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의 하얀 모래를 신발 바닥에 묻힌 채, 선풍기가 돌아가는 인도 트리반드룸의 공항에 도착했다. 인도를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엄중하고도 불친절한 공항 검색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오빠는, 우리가 입국 심사대를 어서 통과하기만을 기다리며 뱅뱅 돌고 있던 배낭을 집어 들곤 얼굴이 파래진다. 왜? 무슨 문제라도?

 

다행히 내 배낭은 별탈이 없는데, 오빠 배낭의 덮개 중간 부분이 예리한 칼에 베인 것처럼 ‘ㄴ’자 모양으로 오려져 있다. 분명 몰디브 공항에서 짐을 부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람? 찢겨진 부분 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배낭 앞 주머니 지퍼에 그대로 손이 닿는다. 평소 디스켓 정도나 넣어두는 공간이라 자물쇠를 채우지 않는 주머니인데, 다행히 디스켓은 그대로 있지만 기분이 영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찢겨진 배낭 덮개를 이리저리 살피며 무척이나 속상해 하는 오빠를 달래어 공항 밖으로 나섰다. 우리를 보자마자 여전히 달려드는 수많은 택시 기사들. 오늘 우리는 트리반드룸에서 남쪽으로 16 Km 정도 떨어진, 남인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코발람(Kovalam) 해변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그 곳까지의 택시 가격을 물었더니 자그마치 375루피를 달란다. 안내 책자에는 최대 225루피면 택시로 갈 수 있다고 쓰여져 있는데… 흥정을 하려는 나를 오빠가 됐다며 잡아 끈다. 우리를 봉으로 보고 바가지 씌우려고 드는 택시 운전사들과 소모전적 실랑이를 벌이느니 차라리 시내로 가서 버스를 타고 가겠단다. 우리를 시내로 데려다 줄 오토 릭샤를 찾아 그들을 뿌리치고 벗어나는 우리 뒤로 한 아저씨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결국 택시 요금은 300루피까지 내려가지만, 우리는 들은 척도 안하고 발길을 옮긴다.

 

멀리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오토 릭샤 아저씨가 얼씨구나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릭샤에 올라타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물어본다. “트리반드룸 시내까지 얼마여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아저씨가 대답한다. “100루피”. 내 뒤를 따라 릭샤에 올라타려던 오빠가 이 말을 듣자마자 다시 몸을 뺀다. “야, 너도 내려.” 얼마 전 우리가 몰디브를 가기 위해 시내에서 공항으로 릭샤를 타고 왔을 때 지불했던 50루피만으로도 요금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이전에 묵었던 숙소 직원에게서 들었던 우리다. 하물며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인데 100루피라니…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철저히 가르쳐줘야 해.” 오빠의 이론에 따라 타고 있던 릭샤에서 내려 다른 릭샤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는 우리에게 아저씨가 허겁지겁 다가선다. “왜 그래요? 문제가 뭐여요?” 그런 X하고는 말도 섞지 말라는 오빠를 두고, 마음이 약해진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저씨가 금방 말을 바꾸어 소리친다. “OK, Fifty Rupees.” “오빠! 50루피에 해준데. 다른 릭샤도 안 오는데 그냥 이 릭샤 타자~”

 

우리가 올라탄 릭샤는 주유소부터 들린다. 주유소 직원과 뭐라 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현재 본인이 돈이 없으니 먼저 돈부터 지불해 달란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잔돈이 없다. 우리는 둘이고, 아저씨는 하나인데 설마 문제가 생기랴 하는 마음에 100루피 짜리를 한 장 건넨다. 돈을 들고 가 계산을 하고 돌아온 아저씨는 역시나 거스름돈을 돌려줄 생각을 안 하고 재빨리 릭샤 시동부터 다시 건다. 그래, 내리면서 받지, 뭐.

 

분명 트리반드룸 시내에 있는 코발람행 버스 정류장에 세워달라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지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아저씨, 이 쪽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때서야 오호~ 알겠다는 듯이 반대편에서 마구 달려오는 차들을 향해 U-turn을 감행하는 아저씨. 아이구, 맙소사. 우리가 무사히 코발람행 버스 정류장에 내릴 때까지 아저씨는 거스름돈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우리 거스름돈 주셔야지요.” 또 오호~ 마치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처럼… 10루피씩 한 장 한 장 띄엄띄엄 마지못해 건네주던 아저씨는 결국 4장에서 끝을 내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에잇, 그래. 60루피 가져가라.

 

코발람코발람행 버스에 타는 일은 마치 모험처럼 보인다. 유리 없이 창살로만 쳐진 창문으로 밀려나온 사람의 고개들과 마찬가지로 문짝이 없는 승하차용 계단으로 줄줄이 매달린 사람들. 난감해 하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릭샤 총각이 접근한다. “난 코발람에 살아요. 싸게 해 줄 테니까 내 릭샤를 타고 가시죠.” 길이 잘 닦여있는 코발람 버스 정류장까지의 가격은 60루피란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코발람 해변 중에서도 먹고 잘만한 곳이 몰려있다는 Lighthouse beach인데, 그 곳까지는 길도 안 좋거니와 거리도 더 멀어 80루피는 주어야 한단다. 어디 보자… 지도 상으로는 그리 멀어보이지도 않아 코발람 버스 정류장에서 Lighthouse beach까지 걸어도 될 듯 싶다. 그럼 일단 60루피에 정류장까지만 가지, 뭐.

