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카르에서 나머지 계획했던 라자스탄 일정을 모두 접고 그렇게 허겁지겁 떠나온 것이 무색하도록, 델리에 도착한 김원장의 몸 상태는 드라마틱하게 호전되었다. 이래서는 델리의 병원에 갈 필요도 없다고, 이젠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자신있게 말하네. 

 

김원장이 안 아프다니 하나뿐(?)인 마누라의 입장에선 분명 기뻐야만 하는데, 한편으로 드는 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은 정체가 뭐지? 이렇게 좋아질 것이었으면 왜 우리는 그렇게 델리까지 서둘러 온 걸까? 조심스레 그럼 우리 다시 돌아갈까? ^^; 의중을 물으니, 본인이 서쪽으로 진로를 트는 순간, 다시 아플지도 모른단다 ㅋ 어쩌면 김원장의 이번 증상에는 정서적 스트레스가 한 몫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몸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꿋꿋하게, 이번엔 인도 자체를 빨리 벗어나는 방향으로 맘을 굳히고 있는 김원장은, 

식욕을 되찾았는지 룸서비스로 아침을 거하게 때려먹고(버터 토스트 20루피+짜이 6루피+커피 15루피+버터 짜파티 5루피)

그간 밀린 세탁물까지 모조리 맡기고 나자

나와 머리를 맞대고 최적의 일정을 조합해 내느라 평소 들고다니는 작은 수첩을 걸레처럼 만들어가며 <집으로 돌아가기 대 프로젝트>에 돌입한다(마침 이 날이 금요일이라 마음이 더 급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몇 안들을 가지고 PC방으로 가서(시간당 15루피) 일단 조합해 온 일정 중 제 1순위 델리->카트만두 항공권 조회부터.

편도 약 150불/인, 먼 거리가 아니더라도 명색이 국제선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하지만 막상 실제 가격을 접하고 나서 급 꼬리를 내린 우리는 -_-; 이렇게까지 서둘러 카트만두로 갈 필요가 있나, 어차피 당장 카트만두로 간다고 해도 그 다음 행선지인 방콕 공항이 폭탄 테러로 꽉 막혀 있을텐데... 어쩌구저쩌구 해가며 마치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었다는 듯 이동 수단을 바꾸기로 한다. 참으로 쉽사리. ㅋ 2순위는 당연히 기차.

 

기차가 그 대안이라면 네팔에서 인도로 올 때처럼, 일단 국경 마을 고락푸르까지 기차로 간 뒤, 그 곳에서부터는 차량을 이용해 카트만두로 가는 방법이 최적이다. 지난 번 고락푸르에서 지냈던 하룻밤에 대해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는 김원장은 고락푸르에 아침 일찍 도착해서(=절대 고락푸르에서 체류하는 일 없이) 당일 카트만두로 넘어가고 싶다는 의견을 내세운지라 그에 맞게 델리에서 밤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 시간표 책자(Trains at a Glance)를 뒤적여서 찾아낸 가장 적당한 놈은 뉴델리역을 기점으로 오후 7시 50분에 출발하여 고락푸르역에 다음날 오전 9시 15분에 도착하는 편.

 

 

그러나 인도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오늘 날짜로부터 향후 1주일간 좌석 상황을 모조리 조회해 보았지만, 해당 편의 좌석은 3A는 커녕 SLEEPER마저 단 한 장도 없었다(한 때는 비행기를 탈 마음도 있었으니까 3A가 없는 김에 미친 척 2A까지 조회해 봤는데 2A도 없더라). 그렇다면 카트만두까지는 정녕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걸까...(다시 라자스탄으로 돌아가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하다가 문득, 뉴델리역에는 외국인을 위한 창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기억이 나서 혹 직접 방문해 본다면 뭔가 꼼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밑져야 본전, 멀지도 않겠다, 한 번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인파로 가득한 뉴델리역에서 사람들 사이를 뚫고 외국인 전용 창구를 찾아 들어갔더니 어라, 네팔 룸비니에서 만났던, 세계여행 13개월차라던 눈빛이 서늘한 청년이 거기 서 있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지? 그 때 함께 룸비니를 떠날 때 그는 바라나시로 간다고 했었는데? 그새 바라나시를 떠나 델리까지 왔단 말인가? 그의 대답은 Yes였고, 고민 끝에(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지금의 우리처럼 한국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결국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길 위에 설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본 계획대로 여행을 좀 더 지속하기로 마음 다잡았다고 한다. 다음 그의 목적지는 파키스탄. 그래서 지금 암리차르로 가는 기차편을 구하러 왔다고(마찬가지로 좌석 상황은 그 역시 썩 좋지 않다고 했다). 음...

 

그와 몇 마디 더 나누고 그의 싸이 주소를 받아들고 그의 앞에 펼쳐진 나머지 여행길이 끝까지 부디 순탄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인연이 닿는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 인사를 나눴다(그는 이후 긴 여행을 모두 마치고 무사 귀국하였다). 

