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즐겁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드는 데 있어 동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크다. 흔히들 친한 친구끼리 혹은 연인끼리 여행을 가도 싸우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는데(그간 남들보다 여행을 많이 한 우리 부부야 뭐 이미 갈 때까지 갔다고 치고 ^^;), 여행을 하다보면 요번처럼 경비 절감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조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간 우리도 수많은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열흘도 넘게 여행을 해보았는데, 우리의 주관적 경험으로는 우리와 가장 잘 맞는 동행은 바로 일본인이다.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 아니라.

, 안 그런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우선 일본인들은 덜 시끄럽고 ^^; 남을 배려할 줄 알며(이스라엘 애들은 이 부분이 좀 취약하기로 소문나 있다), 보유한 여행 정보도 많은데다가 무엇보다도 우리와 문화가 비슷하고 적당히 말이 안 통한다 ^^. 어제 하루 종일 함께 이동을 한 사이긴 하지만 우리는 어스름이 내려앉은 저녁, 옥상에 둘러앉아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야 그간 가볍게 주고받았던 농담을 뒤로 하고 서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나소닉을 다니는 엔지니어들로 한 때 회사 기숙사 옆방지기 사이였으나 지금은 나와 동갑인 후지와라씨(y.fujiwara@mail.mew.co.jp)는 기숙사 연령 제한에 걸려 따로 집을 얻어 살고 있으며, 나보다 세살 어린 남성(끝내 통성명을 하지 않은) 모씨는 작년에 결혼을 하면서 기숙사를 나와 살고 있다고 했다(모씨는 비록 결혼을 하긴 했지만 맞벌이 신세인지라 이번에 와이프와 함께 여행을 나오지 못했다). 일본 직장인들이 아직도 (타발적?) 일벌레들인지 아침 9시에 출근하면 밤 10시나 되어야 퇴근한다고 하더라(물론 틈나는대로 꾸벅꾸벅 존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학생때는 장기 여행도 가능했지만 취업을 한 뒤로는 1년에 주말껴서 겨우 9일 휴가를 만들어 이번에 예멘을 찾은 것이라 했다(일본어판 예멘 가이드북을 들고). 그들이 우리의 요번 일정이 제법 길다는 것을 알고 어찌나 부러워했는지(역시 의사란 직업이 좋다나?). 이들을 통해 마나카 호텔에 상주(?)하는, 아민 말고 또 다른 (일본인 전담?) 예멘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서로 간단한 한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쳐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결국 노총각 후지와라씨의 별명은 ‘미스터 독신’이 되었다. 일본어로는 독신이 도쿠신이라나?). 혹시라도 팀원으로 외국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케케묵은 옛감정을 떠나 일본인을 추천하고 싶다(하긴 여행하는 일본애들이 워낙 많아서 만나기도 어렵지 않다).

둘은 오늘 아침에 샤하라 다리 위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했지만, 늙은 우리 부부는 동행을 거절하고 숙소에서 좀 더 밍기적거렸다. 돌아온 그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이제 다시 샤하라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한다. 어제 탔던 용달트럭에 다시 올라 전열을 재정비하고, 올라오기도 까마득했던 그 길을, 이번엔 되짚어 내려간다. 털털털털털~ 아, 물론 어제 저녁, 샤하라 마을 도착 직후 사라졌다 오늘 아침 어디선가 다시 나타난 총든 군인들 둘도 올라타고.

어제 공사하던 길이 아직도 마무리가 덜 되었는지 공사차량이 길을 막고 있다. 그것을 본 샤하라 가이드 아저씨왈 시간이 얼마나 지체될지 모르니 차라리 다른 길로 가잔다. 뭐? 어제 올라왔던 길말고 산을 내려가는 또 다른 길이 있어? 어제 올라왔던 길이 산아래와 산꼭대기 샤하라를 오가는 메인루트임이 분명할텐데 만약 다른 길을 이용한다면 도로 사정은 더욱 안 좋을 것이 자명한 노릇이다. 오호…

