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 반도스업무상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말 중에 아주 전형적인 것으로 설날이 다가오면 써 먹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와 한가위 때 애용하는 “이번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셔요?” 따위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여기에 덧붙여 매년 이 맘 때쯤 되면 자주 꺼내게 되는 인사말이 바로 “이번 휴가 때 어디 가셔요?”이다.

 

사실 우리에게 몰디브라는 나라는 일생에 단 한 번 있는(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몇 번 더 있을 수도 있겠다) 신혼 여행 때에나 시간 되고 여유 되면 겨우 한 번 와 볼까, 단순하게(?) 휴가를 보내는 장소로는 이래저래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몰디브에서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해 보이는 휴가를.

 

물론 그들은 우리보다 잘산다는 유럽인들이다. 부럽게도 이들은 우리처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1년에 무려 한 달 가량의 휴가가 주어지는 나라에 살고 있다. 말을 듣자 하니 프랑스인들이나 이탈리아인들의 경우, 그 한 달의 휴가를 화끈하게 보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게다가 우리가 머물렀던 툴라기리 리조트의 경우, 독일인 전용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만큼 독일인들이 득시글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제부터 이 곳에서 그 ‘한 달’을 보내기 위해 몰려오는 이탈리아인들 덕분에 몰디브가 들썩거리며 다시 성수기에 돌입했다.

 

불과 십 여분이면 한 바퀴를 무리 없이 둘러볼 수 있었던 아담한 툴라기리 리조트와는 달리, 몰디브 내 리조트로서의 역사만도 30년 이상 되었다는 반도스 리조트가 자리 잡은 이 섬은 몰디브에서도 가장 큰 리조트 섬 중 하나라고 한다. 뭐, 그래 봐야 식전에 덜 꺼진 배를 비우기 위해, 식후에 너무 부른 배를 꺼뜨리기 위해 한 바퀴 돌기에 적당하리만치 작은 섬이다. 방금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섬을 돌라치면 어김 없이 마주치는 하얀 얼굴에 파란 눈을 가진 오붓한 가족들이나, 핫팬츠를 입고 조깅을 하는 백발의 할아버지, 혹은 오빠의 눈길을 사로잡는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성들을 쉽게 마주치게 된다.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환상적인 바다는 기본으로 두고도, 섬 중앙에 있는 스포츠 센터에서는 테니스, 스쿼시, 배드민턴 뿐만 아니라 축구, 탁구, 당구, 다트 놀이도 할 수 있고 더불어 습식 사우나와 건식 사우나까지 마련되어 있어 공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나 에어로빅을 배우던 사람들, 헬스 클럽 내 런닝머신에서 땀 나도록 뛰던 사람들이 끝마무리까지 산뜻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았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나 아기 방까지 갖추어두고, 작은 진료소에는 24시간 의사가 상주하며, 혹 고국에 두고 온 사람들이 그리워지면 인터넷으로 사진을 실어 안부를 전할 수도 있다. 메인 식당에서 때마다 뷔페식으로 차려지는 세 끼 식사가 지겨워지면, 섬 내 여타 레스토랑에서 색다른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으니(이 리조트 팸플릿에 수영복을 입은 일본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는 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일식 요리도 있으며, 현재에도 이곳에 머무르는 4~5명 중 한 명은 일본인이다) 휴가를 즐기는데 있어 더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할까?

 

반도스, 스노클링사실 우리처럼 이틀 정도 머물렀다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면서 오색찬란한 열대어들을 구경하거나, 수평선에 해가 뜨고 지면서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그림을 감상하는 데에만도 시간이 촉박할지 모르지만, 최소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도 아침부터 조깅을 하고, 에어로빅을 하고, 헬스 클럽에서 몸을 만드는 것이겠지. 하루 종일 해변에 누워 선탠을 하며 독서를 하는 것도 며칠이면 지겨워지지 않을까? 우리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할 것 같은데… 

 

우리는 신혼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조트 생활이 이틀이면 아쉽고, 사흘이면 지겨워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일단 두 군데의 리조트에서 각기 이틀씩 묵기로 했던 것이었는데 말레를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혹 더 있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었지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로써 몰디브 생활 4일째, 처음에는 여기까지 날아온 항공료를 생각해서 적어도 일주일 이상 체류할 예정이었지만, 이제 슬슬 섬에서의 휴식이 지겨워지고(!) 연장 체류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이 그만큼의 가치를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fantastic’하더라도 말이다.

