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먹고 이동하고 먹고 이동하고... 오늘은 거의 비육 수준 -_-; 이었다. 아침으로는 어제 지어놓은 밥을 물말아 먹고 택시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이동했다(김원장 등판에 개미 같은 놈이 두 군데 물어제낀 흔적을 발견했다). 공항에서는 아쿠아(www.aq.co.kr)에서 미리 얻어놓은 정보로 방콕의 수안나품 공항에서 PP카드로 이용 가능한 3개의 라운지 중 가장 좋다는 THE MIRACLE BY LOUIS' TAVERN CIP LOUNGE(Concourse F 지역에 위치. 출국 심사를 받은 뒤 오른편의 F 지역쪽으로 가다 나오는 작은 사거리에서 한 층 내려가면 이 이름을 가진 라운지가 보인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그곳으로 갔더니 PP카드 사용 라운지는 근처의 옆 라운지라며 재안내를 해주었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안 읽었더니만... 입구에 대한항공 퍼스트 클래스 승객이 이용한다는 표시를 볼 수 있는 곳이 빙고)에서 또 샌드위치며 까나페에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먹은 뒤 잠시 공항 안을 돌다가 보딩을 했는데 어찌나 라운지에서 챙겨먹었는지 안타깝게도 방콕-두바이 구간 기내식을 사랑해주지 못했다(물론 독특한 향도 한 몫했다만).

 

 

 

 

 

 

오히려 중동 국가들을 잇는 노선이라 걱정했던 두바이-쿠웨이트 구간의 기내식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을 가진 메뉴였는데, 오히려 이 고기 완자의 맛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어서 얘는 맘껏 먹어주었다.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승객들로 가득 차 만석으로 운행되었던 방콕-두바이 구간에 비해 두바이-쿠웨이트 구간은 척 보기에도 대충 두 부류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돈이 많아 보이는 쿠웨이트인들이요, 다른 하나는 그 곳으로 돈을 벌러 다니는 아시아인들이었다. 그나마 이용하는 승객은 매우 적어서 짧은 비행시간이나마 맨 앞자리에 편히 앉아서 올 수 있었는데, 착륙하는 내내 옆쪽에 앉은 한 아저씨가 코란을 펼쳐놓고 낭송하는 것이 어쩐지 추락을 막아달라 기도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지더라. -_-; 여하튼 양 손바닥을 위로 하고 진중히 코란을 읽어내리던 그 아저씨의 모습에서 드디어 중동으로 가는구나, 이제 이번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웨이트 공항 청사는 생각보다 작고 노후된 모습이었다(하지만 그 내부는 여느 잘 사는 나라와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운 면세점들로 차있다). 어쩜 동양인이라고는 우리뿐이군. 가장 먼저 할 일은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는 것(쿠웨이트는 얼마 전부터 나름 잘 산다는 30여개국에 한해 공항에서 비자를 발급한다고 하는데 물론 그 중에 South Korea가 포함되어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 와르르 다른 승객들과 함께 입국 심사대로 나아가다 Visa Issuing이라 쓰여져 있는 표시를 따라가면 마치 은행처럼 여러 창구대가 개설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창구대를 마주 보고 가장 왼편의 기기에서 번호표와 바로 옆에 놓여있는 서식을 한 장 집어든 뒤 간단한 양식을 채우고 본인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보통 비자 발급에는 30~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우리 앞으로는 자그마치 50명이나 있었다. 지레 겁을 먹고 아예 창구대가 내려다보이는 바로 앞 Dasman 라운지(역시나 PP 카드로 쿠웨이트 공항의 두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로 들어가 무선 인터넷을 신기해 하며 즐기고 있었는데, 어랍쇼, 30분도 안 걸려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쿠웨이트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냐?”가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 비자 발급 비용은 5KD(쿠웨이트 디나르)이고 신용카드로도 결제가 가능할 것이라 줏어듣고 왔는데 막상 물어보니 발급 비용은 6KD이며 오직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하다고 한다(이후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스탬프값이 3디나르, 서비스 차지가 3디나르였다). 아직 환전 전이었기 때문에 US 달러로 지불하겠다고 하니 자그마치 1:4의 환율을 적용(1:3.6 정도로 알고 갔는데)하여 -_-; 24달러/인을 지불하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면 우리의 여권과 관련 서류는 다시 창구의 맨 왼쪽으로 옮겨지며 우리 역시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름이 불리워지는대로 여권을 받아들면 된다. 함께 건네준 A4용지를 보니 오늘로부터 3개월까지 유효한 temporary residence permit이 발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그런데 내 용지에는 내 이름이 뜬금없이 달랑 JN으로 표기되어있다. 김원장왈 내 담당직원이 심각한 독수리타법의 소유자였다고 했는데 그래서일까? 혹시나 이래서 나중에 문제가 되지나 않을런지...)  