어쨌거나 하나로도 기가 찰 길을 이번엔 다른 길을 이용해서 내려가기 시작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길은 매우 험해 –우리가 서있는 짐칸에선 절로 제자리 높이뛰기가 될 지경- 내 돈 내고 목숨을 여기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구나 싶다가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너무나도 멋진지라 일본인들과 어울려 번갈아 “멋지다~”와 “스고이~”를 외친다. 더불어 믿기지 않는 엄청난 성능의 토요타 트럭에 감탄을 하면서 “토요타 반자이~”도 외쳐준다 ^^; (우리 나중에 차 바꾸게 되면 토요타 4륜구동으로 사자~하면서) 대체 인간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얼마만큼의 공력을 들여 이렇게 길을 닦고 밭을 개간했을까?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길이다.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일라나. 일본인들의 말마따나 <천공의 성 라퓨타>인가 하는 만화를 한 번 챙겨봐야 쓰것다(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차에 속도가 붙자 내 머리를 덮고 있던 스카프가 휙~하고 날아가는 바람에 차를 세우고 가이드 아저씨가 뛰어가 줏어다 주기도 했다).

산을 돌아돌아 내려와 어제 헤어졌던 지점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아흐야 아저씨(아저씨는 이 근처에서 잤단다). 아직 심란한 비포장도로가 한참 더 남아있지만 트럭에서 내려와 지프 차내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샤하라를 통해 잊지 못할 결혼 기념일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구나.

후쓰 근처에 이르러 다시 군인들은 어제와 마찬가지 숫자로, 그 멤버 그대로 충원이 되어 용달트럭으로 우리를 호위하기 시작한다. 어느 구간에서는 그들이 앞질러 나가고, 어느 구간에서는 그들이 뒤에서 우리를 따르며, 혹여라도 우리와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거리 유지를 하라고 닥달하기도 한다. 이 동네가 위험하긴 위험한가봐. 김원장은 이 정도로 치안 상황이 안 좋은 줄 알았으면 샤하라를 가지 말았어야 했나, 뒤늦은 말을 꺼내본다(이미 다 갔다와 놓고선 ^^;). 에이~ 뭐 별 일이야 있겠어? 다행히 내 말대로 그들은 안전지역 암란에까지 우리를 무사히 데려다 놓고서야 헤어진다(고 전에 아흐야 아저씨에게 살짝 뒷돈을 요구하는 것도 같더만).

암란에서 우리는 사나로 향하는 길을 살짝 벗어나 틸라(Thilla 혹은 툴라 Thula)를 구경하고, 다음엔 쉬밤(Shibam)으로 향한다.

쉬밤에선 가이드북에 소개되는 Hameda restaurant에서 점심 정찬을 즐겼고(워낙 4인상 기준 5000리알을 불렀으나 아흐야 아저씨가 3000리알로 깎았다) 마지막 일정으로 코카반(Kawkaban)에 올랐다. 아마 코카반을 일찍 방문했었다면 그 감흥이 더했을텐데, 샤하라에서 오는 길이었던 우리에게는 그 매력이 줄어들을 수 밖에 ^^; 

 

 

<코카반에서>

 

<돌아오는 길> 

정든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항상 아쉽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일본인들과도 헤어지기 섭섭하고 우리 정 넘치는 아흐야 아저씨도 왠지 그냥 보내서는 안 될 것만 같더라(끝내 팁은 주지 않았지만 ^^;). 아쉬움을 담은 악수만 몇 번이고 하다 헤어졌다. 여하튼 끝까지 바람직한 ^^ 여행이었다.

미리 잡아두었던 숙소로 돌아와 더운 물에 샤워를 하니 먼지 가득 쐬었던 온 몸이 싸악~ 개운하니 다시 한 번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도 좋았고, 숙소도 좋고 ^^ 이제 예약해두었던 비행기 티켓만 잘 해결되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셈인데...

