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려 오늘 하루를 묵을 곳과 그 주변을 둘러보니 경관이 아주 시원합니다. 흠, 마음에 드는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 주변에 제법 큰 강도 흐르겠다, 이 곳만큼 적합한 야영지는 없겠는걸? 이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분명 기억에 남는 멋진 하룻밤이 될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슬슬 여기서 몸부터 풀어볼까?
파키스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 제가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었을 뿐인데, 저 차에 탄 모든 남성들이 열광적으로 제게 손을 흔들어 답해줍니다. *^^* 이 세상 어디서 제가 이렇게 공주 대접 받아보겠습니까? 그냥 팍 눌러앉아버리고 싶어요 ^^;
비단 차를 타고 지나가는 남성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곳은 분명 파키스탄의 이름난 명소, 많지는 않지만 올라올 때 만났던 젊은이들처럼 남학생들이 MT처럼 많이 찾는 곳입니다(불행히도 여성들은 그런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지만요). 쭈뼛쭈뼛하던 학생들 중 용감한 한 학생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저… 괜찮으시다면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될까요?”
왜 안 되겠습니까? 당근 되죠. 근처에 다방이라도 있으면 같이 커피도 너댓 잔 마셔줄 수 있습니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나니… ^^;
한 학생과 함께 사진을 찍으니 멀찌감치에서 그 모습을 훔쳐보던 다른 학생들이 너도 나도 덤벼들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해옵니다. 흠냐, 졸지에 스타가 된 느낌입니다. ^^; 김태희도 아닌데 남자들이 줄 서서 저와 사진을 찍습니다. 태어나서 이런 느낌 처음이야~ 마냥 즐기고 있는데 이 와중에 불쌍한 김원장, 찍사만 하고 있네요 ㅋㅋㅋ (하지만 김원장도 은근 즐기는 듯, "야! 팔짱도 좀 껴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학생들이 사라지자 이번엔 난데없이 백인 아저씨가 인사를 건네며 나타납니다. 데오사이 한 가운데에서 간만에 같은 여행자 신분인 백인을 만나니 반갑기까지 하네요. 근데 이 아저씨, 알고보니 여행자가 아니랍니다. 그럼 뭐하시는 분이냐고요? 네덜란드에서 온 식물학 박사 아저씨셨습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임현담 선생님께서 앞서 밝히시길 데오사이가 <충청도만한 고지에 전체가 꽃밭>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아저씨, 꽃 보러 여기까지 오신 분입니다.
“자, 제가 재미난 질문 하나 할까요? 지금 가리키는 이 부분에 몇 종류의 식물이 있는 것 같아요?”
“글쎄요.. 이거, 이거, 이거해서 한 5~6가지쯤?”
“하하하, 틀렸어요, 자, 봐요. 블라블라블라블라 해서 요기에만도 무려 20가지가 넘는 종류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답니다”
저야 워낙 꽃과는 거리가 멀어서 -_-; 까무잡잡한 현지인들만 만나다가 참신한 누런 얼굴이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온갖 꽃 설명을 알아서 해주시는 이 식물학 박사님이 좀 부담스러워집니다. 이 식물의 이름을 맞춰보라고 하질 않나, 이상한 풀을 뜯어 주시며 먹어보라고 하질 않나, 그냥 흔히 통용되는 단순한 영어 이름으로 말씀해주셔도 태반을 못 알아들을 판에 웬 무슨무슨 쿠스, 무슨무슨 라 등으로 끝나는 길고도 어려운 학명이란 말입니까! -_-;
박사 아저씨께서는 학술적인 목적으로 이 곳을 거의 매년 찾으시는데, 이번엔 일주일 여정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작년엔 못 오고 올해 다시 왔는데 재작년보다 무려 20%나 식물의 종류가 감소했다고 하시며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데오사이도 이제 예전 같지 않다고, 이대로 두면 큰 일 날거라 하시면서… 사실 이런 이야기는 박사님한테서나 들을 수 있는 귀한 이야기죠. ^^
