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밤에 온도가 뚝 떨어지는 듯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차 앞 유리 가득 서리가 내려앉았다. 오늘은 운전할 계획이 없지만, 여전히 아침부터 차의 시동이 안 걸리는 문제와 씨름 중인 김원장. 아침마다 이러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급격한 기온차로 인해 엔진 반응이 느리게 오는 것일런지도 모른다(는 순전히 나의 짐작). 누가 아프리카 아니랄까봐 이 곳 역시 온갖 새소리로 시끄러운 아침이다.  

 

 

<숙소 라운지에서 내다본 풍경>

 

<옆에선 페치카에서 잘 마른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오늘은 남아공과 레소토간을 잇는 사니 패스를 오르기로 한 날이다. 어제 이 숙소를 통해 가능한 여러 다양한 옵션 중 무엇을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를 한참 고민한 끝에 결국 사니 패스 자락에 엮여있는 허드슨 봉우리를 올라가는 당일치기 프로그램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현재 이 곳이 비수기인 탓도 있고 우리 숙소에서 묵는 투숙객 역시 많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오늘 사니 패스를 넘어가 보겠다거나 허드슨 봉우리를 올라가겠다 하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라고 한다. 

 

약속한 시간에 우리를 사니 패스로 안내하기 위해 등장한 4륜 구동 랜드로버는 무척이나 낡아보였지만 차에서 내려 악수를 청한 운전사겸 트레킹 안내자이기도 한 폴의 말로는 이래뵈도 튼튼한 놈이라며 자랑한다. 그래, 하지만 어쨌거나 문도 잘 안 열리고 닫히지 않느냐 -_-; 

 

<우리만의 전용 차량>

 

숙소에서부터 야트막한 비포장 오르막길을 따라 저~멀리 보이는 사니 패스 꼭대기까지 털털거리며 차는 올라간다. 실제로 이 구간은 2륜 구동 차가 못 다니게 되어 있는데, 시작 부분만 놓고 보자면 2륜 구동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차가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이런 우리의 생각은 여지없이 박살나고 만다. 김원장 말에 의하면 이런 도로라면 4륜 구동 차라고 해도 본인이 운전해서 전진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그만큼 길이 엉망진창도 보통 엉망진창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길을 통해 레소토 사람들은 수출도 한다는 것 -_-; 이 길이 이렇게 엉망이라고 해도 레소토에서 인도양으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길(더반을 통해 수출한다고) 이라고 한다. 물론 그들의 수출 품목이 공산품은 아니다. 우리도 잘 아는 메리노 양모와 앙고라 따위가 그 품목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레소토에 안 가봐도 레소토의 풍경이 대략 머리 속에 그려진다. 수많은(?) 양을 끌고 다니는 양치기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차가 오르면 오를수록 펼쳐지니 바로 비경이다. 우리가 차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 뷰를 즐길 때마다 폴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멋져지고, 이건 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우리 기대를 이토록 부풀려놓고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 폴, 너를 혼내줄테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영양류 Eland. 이들이 여기 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조우하는 건 행운이라고>

 

몹시 덜거덩거리는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산 중턱 오르막에 덩그러니 마련된 국경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했다. 남아공측에서 올라가는 차들은 거의 없고, 레소토 방면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트럭들이 몇 대 있었다. 대체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집은 어디이며 여기까지 어떻게 출퇴근을 하는 것일까?

 

 

<아주 자연스러운 주차구역. 내 맘에 들었다>

 

<김원장의 표현에 따르면 레소토의 전통의상(일명 담요 패션)이 아니라 원조받은 옷 따위를 닥치는대로 껴입은 것 같다고 한다>

 

 

당일치기 투어라는 특수한 경우여서인지 폴이 우리 여권을 들고 심사대에 들이미는 동안 정작 남아공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은 우리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출국 절차를 끝냈다. 통상적으로 사니 패스 꼭대기를 경계로 남아공과 레소토를 나누지만 실제 남아공 출국은 한참 전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작년 여름,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KKH를 넘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남아공이라는 나라를 벗어나 레소토라는 나라를 들어가기 전, 마찬가지로 KKH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또 한 번의 비현실적인,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한 모습이 아닌 듯한 풍경을 만나고 만다. 럴수럴수이럴수가.     