어쨌거나 비자 발급을 하면서 이미 입국심사까지 되었는지 입국 심사대에서는 여권과 용지를 들고 있는 내 손을 힐끗 보더니 그냥 통과하라고 하더라. 그 때가 비행기에서 내린지 1시간이 채 안 되었을 것 같은데, 이미 해당 컨베이어 벨트 위에는 아무런 짐이 없는 상태. 어라, 우리 배낭이 어디갔지? 어리버리 헤매고 있으니 누군가 다가와 우리 짐이 아마 Baggage Claim 코너 앞으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한다. ... 역시 첫 방문의 나라라고 방심할 기회를 안 주는군. 

입국장을 나오자 공항의 비면세 구역은 기대를 넘어설만큼 세련되고 현란하다. ATM에서 우선 50디나르를 찾고 밖을 바라보니 이미 어둠이 내린 상태. 날이 밝으면 버스를 시도해 볼까 했는데 이래서는 아무래도 택시를 타야할 것 같다. 쿠웨이트 택시에는 아예 미터기라는 게 장착되어 있지 않으며 무조건 네고를 해야한다고 하기에(나중에 알고보니 이 소문이 100% 사실은 아니었다. 미터기가 장착된 택시들이 제법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정해서 타긴 했지만) 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출국장으로 올라가 마악 들어오는 택시를 낚아채자 생각했는데 출국하는 쿠웨이트인들은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하는지 택시도 거의 안 들어오거니와 그나마 들어오는 택시들은 경찰의 제지에 얼마 서있지도 못하고 그냥 떠나버리고 만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입국장으로 후퇴! 

입국장 밖으로 나가니 리무진 서비스라며 택시 기사들이 호객을 한다. 내가 예약해둔 호텔이 있는 지역까지는 대략 5디나르로 흥정하면 된다고 했는데(공항에서 쿠웨이트의 각 지역까지는 거리에 따라 4~20디나르로 거의 고정 요금이라고 한다. 여행자라면 대부분 5디나르 구역에서 묵을 듯), 얘네가 역시나 7디나르를 부르네. 거기까지 5디나르라던데? 하니 내 차는 좋잖아~ 하고 받아친다. 됐네, 이 사람아. 

택시 정거장에서 택시를 타기 전에 요금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5디나르다. 아저씨는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흔히 아랍인이라고 생각되는 전통 복장을 하신 분. 운전을 하시며 우리에게 계속 아랍어로 말을 건네시는데, 이게 혹시사실은 너희가 간다는 그 호텔 위치를 몰라일까봐 두려웠다. -_-; 쿠웨이트 운전자들이 속도광이라는 소문대로 깜깜한 하이웨이를 시속 140Km에 이르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대고 코너링할때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 우리 몸이 좌우로 넘어가니 김원장, 말없이 안전벨트를 맨다. 

