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호는 중국 사천성의 남부와 운남성의 북부에 걸쳐 있는 크고 맑은 호수로 중국 유일의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마사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을 노고호라 부르지만, 중국 현지인은 루구후, 서양인들은 Lugu Lake라 부르며 이 곳의 주인인 마사족은 ‘씨에나미’라 부른다. '씨에'는 '많은 물'을 의미하며 '미'는 '여인, 어머니'를 뜻하므로 다시 말하자면 노고호는 ‘여인의 호수’ 혹은 ‘어머니의 호수’라는 "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다 사연이 있다. 마사족이 예전부터 섬겨 내려오던 ‘꺼무’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물론 남편신이 있는 몸이었지만 다른 남신과 바람을 피우다 걸리게 된다. 이에 화가 난 남편이 상대 남신의 성기를 잘라 현재의 커다란 산이 되었는데 이런 가학한 조처에도 정신을 못 차린 여신은 또 한 번 바람을 피우게 된다. 이 또한 안 들킬 리 없지, 남편이 짜잔~ 등장하고 놀란 상대방 남신은 허겁지겁 말을 타고 도망가게 되는데 그 때 남긴 말발굽 형상에 헤어짐을 아쉬워 하며 펑펑 운 여신의 눈물이 가득 차 올랐고, 그 울음 소리를 들은 도망가던 남신 역시 정표 비슷하게 자신이 하고 있던 진주 목걸이를 여신에게 보내는데 그만 목걸이가 끊어져 진주 알알이 여신의 눈물로 이루어진 호수에 빠지면서 지금의 6개 섬을 이루었다는… 그야 말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전설 따라 삼천리…

 

려강에서 노고호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했던가! 나도 좀 직선으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4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커다란 산을 굽이 굽이 넘고 중간에 한 번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길이 워낙 험하여 큰 버스가 다닐 수 없는 관계로) 2시간을 더 가는데 이게 대부분 비포장 도로인지라… 차는 흙 먼지를 일으키며 열심히 달리지만 꼬불꼬불 거리면서 또한 흔들어대는 통에 속도는 지지부진, 멀미를 하는 사람이 속출한다. 오히려 가끔 나오는 짧은 포장 도로를 달릴 때 더 어지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길은 왜 그리 위험한지, 중국 버스를 타다 보면 종종 보험료를 내곤 하는데 그 이유를 알겠다. 호도협 확대판이라면 좋을 길을 몇 시간이고 달려대는데 이래서 해가 떠 있는 오전에만 버스가 운행할 수 밖에 없나 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이런 길을 어두운 밤에 가는 것은 프로판 가스 밸브 열어놓고 그 앞에서 떡 하니 담배 꼬나 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듯 싶다. 이렇게 멍한 상태로 마음을 비우고 도인의 자세로 달려오다 보면 어느새 해발 2,690m에 위치해 있다는 커다랗고 파아란 호수가 그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하지만 누굴 놀리기라도 하듯이 호수가 보이고서도 한참을 꼬불 꼬불 덜컹 덜컹 돌아서야 낙수라는 작은 초입 마을에 엉덩이 감각을 상실한 우리를 내려 놓는다. 분명 평지에 내려 섰는데도 어지러움을 느낀다.

 

루구호우리 정말 멀리도 왔다, 저 너머가 사천성이라지, 호수가 정말 맑고 푸르긴 하네, 하는 것도 잠시. 우리는 특별히 한 일이 없으면서도 피곤에 찌들은 몸을 누이고자 숙소를 찾는데 공교롭게도 오후에 도착하기로 한 단체 손님 때문에 방이 없단다. 아, 그래. 이 곳 낙수라는 마을은 이 동네 중에서도 게 중 관광지라 했었다. 물론 관광지라 봐야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오빠는 이 마을을 다 쑤시고 다니며 방을 찾아보기가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노고호 건너 편으로는 이미 관광지화 된 낙수 마을과는 달리 마사족을 좀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는 ‘이격촌’과 ‘대취촌’이 있다는데... 차라리 그리로 가자.

 

우선 이 쪽에 좀 더 가까운 이격촌 행 차편을 수배해 보는데 이 동네는 제대로 된 대중 교통 수단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 앞에 나타난 차는 대절용 트럭인데 100원(우리 돈 17,000원 정도)이나 달란다. 지도를 보니 그리 먼 거리도 아닌 것 같구만… 오빠가 차라리 걸을래? 한다. 그러지, 뭐. 이격촌을 향해 터벅 터벅 걷기 시작하는 우리 뒤통수로 트럭 가격은 50원까지 내려온다. 우리가 시험 삼아 40원! 부르니까 너무 심하게 싼 가격이었는지 더 이상의 흥정 없이 휙 돌아서 가버린다. 흥! 갈 테면 가라지, 우리는 호숫가로 난 길을 따라 발길을 돌린다.