 

 

뜻밖에도 위와 같은 예약 용지를 작성하여(그것도 각기 다른 날짜와 좌석 등급으로 몇 장을 만들어서 빠꾸 당할 때마다 한 장씩 차례로 내밀었다 ㅋㅋ) 데스크의 근엄한 아저씨에게 내밀었더니, 컴퓨터 자판을 나 뺨치는 독수리 타법으로 한참 두들기던 아저씨 왈, 12월 7일 일요일, 즉 모레 밤에 출발하는 해당편의 2A 좌석이 남아있다고 했다(어라, 좀 전에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았을 땐 분명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김원장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저 첫 줄에 의사라고 체크해서 그런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 둘의 눈빛과 몇 마디 말이 순식간에 오간 끝에 2A의 가격 압박에도 불구하고, 저 티켓을 놓치면 비행기를 타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과감히 지르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그리하여 델리에서 고락푸르까지 (인도여행)사상처음 ^^; 2A를 선택한 우리 둘의 총 비용은 거금 2278루피(대략 1인당 28,000원). 비용을 치르기 전까지는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일까 자신 없기도 했지만 막상 2A 티켓을 받아들고 나니 이젠 인도를 떠나는 기차표를 획득해내는데 성공했다는 뿌듯한 안도감과 처음 타보는 2A 등급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들뜬 행복한 마음으로 역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자, 이제 기차표는 해결했으니 다음엔 비행기 일정를 땡겨봐야지. 뉴델리역사 앞 프리페이드 오토릭샤 부스에서 론리플래닛에 타이 항공 델리지점 위치를 찾아내 거기까지 85루피에 가기로 했다(프리페이드 시스템이 얼마나 공정한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시세를 잘 모르는 구간을 이동하게 될 경우에는 유용하게 쓸 수 있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를 떠나 네팔로 향하는 2A 티켓을 복대에 품고 있는 이 순간, 김원장도 기분이 좋았는지 신호에 걸린 오토릭샤가 한 사거리에 잠시 정차했을 때 적선을 바라고 몰려드는 한 떼의 어린아이 중 한 아이에게서 볼펜 한 자루를 사주라고 했다. 꼬질꼬질했지만 커다란 눈망울이 때록거리던 그 여자아이는 조잡해 보이는 볼펜을 자루당 10루피에 팔고 있었는데, 내가 김원장의 청에 뒤적뒤적 돈을 찾는 시늉을 하자 얼른 20루피! 라고 가격을 바꿔 부르더라.

아이고, 요 계집애야, 그러다 그나마 있는 손님마저 잃는다. 내가 웃으면서 10루피만 하자~ 응? 하니 아쉬운 듯 망설이다 결국 10루피에 볼펜 한 자루를 건네 주었다.

 

 

론리플래닛에 표기된, 타이 항공이 입점하고 있다는 호텔 이름이 그간 바뀌었던 탓에 잠시 옆 호텔 내부를 헤매는 일이 있었지만 하여간 무사히, 델리 부촌에 위치한(그래서 평소 올 일이 없는 동네 ^^;) 타이 항공 델리 지점에 도착했다. 일정 바꾸기를 워낙 즐겨하는 ^^; 김원장 덕에 정말 여러 나라의 타이 항공 지점에 전화하고 방문하게 되는구나. 한껏 고급스런 사무실에 안 어울리는 추레한 몰골로 일단 도착하긴 했지만 아직도 맘을 확정하지 못한(몸 상태가 좋아지니 본인도 흔들리는 듯) 김원장 때문에 계속 이럴까 저럴까를 반복하다가 결국 12월 27일로 예정되어 있던 카트만두발 방콕행 한 구간만 최대한 일정을 당기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방콕은 또 맘에 드는지 끝내 방콕->한국행은 안 건드리더라. 여차하면 방콕가서 그 주변국 여행을 하겠다나 뭐라나 -_-;).     

 

# 김원장 몰래(=눈에 잘 띄는 다른 색으로) 한 마디 하자면, 동유럽을 여행 중이던 이 몇 개월 전에는 갑자기 여정에 없던 인도를 가고 싶다며, 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도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다는) 방콕행 항공편을 구했던 그였다. 그런데 here and now 그렇게 노래 부르던 인도를 여행하고 있는데, 뭐라고라, 이번엔 방콕으로 가서 그 주변국을 돌겠다고라?  