어찌 꼬불꼬불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싶었는데, 아저씨는 예약해둔 호텔 앞에 우리를 무사히 내려주셨다. , 이제 오늘의 미션은 끝인가! 쿠웨이트에 무사히 도착!!!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내가 내민 바우처를 받아든 리셉션 아저씨가 우리에게 결혼 증명서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남녀가 한 침대를 쓸 수 있다나 -_-; 증명서라는게 따로 있을리 없으니 여권을 쓰윽 내밀어보지만 아시다시피 여권에도 우리가 결혼했다는 표기가 전혀 없으니(왜 우리는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아서 -_-) 먹히질 않는다. 예약도 하고 돈도 이미 내었거늘, 리셉션에서 우리를 거부하다니, 이런 일은 정말이지 참신할 정도로 황당했다. 이 일을 어쩌나... 아저씨는 우리를 도와주겠다며 증명서가 아니어도 좋으니 뭐든 증빙할 만한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결혼식 사진이라거나 -_-; 우리 아이 사진 -_-; (이거야 원, 산 넘어 산이다. 이미 결혼한지 8년이나 된 구혼 부부라고 밝혔거늘 아이가 없다고 설명해야 한다니) 따위 예를 들면서 

그럼 이 뜻이 트윈룸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아예 방을 따로 잡으라는 이야기인가...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내 머리속에 우리 가족 사진이 떠올랐다. 작년인가 시댁 식구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 명함판 한 장을 내가 챙겨온 것. 배낭을 홀라당 뒤집어 그 사진을 찾아내어 아저씨에게 보여주고 이게 나고, 이게 김원장이고 이 분들은 김원장의 형이고, 형수고, 아버지고 어머니고 조카들이다, 까지. 그러자 우하하~ 통과되었다 ^^ 아저씨는 계속 우리가 부부 사이가 아니라 친구 사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는데 -_- 이슬람 국가에서 단순 이성 친구 사이라면 이런 사진은 아마 못 찍을테니 말이다 

쿠웨이트... 그간 이슬람 국가라는 곳을 몇 여행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종교적 룰을 적용하는 곳은 없었는데 이제서야 진짜 실감이 난다. 내가 무슬림, 그들의 땅에 발을 디뎠다는 것이, 그들의 삶속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 

오늘 난 김원장과 <한 침대>를 쓴다 

# 오늘의 영화 : 방콕-두바이간 비행기 안에서 PMP를 이용하여 나는 <맨발의 기봉이>, 김원장은 <묵공>을 보았다. 주연배우 이름이 신현준이던가? 그간의 내가 느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기봉이 역을 그럴싸하게 하더라. 영화 자체는 그냥저냥 따뜻한 이야기. 그건 그렇고 임하룡은 이제 영화계에서 자리를 잡은 것일까? 김원장에게 <묵공> 이야기를 해달랬더니 별 말이 없다. 안성기가 적장으로 나와 유덕화의 상대역을 맡았다. 힐끗힐끗 보기로는 전투씬이 볼 만 하던데.

PMP의 화면이 작은 것을 감안하여 용량 가득 대부분 한국 영화를 준비해 왔는데, 막상 비행기 안에서 보려니 비행기내 소음이 엄청나서 볼륨을 아무리 크게 해도 정확한 대사 전달이 되지 않더라. 차라리 비행기 안에서 잠깐 볼 거라면 자막이 있는 영화도 괜찮을 듯. 

# 쿠웨이트 여행을 하면서 조성환님의 쿠웨이트에 관한 글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중 재미있는 몇 이야기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비만과 게으름의 나라, 쿠웨이트  

쿠웨이트에서는 불안할 정도로 엄청나게 살이 찐 성인 남자,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쿠웨이트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만율이 높으며 게으른 국가로 나타나고 있다. 오일 때문에 늘어난 부만큼이나 쿠웨이트인들의 허리는 늘어나면서 게을러졌다.

오일이 발견되기 전, 쿠웨이트인들은 주로 항해, 고기잡이, 진주채취 등으로 운동량이 높은 생활을 영위하였으나, 오일이 발견되면서 쿠웨이트인의 생활과 음식습관은 드라마틱하게 변화되었다.

뜨겁고 건조한 기후로 이제 쿠웨이트인들은 걷지 않으며 무조건 자동차에 의존한다. 또한 대부분의 쿠웨이트인들은 양고기 혹은 닭고기 점심을 즐겨하며, 오수를 즐긴다. 어린이들은 하루 3번 이상의 고지방 식사 외에 추가로 인스턴트 스낵을 먹는데 익숙해져 있으며, 쿠웨이트 전통적인 사회 분위기 역시 많이 먹는 게 예의다.

