을에서도 동떨어진 외딴 집

 



Le Mas Des Ferrayes


@ '불어' 홈페이지 http://www.lemasdesferrayes.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lemasdeferrayes/

@ 예약 : 부킹닷컴 통해 조식 포함 Twin Room을 70유로에 예약

@ 장점 : 지은지 얼마 안 되어 깨끗하고, 당근 조용하고, 잘 갖춰진 공용 부엌및 거실, 테라스를 모두 쓸 수 있고, 친절한 프랑스 지트 맛보기까지 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숙소 

@ 단점 : 관광지와 상당히 애매하게 떨어진 입지. 거실에서는 좋은데 방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잘 안 나온다. 

@ 기타 

- 주인집 옆 별채 건물로, 두 방이 함께 쓰는 집(?), 그리고 한 방이 따로, 현재로서는 이렇게 총 3개의 객실이 손님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두 방이 함께 쓰는 집을 받았는데 방 하나는 트윈으로 남향(?)이고 TV가 없고(대신 공용 거실에 한 대 더 있다), 다른 방 하나는 TV가 있는 더블로 북향(?)이며 공용 테라스와도 바로 드나들 수 있게 설계되어 있. 우리는 원래 트윈을 선호하는데다가 공용 테라스가 붙어 있을 경우 사생활침해가 우려되어 트윈룸으로 예약해 왔는데, 공교롭게도 우리처럼 (체크인 당시에는 우리 밖에 안 묵을 줄 알았는데 늦은 오후가 되자 다른 두 방이 마저 차서 깜놀. 여기 오지 아녔어???) 만실이 되는 경우에는 프라이버시 면에서 따로 있는 한 방에 머물면서 부엌 필요시 본채로 매번 드나드는게 제일 나을 것 같고 그 다음이 더블룸, 마지막이 트윈룸일 것 같다. 

- 우리 둘만의 가설이기는 한데, 프랑스 시골 총각들도 진작부터 장가 들기 어렵다고 알고 있었던 바, 이 집 젊은 사모님 안드레아는 루마니아 출신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 투숙시 간이 수영장을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다. 7월에 묵는 투숙객들은 풍덩풍덩 물놀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차 부지에서 바라본 손님용 별채




주차장 쪽에서 아래와 같은 테라스 데크를 통해 숙소 내부로 들어가면



기대 이상 훌륭하게 갖춰진 공용 부엌이 딸린 거실이 나오고(진입 방향 기준으로 거실 우측이 부엌, 좌측이 객실로 향하는 미니 복도)




(앗, 한국 집에서 먹던 앵무새 설탕이 이 시골 집에도! 하긴 돌이켜 보니 앵무새 설탕이 원래 프랑스산이었... ㅋㅋㅋ)


미니 복도로 들어가면 문 두개를 만나는데 우측이 우리방이었던 트윈룸, 좌측이 더블룸이다

(트윈)


(더블)


거실 입구 반대측으로 바람이 미친 듯 불어대는(미스트랄? ㅎㅎ) 분위기 좋은 테라스가 하나 더 있다



김원장이야 아프다지만 나는야 부활했도다! 부엌이 있으니 스페인에서부터 들고 댕기던 맥주는 시원하게, 안주는 따끈하게 해서 쿵짝쿵짝

(응? 김원장이 부시시 일어나더니 내 맥주를 빼앗아 먹...?)



이 마을에서 하루 내내 뒹굴뒹굴. 다음 날 조식 세팅 테이블



우리는 그늘진 주차장쪽 테라스에 자리 잡고 (옆 방 프랑스 노부부는 반대편 햇볕 쨍쨍 테라스에 자리 잡고 ㅎ)


커피 사발 크기에 놀라니(아니 아니 그렇게 많이 말고 조금만 주세요!) 주인 아주머니왈 이 동네에선 아침에 다들 이만큼씩 마신다고 ㅎㅎㅎ


(알프스, 하니까 대관령보다 있어 보인다 사대주의 인간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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