“둘이 찍은 사진은 없죠?” 하시며 아저씨가 찍어주신 사진. 제가 자라처럼 나왔습니다 -_-;
이후 아저씨 캠프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갔습니다(사탕 몇 개와 콜라를 커다란 컵 가득 콸콸 따라주시며 이 것 밖엔 줄 게 없다며 미안해 하셨습니다). 아저씨 캠프의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돔이 마음에 들었다는 ^^; 축구 이야기에 각국의 의료 현황 이야기에(네덜란드는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파키스탄의 경우,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보다 사설 클리닉의 질이 훨씬 좋다 하네요. 정부 병원에선 증상도 거의 안 물어보고 약을 지어준데요 ㅋㅋㅋ), 오늘 아침 아저씨와 현지인 가이드가 함께 봤다는 곰 이야기에(아저씨네 캠프 뒤의 커다란 언덕을 넘어가면 곰들이 산다나요?), 심지어 아저씨의 태국인 사모님 이야기까지… ^^;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모기였습니다. 임현담 선생님께서 경고하시긴 했지만, 긴 팔 소매 옷에 긴 바지를 입고, 부착형 모기 퇴치 밴드에, 모기향, 모기 스프레이까지 준비해 간 저희가 무색할 정도로 모기들의 포스가 상당했습니다. 우리의 가이드 Sadiq은 데오사이에서도 이 곳만 이렇게 심하다고 했는데, 이래서는 도저히 텐트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없겠더라고요. 지금도 정신 없이 달라붙는데, 밤에 달빛이라도 구경하려면 완전 벌집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이 곳을 떠나 제 3의 야영지로 향하기로 합니다. 박사님, 안녕~
세번째 야영지로 향하는 구간에서는 제법 큰 개울을 건너야 합니다. 앞서 달리던 트럭이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이번에도 현대차는 아니겠죠? -_-). 승객들 모두가 내려 영치기 영차, 차를 들어냅니다. 모두들 뒷바퀴가 뿜어내는 물세례에 한바탕 몸을 흠뻑 적신 후에야 겨우 차가 빠져나갑니다. 우리 Sadiq도 숨 한번 가다듬고 기어 변환을 한 뒤 한 번에 양 옆으로 물살을 가르며 개울을 통과합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양 바퀴 옆으로 멋진 물의 포물선을 그리며… 야호!
다리를 떠난지 1시간 정도 지나서 야영이 가능하다는 호수에 도착합니다. 길기트의 한 여행사에 데오사이에 대해 문의를 했을 때 데오사이에 너무 너무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 곳입니다. 어디, 호수 주변 좀 구경해 볼까요?
배경 덕에 인물도 좀 사는 듯 ^^;
어때요? 호수도 호수지만 주변 광경이 제 별 볼일 없는 사진 솜씨로도 멋지죠? 그러고보니 꽃 많다는 이 곳에서 꽃 한 번 제대로 찍질 않았네요(워낙 제가 그런 쪽에 관심이 없다 보니 ^^;). 한 장 살짝 첨부해 봅니다.
어쨌거나 이 땅에 서 있으니 절로 티벳이 연상됩니다. 티벳보단 좀 더 촉촉한 편이지만, 그래도 이런 하늘은, 이런 구름은, 이런 산들의 곡선은, 그래도 여느 다른 나라보다도 티벳에 가까운 것 같네요. 아, 저 귀여운 마멋도 포함해서요. 아마도 이 곳과 티벳이 비슷한 고도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6(발리·KKH) > KKH'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팁] 060721 데오사이 평원 (0) | 2006.10.12 |
---|---|
[사진] 060721 데오사이 평원(Deosai plains) 下 - 인샬라,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0) | 2006.10.04 |
[사진] 060721 데오사이 평원(Deosai plains) 上 - 인샬라,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0) | 2006.10.04 |
[팁] 060720 길기트 to 스카르두(Skardu) (0) | 2006.09.27 |
[팁] 060719 미나핀(Minapin) to 길기트(Gilgit) (0) | 200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