쿠웨이트 가정에는 최소한 둘 이상의 인도네시아, 혹은 스리랑카 하녀들이 있으며, 이들이 요리, 청소, 얘 돌보기 등의 모든 허드렛 일을 다하기에 쿠웨이트 여자들 역시 움직일 필요 없이 우아하게 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보내게 되었다.

부유해진 쿠웨이트에서는 결혼식 및 종교 행사에 따른 각종 파티에 과식할 수 밖에 없으며, 매일 밤 디와니야(사랑방)에서는 밤새도록 앉아 설탕이 들어간 차와 음식을 끝없이 먹으면서 인생의 부와 편안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쿠웨이트인들의 비만률은 점점 높아져만 갔으며, 쿠웨이트는 세계 제일의 심장병과 당뇨병 발생율 최고의 국가가 되었다. 70%의 쿠웨이트인들이 비만이며, 심장병과 당뇨병을 치료하는 제약회사 및 의사들에게는 세계 최대의 매력적인 시장이 되었다.

늘어난 체중으로 쿠웨이트인들은 움직이기가 어렵게 되어 더욱 게을러졌다. 정부 및 관공서에 일하는 쿠웨이트인들은 이제 지구상에서 제일 생산성이 낮은 국민으로 현지 외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국가에서 모든 것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일하고자 하는 의욕은 대부분 사라졌다. 결혼하면 돈을 주며, 2번째 처를 얻으면 더 많이 준다. 자식이 태어나면 자녀수대로 양육비를 주고, 대학까지 교육비는 무료이며, 의료비 역시 무료이다. 전기, 수도, 시내전화도 거의 무료에 가깝다.

공무원들은 자기 직업에 대한 의욕 대신에 대부분의 시간을 차와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고, 개인사업, 점심, 그리고 기도하는데 소비한다. '평균적인 쿠웨이트인들의 하루 생산성은 단지 8분이다'라고 쿠웨이트 대학교수가 발표한 바 있다.

오늘날, 쿠웨이트의 현저하게 낮은 생산성으로 향후의 국가 경쟁력에 큰 문제로 잠복하고 있다. 작년에 정부의 경제생산규모가 15% 증대 되었다고는 하나 고유가 덕분이며 쿠웨이트인들이 열심히 일한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쿠웨이트는 다른 중동국가와는 다르게 전체 노동력의 82%를 외국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타 중동국가의 40-60%와 비교하여도 매우 높은 수치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가져다 준 부로 일할 의욕대신에 비만과 게으름을 배우고 있다.

쿠웨이트는 더 늦기 전에 생산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대처하여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치열한 경쟁상대인 이라크, 바레인, UAE 등에 뒤쳐질 수 밖에 없으며, 더구나 쿠웨이트의 오일은 영원히 쏟아져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2005-6-14)
 

쿠웨이트의 높은 이혼율 

쿠웨이트인의 이혼율은 36.5%로 매우 높으며, 매년 증가추세이다. 일방적으로 법정 밖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쉽게 이혼을 요구하며, 그 반대로 아내가 이혼의사를 나타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성해방과 더불어 쿠웨이트의 풍습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보수적인 남성중심사회이므로 큰 변화는 없다.

아직은 연애결혼과는 거리가 먼, 쿠웨이트에서는 근친 결혼율이 56%로 매우 높은 편이며, 중매를 통한 사촌간 결혼계약이 일반화 되어 있다.

무슬림사회에서 결혼이란 신랑, 신부, 그리고 양측 부모가 마치 양, 혹은 염소를 사고 파는 서류에 사인하는 것과 같은 계약형식을 따르며, 치열한 신부값 협상과 여러 조건을 협의하기 때문에 수 개월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신랑은 신부에게, 신부는 신랑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줄 것인가가 협의되어야 하며, 이혼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도 상세히 기록되어 합의하여야 한다.

신랑은 기본적으로 신부에게 살 집과 사용할 가구, 먹을 음식, 입을 옷 등을 제공하나, 신부에게 줄 돈과 이혼 시 지불할 위자료에 대해서는 철저한 네고가 이루어진다.