 

1년에 8월 초 며칠, 전국민이 바글바글 휴가를 몰려 떠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그만큼의 쓰레기로 뒤덮인 모래 사장 혹은 산 속 계곡에서 바가지에 돈은 돈대로 쓰면서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소음에 시달리다가 오히려 돌아온 서울이 더 조용하게 느껴지는 휴가철을 보낼 때마다, 올해 휴가도 이토록 허무하게 지내버린 것을 아쉬워하고, 내년 휴가만큼은 돈 모아서 나도 한 번 가족들과 해외로 떠 즐겨봐야지 하지만, 사실 휴가철에 한국 사람 들끓는 동남아는 한국과 굳이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항공권을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다음 해에도 ‘과연 어디로 가야 사람이 덜 몰려 한가롭고 바가지 없는 즐거운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란 사치스러운 생각은 접은 채, 매년 그랬듯이 동해안으로, 설악산으로, 가까운 계곡으로 밀려 밀려 가야만 하겠지.
 
반도스, 스노클링휴가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직장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것, 또는 그 기간”
여기에서의 키워드는 ‘일정한’과 ‘쉬는 것’이다. 일정하지 않은 기간 동안 계속 쉬고 있으면 (우리처럼 ^^;) 백수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간의 지친 몸과 맘을 추스리고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쉬는 것(‘노는 것’이 아니다)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때, 언제 어디로 가서 얼마나 오래 쉬느냐 보다는 아마도 ‘어떻게’ 쉬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누군가 “이번 휴가 때 어디 갔다 오셨어요?” 물으면 ‘방콕’을 했더라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휴가 문화가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하지만 몰디브에 있으면서도 여태 ‘휴가’란 단어에 맘이 설레기만 하는 나는 대체 어쩌면 좋을까? 마냥 헛소리만 늘어놓은 것 같다.

 

Tip


숙소 : Bandos Island Resort / 전통 있는 리조트라서인지 툴라기리에 비하여 객실 수준은 딸리지만 그래도 매우 훌륭하다 / 2인 3식 포함(Full Board : 음료만 제외) 1박 US$ 100 / 툴라기리에서 반도스까지 스피드 보트로 10분


★ 반도스에서 이틀간 우리가 사용한 추가 비용은 다음과 같다(10%의 service charge 별도)
☞ 스노클링 장비(2인, 24시간) = US$ 16
☞ 음료대 = US$ 20
☞ 밤 낚시(2인) = US$ 52(오빠가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동안, 나는 빨갛고 노란 두 마리의 열대어를 낚았다)
☞ 당구(1시간) = US$ 5(김 원장이 가르쳐주지는 않고 혼자 신나서 치더라만)


★ 몰디브가 다이빙 천국인 건 아시죠? 반도스에서는 US$ 60의 체험 다이빙부터 US$ 300의 6일간 무제한 다이빙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다이빙이 가능하답니다(저렴한 다이빙을 원한다면 수도인 말레에서 찾을 것)


반도스★ 전반적으로 숙소나 식사는 반도스에 비해 툴라기리가 낫지만, 반도스는 부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장점이 있다(단기간 신혼 여행이라면 툴라기리로, 장기 휴양이라면 반도스로!). 우리가 원했던 사양 그대로 툴라기리의 라군 비치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반도스에서의 스노클링도 아주 훌륭했다. 공통적으로 두 곳 모두에서 상어를 만날 수 있으며, 스노클링 중 산호에 긁혀 피를 흘리던 오빠는 두 마리의 상어(그래 봐야 70~80cm 정도 되는 작은 상어들이지만)에게 쫓겨(오히려 오빠가 상어를 따라?) 다니는 것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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