 

운전을 하면서 다른 한쪽 손으로 내내 무얼 뒤적거리나 했더니 우리를 위해 팝송 테이프를 찾아 꺼내어 틀어준다. 오래간만에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들으며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린다. 약속했던 60루피에 우리를 내려준 곳은 바로 Lighthouse beach 앞. 꼬불거리고 덜컹거리는 길을 이리저리 달린다 싶더니 이곳까지 데려다 준 것이다. 고맙기도 하지. 발코니 등나무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아라비아해가 그럴싸해 보이는 2층에 방을 잡고 외국인 숙박객이 작성해야만 하는 복잡한 서류를 쓰기 위해 다시 내려가려는데 주인 아저씨가 아예 장부를 들고 우리 방으로 올라온다. 비수기라 손님이 드물어서 그런가? 아무리 그렇기로 쏘니 이런 과잉 친절을?
 
코발람커다란 파도가 몰려와 눈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몰디브의 바다 색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파도가 우렁차게 쳐 대어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어디, 이 집에서 바나나 라시(Lassi)에 한 번 도전해 봐? 네팔 포카라에서 마셨던 그 맛이 그리워 주문을 했는데, 나오자마자 한 입 마셔보니 너무도 시큼한 것이 절로 몸서리쳐지게 만든다. 아마도 만들어 둔지 좀 된 모양… 저만치 밀어두고 식사를 하는데 주인 아저씨가 다가와 묻는다. “왜 라시를 안 드셔요?” “맛이 좀 이상하네요.” 얼른 라시를 치워 가져가는 아저씨.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놀랍게도 ‘라시’가 빠져있다. 어라, 아저씨 장사할 줄 아시네. 기분 좋게 돌아서는 내 뒤로 들리는 아저씨의 목소리, “마담!(인도에서 가장 많이 듣는 호칭) 10루피를 더 주셨어요.” 코발람, 레스토랑돈을 지불할 때 한 장이 더 딸려간 모양이다. 오빠와 나는 의외의 친절에 연타를 맞고 어리둥절해져서 식당을 나선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우리가 아직도 몰디브에 있는 건가? 한 나라, 아니 한 주(州) 내에서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친절한 대접을 받고도 아직은 그 진위가 의심스러운, 우리를 그렇게끔 만들어 버리고 만 나라, 인도로 돌아와 쓰다(현재 오빠는 중국 장가계 호텔에서 들고 나온 반짇고리를 이용하여 찢어진 배낭 덮개를 열심히 꿰매고 있다).

 

Tip


교통 : 몰디브 반도스 - 몰디브 국제공항 / 스피드 보트 / 15분
          몰디브 - 인도 트리반드룸 국제공항 / 비행기 / 1시간 / 우리 항공권은 open ticket이었는데 몰디브를 떠날 때에는 미리 말레에 있는 항공사 사무소에서 여권과 항공권을 확인 받아야만 한다고 한다. 일이 귀찮아지는구나 했는데 리조트에서 매일 말레로 오가는 리조트 소유 보트를 이용해 무료로 일을 완벽히 처리해주니 항공편 예약이나 재확인이 필요할 때에는 리조트 서비스를 100% 활용하자
          트리반드룸 공항 - 트리반드룸 시내 / 오토 릭샤 / 30분 / 60루피 / 트리반드룸 시내에서는 인도 최남단인 ‘카냐쿠마리’ 등지로 가는 버스 터미널과 코발람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다르며, 서로 2 Km 가량 떨어져 있는 것 같으니 주의할 것
          트리반드룸 - 코발람 / 오토 릭샤 / 30분 / 60루피 / 우리와 마찬가지로 코발람으로 돌아가는 릭샤를 잡으면 가격이 좀 저렴해지겠죠?


숙소 : Sea Sand / 천장의 fan과 욕실,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가 딸린 더블룸이 150루피 / Lighthouse beach에서 괜찮은 식당 중의 하나라고 알려진 Velvet Restaurant이 운영하며, restaurant과 붙어 있다. 침대보가 지저분한 것이 흠

 

코발람, 등대★ 히피들이 많이 찾는다고 알려진 코발람에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beach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Hawah beach이고 다른 하나는 등대가 있는, 그래서 이름이 지어진 듯한 Lighthouse beach가 그것이다. 두 해변이 생각보다 무척 작고 나란히 붙어있어 이동이 쉽지만 그래도 Lighthouse beach쪽이 모든 면에서 더 잘 갖추어져 있으니 만약 버스를 이용해 코발람 해변으로 내려온다면, Hawah를 지나쳐 Lighthouse까지 몇 발짝만 더 걷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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