신부가 제공하여야 될 카페트, 메트레스, 담요, 커튼, 쿠숀 등의 품목과 수량에 대해서도 상세히 계약서에 기록된다. 결혼 후 신부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월급은 신부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추가로 계약서에 명시되기도 한다.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는 남편의 철저한 보호, 혹은 감독 하에 들어간다. 아내의 임무는 음식을 준비하며 옷을 세탁하고 집을 청소하는 것뿐이다. 어떠한 이유에 관계 없이 아내는 항상 집에 있어야 하며, 집밖으로의 외출은 항상 남편과 동행한다.

아내가 가고자 하는 곳, 앉을 자리 찾기, 음료수 구입하기, 물건 들기, 택시 잡기, 문 열기 등에 대해 남편의 에스코트 행위가 있어야 한다. 여자 혼자 자유롭게 다니는 것은 풍습상 허용되지 않으며, 외출을 허락하였다 하더라도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남편은 항상 알 권리가 있다. 더 엄격한 남편이라면 아내가 입는 옷을 선정할 수 있도 있다.

드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쿠웨이트의 여유 있는 남자들은 하나 이상의 아내를 가질 수 있다는 풍습과 자식을 더 낳고자 하는 내부적인 이유 때문에 두번째 아내를 얻는 경우가 있다. 서로가 사이 좋은 경우도 있지만, 커다란 가정문제로 번져 결국 이혼하기도 한다. 물론 두번째 결혼을 반대하는 아내라면 당연히 이혼이다.

한 마디로 아내는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여야 하며, 하루하루를 잘 보여야 한다. 특히 섭씨 50도가 넘어가는 뜨거운 여름은 쿠웨이트 남성들을 신경질적이며 다혈질로 만들어 부부간 감정표현이 격렬해지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의 오후 3시는 이혼이 발생할 확률이 가장 높은 위험한 시간대이다. 이는 오랫동안 이혼사건을 담당하면서 사유를 추적해온 쿠웨이트의 어느 판사가 도출한 결론이다.

쿠웨이트의 오후 2시부터는 모든 직장인, 그리고 학생들이 퇴근하는 Rush Hour이다. 시속 120킬로 이상을 달려야만 정상적인 쿠웨이트인들에게 이 짧은 교통혼잡은 참기 어렵다. 이러한 혼잡을 뚫고 점심을 굶은 배고픈 상태에서 오후 3시경 집에 가까스로 도달한 쿠웨이트 남성은 아내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게된다.


까만 베일과 차도르로 신체와 얼굴을 가린 아랍 여인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운동부족으로 급격하게 비만화되어 미는 퇴색되고, 남편의 학대, 부당한 간섭, 질투, 성적불능 등이 어우러져 이혼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쿠웨이트에는 '사랑은 결혼 이후에 생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사랑이 없는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고 있다.

한편, 남성위주의 쿠웨이트 사회에서 오늘날의 여성들은 급격히 진보되고 있다. 여자들에게도 14(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며, 쿠웨이트 국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쿠웨이트 국립대학의 학생수 70%는 여자이며, 공학과 의학을 전공한 학생수의 50% 역시 여자가 차지한다. 이들은 또한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권, 피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맹렬 투쟁 중이며, 그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쿠웨이트 여성들은 정부부처, KPC, KNPC KOC와 같은 공기업, 은행, 민간기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조만간 남성위주의 쿠웨이트 사회를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 이혼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2005.6.15)
 

쿠웨이트의 실업률 

부자의 나라, 쿠웨이트에서는 실업률이 높다. 쿠웨이트인들은 게으르며 일을 하지 않아도 정부에서 주는 각종 혜택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쿠웨이트는 1970년대에 시작한 오일 붐으로 갑자기 졸부가 되었다. 석유가 가져다 준 부로 인하여 유명한 미국의 격언이 쿠웨이트에서는 반대가 된다. '당신이 쿠웨이트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쿠웨이트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는 식이다.

