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내책자는 해발 4,700m에 위치하고 있는 ‘하늘 호수’, 남쵸(Nam-Tso)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길이가 70 Km 이상이고 너비는 30 Km에 달하는 이 호수는 남쪽으로 녠첸 탕글라(Nyenchen Tangla) 산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저 멀리로는 유목민 텐트들이 점점이 흩어져 박혀 있고 터키 블루의 신비로운 호수 빛깔과 수많은 철새 떼들이 연출하는 호수의 광경은 환상적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오늘 결국 남쵸와 조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듯이 한국인 세 명과 유럽인 세 명으로 이루어진 다국적 팀의 출발은 매우 순조로웠다. 자리가 조금 좁은 듯 했지만 1시간 30분마다 앞 자리와 뒤 자리를 쌍을 지어 번갈아 가면서 사이 좋게 앉아갔고, 미리 준비해 온 간식거리를 서로 나누어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라싸를 벗어났다. 남쵸는 라싸에서 북쪽으로 200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중 150 Km 가량을 우리나라 배낭 여행객들의 단골 티벳 입경 루트인 청장공로(꺼얼무와 라싸를 잇는 도로)를 되짚어 달려가야만 한다. 이미 이 루트를 이용하여 티벳에 들어온 코끼리 아저씨를 비롯, 나머지 우리들까지 모두 청장공로의 멋진 경치에 넋을 빼앗기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이 곳에 매료되는 사람은 아마도 네덜란드인 Dror가 아닐까 싶다. 우리들 중 가장 낮은 나라에 살면서(해발 몇 m는커녕 해저로 내려가는 땅에 살고 있으니) ‘세계의 지붕’ 혹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대지’라 불리우는 티벳에 들어왔으니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그의 감흥은 남다를 수 밖에 없으리라.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내리던 비가 우박으로, 눈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온통 겨울이다. 이렇게 하얀 세상 속에 하늘 가까이 떠 있는 터키 블루빛의 호수라니 정말 기대가 되는데, 이런 나의 설레임은 오래가지 못하고 와장창 깨지고 만다. 반대편에서 마주 오던 짚차 한 대가 연달은 경적으로 우리 차를 불러 세우더니 어젯밤 갑작스레 내린 엄청난 눈으로 인해 남쵸로 가는 길이 막혀버리고 말았단다. 뭐? 눈? 이게 웬 날벼락. 눈이라면 이미 중국 향성에서 이골이 날만큼 겪은 터, 그 말을 듣고 우리 둘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런 우리와는 달리 여전히 꿋꿋한 나머지 우리 팀원들은 그래도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겠다고 중지를 모은다. 쯧쯧, 아직 눈 맛을 못 봤군.
남쵸 매표소 앞에서 일단 우리는 멈추고 선발대 겸 해서 Dror만이 길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정찰을 떠났다. 그 동안 오빠와 나는 매표소 아래 마을로 내려가 배추 씻는 티벳 아낙들과 바디랭귀지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새 Dror가 돌아왔는지 저 멀리 매표소에 우리 식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해발 4,000m가 훨씬 넘는 고원에서 헉헉거리며 언덕을 기어 올라와보니 아니나 다를까 Dror가 고개를 절레절레 하고 있다. 눈에게 이렇게 또 한 번, 보기 좋게 당하고 만다.
차는 1박 2일을 대절했건만 이제와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다. 이미 지나온 길에 있다는, 남쵸 코라를 마친 순례자들이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는 온천이나 대신 구경하기로 하고 다시 라싸를 향해 차 머리를 돌렸다. 멀리에서도 모락모락 공장마냥 김을 내뿜는 온천 마을 이름은 양팔정(羊八井).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과는 당연 거리가 꽤 있지만 그래도 제법 틀을 갖춘 야외 온천욕장이 나타났다. 남녀 공용이고, 물론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게끔 되어 있는데 마침 우리와 같은 일정으로 앞서 출발했다가 똑같이 이 곳으로 돌아온 중국 관광객들이 입욕을 하기 위해 난리법석이다. 반면 우리 팀은 아무도 썩 내켜 하지 않는지라, 중국 여인들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어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오빠와 코끼리 아저씨를 질질 끌고 다시 라싸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사실 우리가 서부 티벳 여행을 계획했을 당시에는 티벳 제 2의 도시인 ‘시가체’로 가는 두 갈래 길 중 남쪽 길을 선택, 전갈 모양을 닮았다는 또 하나의 성스러운 호수, ‘암드록쵸’를 구경하고자 했었기에 굳이 남쵸까지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서부 티벳 여행을 떠날 식구 중 이스라엘인 Yifat은 오직 하루 빨리 성지 순례(카일라스 코라)를 하겠다는 열망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여성이었고, 남은 영국인 남매 Grace와 Marc 역시 네팔에서 라싸로 들어오는 길에 이미 암드록쵸를 들러온지라 시큰둥할 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남쵸였을 따름이다. 이제 남쵸 역시 우리 손아귀를 멀리 벗어난 이상, 티벳인들 말마따나 내세(來世)를 기약하는 수 밖에…
Tip
교통 : Yak Hotel - 남쵸 / Yak Hotel의 수문장이자 doorman, TenChoe가 소개해 준 짚차(1박 2일에 1,000원 : 우리처럼 6명이 탈 경우 1인당 170원 이하) / 라싸에서 담숭(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3시간, 담숭에서 호수까지 2시간, 모두 5시간 소요
★ 근래 들어 티벳을 찾는 여행자들이 종종 남쵸까지 hitch를 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라싸에서 담숭까지는 미니버스를 타고 왕복 50원 + 담숭에서 남쵸까지는 차를 기다린 지 15분만에 트럭을 hitch하여 왕복 25원으로 모두 75원만으로 남쵸를 다녀온 서양 여성 여행객도 있었던 반면, 이 여성을 따라 했다가 담숭에서 2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결국 왕복 320원짜리 남쵸행 짚차를 얻어 타고 모두 370원으로 남쵸를 다녀온 일본 남성 여행객도 만났다(비록 그랬을지언정 남쵸는 그래도 매우 아름답단다).
★ Tip 속의 tip! 보통 짚차는 1 Km당 3원으로 계산하는데 비해 택시는 1 Km당 1원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 비록 당일치기 남쵸 여행이기는 하지만 4명이 300원만으로 다녀온 네팔 여행객을 만났으니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관광 : 1인당 30원인가, 35원인가 하는 남쵸의 입장료가 있다.
양팔정 노천 온천 / 입욕료 40원 + 수영복 대여료 10원 / 경기도 이천의 미란다 호텔을 연상케 하는 노천탕(물이 뜨겁긴 하지만 그 모양새가 목욕탕이라기보다는 수영장에 가깝다). 전면 경관이 그럴싸하다.
숙박 : 안내책자에 따르면 반드시 침낭을 준비하라고 되어있는데 다녀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담요를 달라는 대로 준다고 한다. 하지만 남쵸를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에는 ‘정말 아름답다’말고도 ‘무지무지 춥다’가 절대로 빠지지 않으니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을 것이다
식당 : 오전에 라싸를 출발한 짚차는 보통 점심 시간쯤 담숭에 닿는다. 운전사가 가격이 두 세배는 비싼 식당으로 안내를 하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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