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공히 40대의 대한민국 여행자.
흔히들 말하는 배낭여행 1세대.
남산 옆에서 반공교육도 받아본.
제일 싸게, 는 아니어도 인터넷을 사용하여 영어로 항공권이며 숙박지, 교통편을 예약할 줄 알고,
여행 관련해서는 남들보다 필요한 정보를 좀 더 빨리, get 하는 편이다.
늦은 시간 비행 후 피곤할까봐
도착 공항 근처 적당한 숙소를 물색, 픽업을 부탁하고
다음날 미리 예약해 둔 현지 업체 차량을 타고 진짜배기 목적지를 찾아간다.
여성치곤 길눈이 밝은 편이라, 작년에 들렀던 과일가게에서 잠시 스탑, 김원장이 원하는 망고도 한아름 사서 안겨주고
여행 중 현지인들의 영어를 못 알아들어도, 이 쯤이면 얘가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있겠구나, 눈치는 십단이 넘어선지 오래.
애지중지 아끼던 배낭에는 먼지가 쌓여가고
이번엔 엄마한테 빌린 트렁크까지, 2개를 끌고 왔다.
지난 봄 2주 휴가에 7권이 모자르다고 투덜거렸던 김원장을 위해, 이번엔 그 트렁크에 10권 가득 넣어왔지.
버스나 기차의 긴 흔들림 끝에 겨우, 잠시 부려두었던 무거운 배낭을 휘청거리며 다시 메고 내렸던, 그 수많았던 낯선 동네들.
마음에 드는 저렴한 숙소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땀흘리며 걷고 걷고 또 걸었었지.
아마 오늘 하루 내 몸 편하고자 쓰는 팁만 모아도 당시 하룻밤 숙박비가 나올거야.
지금의 나는 우리 둘만을 위해 미리 예약해 둔, 시원한 최신식 차량에 올라타면서, 내 옆에 앉는 김원장을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회장님 원장님 모시고 갈 차량 준비해 두었습니다"
길 위에서 보냈던 길고 긴 시간들을
이제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방콕, 하며 지낸다.
잘 차려진 호텔밥을 먹고, 예의바른 직원들의 시중을 받고, 책을 읽고, 수영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바닷가를 거닐고, 닌텐도 게임을 하면서.
한국에서부터 6시간 남짓 비행을 했을 뿐인데,
어느새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물리적 뿐만 아니라 심정적으로 한 발짝 떨어질 수 있게 되었고,
평소의 나였으면 그러려니, 익숙한 일상에서 오는 피곤함과 귀차니즘으로 그저 넘겨버릴 일들을 괜시리 시간과 품을 들여가며 애써 일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책을 읽다가 문득, 출판사에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내는 짓.
상기 도서를 읽고 있는 중에 몇 부분이 마음에 걸려 메일 드립니다.
1. 책 날개 : 하루에 600파운드면 100만원 가량이 맞습니다만, 그렇게 1년 일하면 수억대를 벌게 되지 수십억이 아닙니다. 수십 억대 연봉자라는 소개는 저자를 과장하기 위한 소재라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2. 120쪽 : 미국돈으로 800 달러는 880만원이 아니라 88만원 정도라고 봐야겠지요. 마을 주민이 실제 받은 액수가 대략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궁금합니다.
3. 125쪽 : 황금의 삼각지대보다 골든 트라이앵글이 오히려 고유명사처럼 보편적으로 와닿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4. 138쪽 : 흐몽족은 영어 철자상 h 가 맨 앞에 놓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몽족으로 불립니다.
5. 150쪽 : 음중구 역시 마찬가지로 철자는 m 으로 시작하지만 현지에서는 무중구, 라고 부릅니다. 어원은 그럴지 몰라도 현지에서는 꼭 백인만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고 외국인이다 싶으면 모두 무중구라고 부릅니다.
메일 드리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3쇄본 150쪽까지 읽었는데 상기 몇 가지가 걸려서요. 블라블라
이번 여행을 앞두고 김원장은 또, 가네 마네를 몇 번씩 반복했는데
글쎄, 과연 예정된 9월 여행은...
그리고 그 때도 이 소리가 나올까. 여행이 제일 쉬웠어요.
참고로 덧붙이자면, 놀랍게도 출판사에서 아래와 같은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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