석유판매가 재정수입의 80%를 차지 하며, 방대한 오일 머니로 고민하는 쿠웨이트 정부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한 푼도 징수하지 않음은 물론, 각종 명목을 만들어 부를 나누어 준다. 얼마 전, 노쇠한 쿠웨이트 국왕이 미국 병원에서의 수술 결과가 좋아 국민들에게 인심 좋게 돈을 나누어 주었다. 최근에는 유가가 너무 높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바람에 정부에서는 전 국민들에게 1인당 500불 정도의 보너스를 주었다.

쿠웨이트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 많은 혜택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조기결혼을 장려하기 위하여 첫번째 결혼 시 7,000불의 축하금과 또 다른 7,000불을 무이자로 대출 받는다. 1992년 이라크로부터 해방되면서 미혼 여자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두번째 결혼을 할 경우 4,300불을 정부에서 지급한다. 출산장려 정책에 따라 자식이 성장해서 결혼할 때까지 1인당 매월 175불을 정부에서 꼬박꼬박 지급하며,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의 교육비, 책값은 물론 피복비, 교통비, 식사비 등도 전부 정부에서 지급한다. 해외 유학을 가면, 교육비와 왕복항공료는 물론 매달 2,000불의 용돈도 준다. 주택공급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어, 주택난이 발생하면 국민들에게 주택임대수당을 지급하며, 하물며 값싼 전기와 수도료를 장기간 내지 않아도 정부에서 스스로 탕감해 준다.

또한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기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모든 병원은 대수술을 하더라도 거의 무료에 가깝다. 시내전화요금도 무료이며, 휘발유 가격은 한국의 5분의 1로 고유가가 진행되어도 올리지 않고 있다. 생활 소모품 중 특히 빵, , 설탕, 밀가루, 고기 등은 정부 보조금으로 구입하여 값싸게 국민에게 공급한다. 노인, 과부, 이혼녀, 불구자들에게는 여러 가지의 사회보장연금으로 사는데 문제가 없도록 한다.

이러한 이유로 가뜩이나 게으르며 비만이 된 쿠웨이트인들은 고민하며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쉽게 사는 것을 택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부모로부터 아무런 세금 없이 재산을 상속받아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인생을 즐길 수 있다. 14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전체 쿠웨이트 인구의 30%를 차지하지만 이들은 생산이 아니라 소모하는 계층이다. 국가와 도시, 기업과 공장을 실제로 운영하는 층은 전체 인구의 64%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이다. 중요한 일뿐만 아니라 모든 허드렛 일도 이들이 다하기에 이들이 없으면 국가 시스템은 마비된다. 많은 식당과 상점들은 쿠웨이트인 보다는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한창 더운 7월이 오면 쿠웨이트인들의 대부분이 해외여행을 떠나 길거리에는 이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쿠웨이트의 실업률은 8.2%로 시한폭탄과 같이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매년 만명의 젊은이들이 정부부처에 구직신청을 하나 정부에서는 이들을 위한 직업을 창출할 수가 없다. 그나마 지금의 정부는 비효율성의 극치로 공무원들의 대부분은 차와 잡담으로 업무를 마친다. 2008년이 되면 22만명의 실업자가 발생된다고 재무성에서 발표하였다. 이는 전국민의 3분의1이 실업자가 된다는 의미이며, 향후 심각한 경제, 사회 및 정치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높은 실업률은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할 일 없는 자들의 대부분은 마약 유혹에 빠지며, 범죄를 유발시킨다. 또한 테러조직에 자원 입대하여 아프칸과 이라크로 가기도 한다. 신문을 보면 이 조그만 나라에서 마약 및 알코올 밀수업자가 수시로 검거되며, 수 많은 강간, 강도, 여자유괴 등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함을 알 수 있다. 할 일 없는 젊은이들의 초고속 길거리 주행으로 교통사고율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대부분이 줄담배를 피어댄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가능한 한 많은 직업을 창출하려고 한다. 쿠웨이트에서 추진되는 사업들은 이익을 내는 타당성 여부도 중요하지만, 쿠웨이트인을 얼마나 많이 고용하느냐가 높은 사업 우선순위에 속한다. 각 사업장에서는 쿠웨이트인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쿠웨이트인화(Kuwaitization) 규정을 지켜야 하나, 쿠웨이트 기업조차 효율이 낮은 쿠웨이트인들의 고용을 꺼린다. 규정에 따라 고용한 쿠웨이트인들에게는 명목상 임금을 주면서 차라리 사업장에 나오지 말기를 원한다. 안 나오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쿠웨이트는 사상 최대의 막대한 재정흑자에 따라 많은 돈을 각종 인프라와 투자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완성시키는 인력은 대부분 제3국인으로 채워져 외국인들의 유입은 더욱 늘어난다. 외국인 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81%를 차지한다. 쿠웨이트인은 편안하며 대우가 좋은 공공부문에만 주로 종사하며, 민간부문 종사자의 2%만이 쿠웨이트인이다. 쿠웨이트인들이 직접 민간기업의 현장에 뛰어들어 일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한 실업률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쿠웨이트 정부는 아직도 높은 실업률 문제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다. 경제를 확대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외국인의 투자를 적극 장려하고, 정부사업을 과감하게 민간화하는 두바이에 비하면 쿠웨이트는 아직 한참이나 뒤쳐져 있다. 그 덕분에 나를 포함한 많은 외국인들이 직업을 갖고 있지만… (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2005.6.18)
 