 

 

 

 

 

감탄사만을 연발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일깨워주는 폴. 우리는 다시 그의 차를 타고 사니 탑을 향해 끝이 없이 꼬불꼬불하게 난 길을 따라 오른다. 하지만 진도는 여전히 지지부진이다. 폴의 말대로 오르면 오를수록 우리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바로 그 풍경이 이번 여행의 최대 하이라이트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이 도로 말고, 계곡 건너편의 길로 사람이니 당나귀가 끄는 마차 등이 다녔다고 하는데 이 역시 KKH의 그것과 흡사하다. 아직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옛길. 그리고 그 길에 얽혀있을 수많은 이야기들.

 

커다란 우리 차가 힘겹게 크르릉거리는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드디어 해발 2,873m, 사니 패스의 사니 탑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곳에 이 곳이 아니면 보기 어려울, 후진 출입국 관리소가 있다. 마찬가지로 폴이 우리의 레소토 입국 수속을 대행해 주는 동안, 우리는 국경이랍시고 이 꼭대기에서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작은 레소토 마을을 구경한다. 전국토의 가장 낮은 땅의 해발 고도마저 해발 1,500m라는 아프리카의 산속 미니왕국 레소토,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구나.

 

<물론 이 컨테이너가 출입국 관리소는 아니다 ^^;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엄연한 살림집>

 

 

# 사니 패스 고도표

 

<출처 http://www.sanitours.co.za/>

 

# 사니 패스 투어(http://www.sanilodge.co.za/da/)

 

 

사니 패스가 있는 남부 드라켄스버그 지역을 즐기는 프로그램에는 매우 다양한 옵션이 있는데 우리는 시간 관계상 당일치기 프로그램(http://www.sanilodge.co.za/DAsani.htm)이나 혹은 1박 2일짜리 프로그램을 할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상기 지도를 통해 소개한 프로그램 말고도 허드슨 피크(Hodgson’s Peaks)를 가는 당일치기 프로그램

(http://www.sanilodge.co.za/DAhodge.htm)

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코스가 특별히 어렵지 않다는 말에 이를 신청했다(교통편 및 점심 도시락포함 280R/1인.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최소 인원을 3명으로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달랑 2인일 경우 약간의 추가 요금을 내야한다). 문제는 날씨였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 북부 드라켄스버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도 날씨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우리가 전날, 로얄 나탈 국립공원에서 짧은 하이킹으로 일정을 끝내버린 일을 기억하라) 이 날의 모든 일정이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아쉬워하는 우리를 위해 숙소 주인인 러셀이 어디론가 통화를 해보더니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정확한 프로그램 진행 여부를 알려줄 수 있다고 한다. 혹여 내일도 날씨가 안 좋으면 간단히 근처 트레킹이나 하고 뜨자, 했는데 다음 날 아침, 다행히도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러셀이 직접 프로그램을 안내할 줄 알았더니 정작 본인의 4륜 구동 자동차를 몰고 숙소로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은 근처 Himeville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High horizons라는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폴(Paul Roth)이였다(사실 폴이 사장인지 직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작은 마을에 직원이 여럿인 여행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_-).

 

http://highhorizons.co.za/index.htm

 

만약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묵지 않는다면, 마음에 드는 다른 근처의 숙소에 묵으며 폴과 직접적으로 contact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igh horizons에서 진행하는 트레킹 프로그램도 다양한데다 폴은 아주 괜찮은 남자니까 ^^ (내가 한국인들에게 많이 소개해 주겠다고 할 만큼 만족스러운 기사겸 가이드였는데, 문제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앞으로 사니 패스를 얼마나 찾아가느냐다 -_-) 참고로 폴의 핸드폰 번호는 0763950119 이다.

 

덧붙여, 이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아니 남아공 전역을 통틀어서도 손 꼽히는 트레킹으로 4박 5일짜리 자이언트 컵 트레일(Giant's Cup trail)이 있다.

(http://www.sanilodge.co.za/DAhike.htm#g)

사니 패스를 오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역시 유명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시간이 된다면 이 트레킹을 꼭 해보라 추천하고 싶다. 부디 내 몫까지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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