한 마디만 더 하자면, 그 때 그래서, 인도를 가겠다고 박박 우겨서 방콕으로 일단 건너온 뒤 어땠나? 결국 끝내 인도는 가지 않은 채 태국에서 한 달이나 뒹굴지 않았던가? 여기서 다시 한 번, 그런데 뭐라고라, 방콕으로 가서 그 주변국을 돌겠다고라? -_-;

 
출발
도착
Departure
Arrival
Class
클래스

Date
날짜

Time
시간

Terminal
터미널

Status
예약상태

Seat No
좌석번호

Not Valid
유효기간

Baggage
Allowance
무료수하물
허용량

Reference
예약번호

Before
시작

After
종료

SEOUL ICN
BANGKOK BKK

V

29OCT08

29OCT08

08:25
12:15

 

 

OK

 

 

29JAN

20K

 

TG 659 FareBasis 운임 V1LEE3M     THAI AIRWAYS
BANGKOK BKK
KATHMANDU KTM

V

29OCT08

29OCT08

13:15
15:30

 

 

OK

 

 

29JAN

20K

 

TG 335 FareBasis 운임 V1LEE3M     THAI AIRWAYS
KATHMANDU KTM
BANGKOK BKK

V

27DEC08

27DEC08

13:55
18:20

 

 

OK

 

 

29JAN

20K

 

TG 320 FareBasis 운임 V1LEE3M     THAI AIRWAYS
BANGKOK BKK
SEOUL ICN

경유 : HONG KONG(HKG)

V

30DEC08

30DEC08

10:30
19:55

 

 

OK

 

 

29JAN

20K

 

TG 628 FareBasis 운임 V1LEE3M     THAI AIRWAYS
<워낙의 두 달 짜리 일정>
    

기차편과 마찬가지로 항공편 역시 좌석 상황은 썩 좋지 않았고(물어보니 아직 방콕 공항의 상황이 좋지 않은지, 좌석이 가능한 날짜로 일정을 바꿔주기는 하는데 출발 전에 다시금 확인해 보라고 하더라) 그리하여 현재로서 가장 빠른 날짜는 13일, 다음 주 토요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원 일정에서 딱 2주가 줄어드는 셈이었는데(흑흑, 그 2주는 원래 라자스탄꺼였다고!), 방금 전 우리가 구입한 기차표로는 별 사건만 안 일어난다면 8일 카트만두에 입성을 하게 될테니 이번엔 카트만두에서 며칠이고 기다려야만 한다는 소리였다(안 되는 영어로 힘들게 변경을 하고 있는 내 옆에서 김원장은 일단 오늘은 이렇게 바꾸고 카트만두 가서 상황이 바뀌어 더 빠른 날짜가 생기면 또 다시 바꾸자는 말을 해서 내 원성을 샀다). 어쨌든 김원장~ 일단 이 안으로 오케이? 김원장 왈, 어차피 며칠을 지내야 한다면 델리 파하르간지보다는 카트만두 타멜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하네. 그래서 카트만두발 방콕행 한 구간 티켓을 13일로 변경 확정!  

 

아침부터 지금껏 빨빨거리고 기차표 두 장 사고 비행기표 두 장 바꾸니 뭔가 큰 일이라도 해낸 듯 진이 다 빠진다. 그래도 주말이 오기 전에 일을 다 끝내서 다행이다. 이제 점심 먹으러 가자! 목적지는 우리 입에 익숙한 먹거리가 몰려있는 코넛 플레이스. 뉴델리역/파하르간지에서 코넛 플레이스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인데 역시나 오토릭샤 아저씨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어이, 아저씨, 우리 방금 전에 그 근처에서 85루피 내고 왔거든요? 80루피에 최종 흥정을 마치고 출발. 결국 꼭 우리 뜻대로 갈 것을 왜 매번 일단 비싸게 부르고 보는지 ㅋ 아저씨도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는 거죠? 

   

<심심찮게 보는 교통 사고 현장. 이 나라에선 차선이 별 의미가 없는 듯>

<우리에게 관광이란 오토릭샤 안에서 대충 건성으로 하는 것 ㅋ>

 

점심은 티켓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기로, 두둥!

거긴,

KFC -_-;

(인도에선 여전히 고급으로 분류되는)

<뭐 이딴 사진을 찍었지? 남들이 그러는데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낫다고>

(고급 레스토랑이라 그런가. 내 행색이 제일 T_T)

<짠돌이 김원장은 보통 이런데 오면 1인분만 시켜서 나눠 먹자고 해요, 그런데 이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2인분 시켜서 때려먹었답니다>

(지금 계산해 보니 얼마 되지도 않는구만, 현지에 있다보면 KFC는 실제로 아무나 들어와 먹지도 못하고 넘 비싸게 느껴져서. 흑)

 

그리고 룰루랄라 숙소까지 걸어오면서 물어보는 곳마다 가격이 다른 땅콩을 수도 없이 사먹고

수입물건 파는 업소 찾아가서 참치캔(95루피) 하나 사고 시장가서 이런저런 야채들이랑 점방 가서 물이랑 휴지랑 사가지고 들어와

저녁은 참치김치찌개 보글보글,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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