쿠웨이트인들은 얼마나 일을 하지 않는가?

정부가 주는 달콤한 돈맛에 흠뻑 젖어있는 쿠웨이트인들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고유가 행진으로 정부재정은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쿠웨이트인들은 그 기대감으로 마냥 행복하다.
정부재정의 40%가 공무원들의 월급으로 지출되나, 대부분의 쿠웨이트인들은 고용주인 정부를 위하여 가능한 한 일을 하지 않는 그들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 쿠웨이트인들은 스스로 고액의 월급을 받으나, 오일머니에 취해 일하지 않음을 즐기는 이상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인센티브나 벌칙, 그리고 경쟁이 없는 쿠웨이트이기에 사람들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쿠웨이트인들의 하루 생산성은 단지 8분이라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지금부터 여섯 명의 쿠웨이트인들이 등장하여 하루하루를 어떻게 일을 하지 않으면서 보내는지 그 실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 인물은 아바스라는 이름의 쿠웨이트대학 교수인 소위 엘리트 남자다. 그는 미국에서 1980년대에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나, 허위로 가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과 동시에 그는 쿠웨이트대학에 교수로 채용된다. 쿠웨이트 정부는 그가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였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음은 물론, 그 대학이 공인된 학교인지의 여부도 모른다. 쿠웨이트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이제 그는 아바스 박사로 불리어 진다.
아바스 박사는 학교에서 1주일에 15시간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학기가 시작되는 2-3주 동안만 학교에 나와,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교과과목의 개요, 연락처 등만을 학생들에게 알려준 채 사라진다. 이것이 그가 교수로써 학교에 나와 일하는 전부다.
아바스 박사는 학생들에게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은 매우 쉽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학생들 역시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점을 잘 주기 때문이다. 아바스 박사는 교실에 나오지 않으며,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좋은 점수를 받고 싶으면 직접 접촉하거나, 전화 혹은 이메일을 통하여 원하는 A 혹은 B학점을 받을 수 있다. 결국 학생들은 행복하며, 교수도 행복하다. 아바스 박사는 대학교에서 월급으로 7,000불을 받는다.

두 번째는 와드하라는 쿠웨이트 여자이며,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한다. 그녀는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식들이 아프다는 핑계로 자주 결근한다. 더구나 사무실에 나와도 별로 할 일이 없다. 대부분의 일은 타이프를 치거나, 몇 번의 전화를 받는 것이며, 그나마 그녀가 답하는 통화의 대부분은 "나는 모른다"이다. 사무실에서의 대부분 시간은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친구들과 장시간 전화통화를 하면서 보낸다. 대신 와드하의 동료인 인도인 여자가 사무실내의 모든 일을 다 처리한다. 놀고 먹는 와드하의 월급은 2,500불이지만, 모든 일을 다하는 인도인 여자는 860불을 받는다.