 

항상 그렇듯이 처음에는 좋았다. 장시간 동안 흔들리는 차에서 고생을 한 지라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하이킹 기분으로 호숫가를 걷는 게 나쁠 리 없었다. 하지만 하이킹 기분으로 30여 분을 걷다가 우연히 우리에게 있는 노고호에 대한 지도 두 장이 판이하게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앞으로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 걸까? 불길한 조짐에 불안해 하는 내 앞으로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가 한 대 오는 것이 보였다.
“오빠, 저거 타고 갈까?”
“우선 얼마인지 물어 봐”
아저씨는 한 번 갸우뚱 하더니 30원을 불렀다. 그리고 30원은 여전히 오빠에게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야, 그냥 걷자”
우리는 그래서 2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했다. 아… 짠돌이 오빠가 미워질라고 그런다.

 

루구호다리를 질질 끌며 마을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라 손짓을 한다. 마침 숙소다운 숙소가 보이질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던 참에 얼씨구나 하고 들어선 집은 영락 없이 마사족 전통 가옥이다(물론 우리에게는 호숫가에 새로 짓고 있는 숙소 이층 방을 내 주셨지만). 문지방 같은 것을 넘어 어두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서니 여자만 세 명이고 남자는 안 보인다. 마사족의 결혼 풍습은 ‘아하(阿夏)’라고 불리우는데 일반적인 부부 관계를 정상으로 본다면 이들은 분명 비정상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마사족 남자는 밤에만 자신을 선택해 준 여자 집에 가서 봉사(?)를 하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자기 집으로 돌아가 생활하기 때문이다(이 얼마나 fantastic한 일이냐! ^^). 그러므로 이들은 남녀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아니라(물론 여자가 원하면 원할 때까지 같이 살 수도 있단다) 한 가정에서 연령이 가장 높은 여자가 가장으로 의무이자 권리(재산권)를 갖기에 보통 외할머니와 그 외 형제자매, 어머니와 그 외 형제자매, 딸과 그 형제자매의 자녀들로 구성되는 식의 모계 가정을 꾸린다고 한다. 으하하, 정말 멋진 곳이다.

 

루구호반찬 6가지에 탕 한 그릇, 하나 가득 퍼 주신 밥까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달라니 바로 앞에 나가 호숫물을 길어 온다. 그러고 보니 식사 때 마신 물도 그 물을 끊여서 주신 것 같다. 우리는 호숫물을 퍼 다가 세수도 하고 이도 닦는다. 다시 들어온 숙소에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다. 워낙 호숫가에 세워진 숙소인데다가 방도 2층이라 호수 쪽으로 크게 난 창 하나 가~득 호수가 들어온다. 우와, 전망 정말 좋다. 곧 이어 우리의 감탄은 몇 배가 된다(참고로 노고호에 도착했을 때 오빠의 첫 마디는 “운남성 애들이 바다가 너무 머니까 대신 이런 호수 보고 좋다고 그러지, 내 다시는 호수 안 온다”였다 ^^;). 달이 떠 오른 것이다. 보름이 가까워졌는지 불빛 하나 없는 노고호를 훤히 밝히는 크고 둥근 달이다. 달을 넋 놓고 바라보던 오빠가 달 안까지 육안으로 다 보인단다. 루구호어디 어디, 정말 그렇다. 달 안의 음영이 뚜렷이 눈에 들어온다. 방아 찧는 토끼나 혹은 변기 위의 엽기 토끼라도 있다면 보일 것만 같다. 우리는 있으나 마나 했던 방 전등도 마저 꺼 버리고 달빛을 온전히 다 받으며 월광욕을 즐긴다. 서로의 침대를 옮겨 다니며 누워서 정적 속의 달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 본다. 달이 소리 없이 서서히 제 움직임을 갖는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틀어놓은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가 그대로 월광 소나타가 된다.

 

Tip

교통 : 려강-녕랑(Ninglang)-노고호 / 하루에 세 편, 오전에만(우리는 마지막인 오전 9시 30분 발) / 1인당 43.5원 + 보험료 3원 / 려강에서 녕랑까지는 4시간 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운전 기사가 주선해 주는 미니 승합차로 녕랑에서 노고호까지 다시 2시간 반 소요, 총 7시간 / 녕랑에서 노고호 가는 중간 차가 서고 노고호 입장료를 내는데 1인당 38원 + 자연보호비 3원(우리는 학생 할인으로 둘이 합쳐 41원 내고 표 한 장만 받음. 만약 학생이 혼자 온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 입구 아저씨한테 내밀며 이게 학생증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깎아 줌
숙소 : 이격촌 내 이름 모를 숙소 / 침대 당 10원 / 샤워실은 없고 화장실은 온 가족과 함께 사용 / 마을 내 식당이 없는 관계로 마사족이 차려주는 대로 먹게 된다. 조식(국수)은 1인당 5원, 중 석식은 각 10원씩 / 맛? 오빠 말로는 왜 음식을 미리 준비해 오라고 했는지 짐작이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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