에티오피아 경유 이집트행 항공편을 부탁했던 여행사의, 걱정 말고 샤하라 잘 다녀오라던 담당자는 마침 자리에 없었고 다른 직원이 대신 우리 예약 상황을 재확인해주는데, 흐음, 우리 뒤통수에 대고 마지막에 외치던 인샬라가 바로 이런 뜻이었나, 티켓은 부탁했던 두 여정 모두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모레 떠나는, 예메니아 항공사로 예약해 두었던 에디오피아행 또 다른 티켓이라도 구입해야겠지. 그런데 어랍쇼? 우리가 티켓 구입 기한을 넘긴지라 우리의 예약은 이미 취소가 되었고 해당 비행기는 풀북이란다. 뒤늦게 당황한 우리가 앞뒤 날짜로 항공편 좌석을 모조리 확인해 보지만 당장 몇 시간 후에 떠나는 비행기 이외에는 며칠 뒤에나 가능하단다. 어쩌지? 사나에서 며칠이고 더 개겨? 아님 그냥 좀 있다가 떠나? 잠시 고민하던 우리, 그냥 몇 시간 후 떠난다는 에디오피아행을 지르기로 한다.

사나에 이틀 정도는 더 머무르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갑자기 사나를, 그리고 예멘을 떠나려니 서운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당장 몇 시간 후면 공항으로 가야하니 서둘러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일단 에티오피아 정보가 너무 부실하다(아프리카는 아예 가이드북 자체를 구입하지 않았었다). 아디스아바바엔 새벽에 떨어질텐데 그 시간에 어떻게 시내로 들어가야 하는지, 시내에선 어느 호텔에 묵어야 하는지… 일단 이 두 가지만 얼른 확인해보고 숙소로 돌아가 짐싸고 잠시라도 눈을 붙였다 공항으로 가야할 판이다. 급히 PC방에 들러 인터넷으로 아디스아바바 정보를 찾아보니 새벽에 떨어지면 택시로 시내 피아자 부근의 바로 호텔(Baro hotel)로 가되 숙소까지의 택시비로는 50비르(birr)이상 지불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그러고보니 어느 한국인 여행객의, 바로 호텔이 비싸고 싸가지가 없다고 했던 글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바로 호텔이 여행자가 가장 많이 모이는 호텔이라니 일단 거기까지 가서 최소 하룻밤 묵으며 에티오피아 일정을 정해보는 수 밖에 없다. 완전 맨땅에 헤딩하기 버전이다 -_-;

, 어떻게든 되겠지.

@ 아흐야 아저씨를 통해서야 예멘 길거리에서 파는 작은 나뭇가지들의 정체를 알았다. 바로 칫솔. 나뭇가지를 물어뜯어 칫솔 대용으로 사용하는데 신기하게도 나무에서 치약 냄새가 난다.

@ 우리가 사나->아디스아바바 예메니아 편도 항공권을 구입한 곳은 일명 ‘사나의 이마트’라 불리우는 알 호다 수퍼마켓 맞은 편의 Al-Hadha travel & tourism(www.httyemen.com)이란 작은 여행사이다(Al-zubiri st). 다른 여행사 몇 곳을 들려본 뒤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 같아 이 곳에서 179불/인에 구입했다(원래 예약했던 이틀 뒤 날짜의 티켓은 180.45불이었는데 당장 떠나는 티켓이라서인지 조금 더 저렴했다). 좀 더 규모가 컸던 여행사 하나(Qadas fly dot svcs)는 같은 티켓을 192불까지 불렀다.

@ 참고로 상기 여행사에서는 사나-에디오피아-이집트행 예메니아 항공편을 (좌석이 있다면) 365불(다른 여행사는 400불)에 구입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구할 수만 있었다면 이게 딱인데…

@ 에티오피아에 새벽에 도착하는지라 혹여 환전이 문제가 될 것 같아 예멘에서 환전을 시도했는데 미리 한국에서 찾아 저장해 간 환율과 비교해 볼 때 환율이 너무 안 좋더라(그새 큰 변화라도 있었나?). 하지만 다른 대안도 없는지라 일단 20불=133비르만 환전했다. 이렇게 정말 에티오피아로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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