세 번째 등장 인물인 마하라는 어느 실험실의 여자 조수로서 외견상 비서라는 직책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 하는 일은 앞에 나온 와드하와 똑같다. 그녀 역시 가능한 한 모든 이유를 만들어 자주 결근한다. 매년 정기휴가로 60일을 사용하며, 산후휴가는 1년이다. 실제 일은 그녀의 외국인 동료가 다한다. 그녀는 2,700불의 월급을 받아간다.

네 번째는 쿠웨이트공항의 화물통관부서에서 일하는 싸드라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의 일은 매우 터프하게 보인다. 그러나 고객이 화물을 찾아가면서 확인하는 영수증에 스탬프를 찍는 것이 전부다.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 5일 일하는 그는 월급과 복지수당을 다 합하여 4,800불을 받는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읽거나 쓰질 못하는 무식한 아랍어 문맹자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정부의 관리부서 책임자인 아델이라는 이름의 남자다. 당연히 대부분의 일은 그의 부하인 이집트인과 인도인들이 다한다. 이 외국인들이 쿠웨이트 상사를 위하여 모든 일을 계획하며, 준비하고 집행한다. 아델은 단지 이집트인 조수가 가져온 서류에 사인하는 일이 전부다.
아델은 보통 오전 11시에 출근한다. 왜냐하면 그는 별도의 아파트에 개인적인 비밀장소를 만들어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아랍여자들과 난잡한 파티를 벌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전 11시 이전에 아델을 찾는 전화가 걸려오면 그 비서는 항상 "미안합니다. 회의 중입니다."라고 답한다.
아델의 친구 중 하나가 말하기를 아델은 신앙심이 매우 깊다고 한다. 그는 매일 다섯 번의 기도시간을 꼼꼼히 체크하며, 특히 한꺼번에 몰아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저지른 음주와 퇴폐적인 행동에 대해 알라가 용서해줄 것을 희망하면서.

마지막 여섯 번째 인물은 내무부에서 일하는 살렘이라는 남자다. 그는 위에서 언급된 다섯 명과는 다르게 매우 활동적이며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는 대다수 공중을 위하기 보다는 친척과 친구, 그리고 잘 아는 사람들에게 점수를 따기 위하여 열심히 일한다.
그는 내무부 내에서 아주 좋은 콘넥션을 유지하고 있다. 사무실 안에서 그가 하는 일이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친척과 친구들을 위하여 모든 종류의 혜택을 제공하며 처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친척과 친구들에게 그는 매우 의욕적이며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친구가 교통벌금 티켓을 컴퓨터상에서 삭제 시켜줄 것을 요청하면 기꺼이 해결해준다. 만약 친척 중의 하나가 제3국인에게 입국비자를 팔기 위하여 협조를 요청하면 당연히 지원한다. 또한 자동차사고의 경우 자기가 아닌 외국인이 잘못한 것으로 고쳐달라고 친구가 요청하면 이를 고려하겠다고 답한다.

상기 여섯 명이 우리 주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수 많은 쿠웨이트인들의 생활특성을 대변하고 있다. 진주조개 채취작업에서 산유국으로 변신한 이후, 쿠웨이트에서는 두 개의 이상한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하나는 "와스타(Wasta)". 비슷한 우리 말로는 콘넥션이다. 쿠웨이트에서 생존, 더 나아가 풍요롭게 버티기 위해서는 와스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와스타로써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화는 "일을 많이 하지 말아라"이다. 일을 많이, 혹은 적게 하든지 간에 월급은 같기 때문이다.

쿠웨이트 헌법 제20조항에는 "국가경제 목적 중의 하나는 국민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쓰여져 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아진 쿠웨이트 정부는 이 헌법 조항에 따라 쿠웨이트인들의 능력과 질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채용한다. 수 십 년 동안 밀린 전기와 수도비는 이미 탕감 되었으며, 개인부채의 탕감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돈 받기에만 익숙한 쿠웨이트인들에게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당연한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았다. (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200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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