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일정은 종종 바뀌게 마련이다
오만은 우리나라와 주행방향이 같은데다가 오토매틱 차량을 가져다 준다고 했고 무엇보다 해외에서의 렌트 자체가 두번째 경험이었기 때문에 남아프리카때보다는 이래저래 한결 마음이 편했다(다만 그때보다 운전자들이 다소 레이싱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마는).
<뭔가 주의사항을 듣고 있는 것일까? 김원장 왼편의 오만 남성은 렌트카 업체 마케팅 매니저라는 Sulaiyam Al Mahry. 한번에 발음이 잘 안 되는 이름>
시작은 계획대로 되어가는 듯 했다. 9시에 인수받은 차량은 하얀색 닛산 Tiida 모델로 예상보다 큰 놈이었다(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유명업체의 B~D등급에까지도 포함되는 모델로 보통 하루에 17~18리알을 청구하는 놈이더라. 거기에 보험등의 명목으로 3리알/일 가량의 추가 요금까지 받아간다). 남아프리카에서의 독일제 차량 렌트에 이어 이번에는 일제 차량이라... ㅎㅎ 나름 시승 분위기 형성.
뒷좌석에 배낭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가벼운 몸으로 차에 오르니 순식간에 여행이 럭셔리해지는 느낌이다. 흠, 돈 좀 쓰니 갑자기 여행이 확 달라지는데?
<이 때만 해도 적응 안 되던 저 조합. 하얀 원피스를 입은 남성+익숙하지 않은 모자+쓰레빠(여기엔 슬리퍼보다 쓰레빠가 더 어울린다)+최신 휴대폰>
차를 몰고 근처 서점에 가서 그럭저럭 쓸만한 지도를 구입한 뒤(3.5리알) 길을 짚어가며 더듬더듬 루위 버스 터미널(Ruwi Bus Station)까지 찾아간다(이 동네에 로터리가 워낙 많은지라 정신 사납다). 루위는 상업지구라더니 더욱 삐까뻔쩍하다. 내가 그간 오만을 우습게 봤군.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알려진 바가 없는 국가인지라 막연히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엔도 땡, 내가 틀렸다. 옆에서 김원장이 말하길,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나.
루위 버스 터미널을 코 앞에 두고도 차량도 막히고 주차할 곳도 찾지 못해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차를 세우고 금요일 오전 6시 버스를 예매한다(루위-살랄라 편도 7.5리알/인). 마침 터미널 근처에 중국식품점이 있어 구경삼아 들어가봤다가 너무 반갑게도 우리나라 라면들을 발견하고 신라면, 김치라면, 너구리를 두 개씩 구입한다(개당 750원 가량). 우리나라 라면이 이제 중국인의 입맛까지 휘어잡은 것인지? 귀한 라면을 뒷 좌석에 쟁여두고 다시 출발. ㅎㅎ 차가 좋긴 좋구나.
다음 계획으로는 나칼에 갈 차례인데
커다란 수퍼 속 진열대 사이사이를 에스자 모양으로 돌면서 과일도 사고 후라이드 치킨도 사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그만 샛길로 빠지고 나칼로 가야겠다.
나칼의 근사한 요새에 올라 장봐온 먹거리로 점심을 차려먹는다. 처음엔 그다지 높은 곳에 위치하지 않은 요새의 입지를 보고 이게 무슨 요새인가 싶었는데, 망루에 직접 올라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 워낙 이 지대가 평평한지라 굳이 산꼭대기나 중턱에 짓지 않아도 문제 없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흘러 요새 본연의 존재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이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참 좋은 것만은 여전하다.
마음껏 천천히 요새를 둘러본다. 이제 남아있는 오후 일정이라고는 이 곳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 니즈와까지만 가면 되니 급히 서두를 일도 없다. 하지만 3월말 현재, 벌써 한낮의 기온이 상당히 올라가 주는지라 바람부는 그늘이 아니라면 차라리 에어컨 빵빵한 차 안이 더 쾌적하다. 그만 출발하자.
<오만 화장실의 남녀 구분 표식. 죽인다>
눈앞에 펼쳐진 비포장도로의 수준은 나미비아의 그것과 비교하여 그다지 나쁠 것도 없어보이긴 했지만, 문제는 이 도로를 이용해 평지가 아닌 높은 산맥을 가로질러 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길로 산을 넘는 70Km를??? 그러다 차에 문제라도 생기면? 김원장이 잠시 고민해 보더니 결국 빙 둘러가더라도 포장도로를 이용하잔다. 오호, 그러면 상당히 주행거리가 늘어날텐데? 그래도 그 편이 낫겠단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돌아가자.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나칼과 바르카를 지나 무스캇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다 마침내 무스캇과 니즈와 사이의 갈림길에 이르러 니즈와쪽으로 빠진다. 그래도 앞으로 100여 Km는 훨씬 더 가야 니즈와에 도착할 수 있다. 김원장이 다소 피곤해 보이긴 한다만 이 속도라면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내일 우리의 계획상으로는 남부의 수르(Sur)쪽으로 가야하는데, 오늘 저녁 니즈와에 갔다가 내일 다시 수르 근교를 여행하려면 마찬가지로 7~80Km는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되면 오늘의 피로가 채 풀리기도 전에 내일 다시 장거리를 뛰어야 하므로 그다지 예쁘지 않은 일정이 되고만다.
우리는 다시 일정을 바꾸어 니즈와를 포기하기로 한다. 대신 오늘 수르 방향으로 달리다 적당한 도시가 나타나면 그 곳에서 묵자.
그렇게 찾아온 곳이 바로 Ibra, 이 곳이다. 사실 적당한 도시고 뭐고 워낙 숙박업소가 갖추어진 마을이 드문지라(이 동네가 좀 척박해주셔야지) 선택의 여지없이 이브라에 묵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마침 도로변에 이브라 모텔 간판이 눈에 뜨였던지라 더 이상 숙소를 찾아볼 필요 도 없이(덧붙여 더 따지고 고르고 할 기운도 없이) 이 모텔로 기어들었다. 다행히 모텔은 먼저 방을 채 보기도 전에 가격부터 무척 마음에 들었다. ^^; 지방이라서인지 어제의 절반 수준인 1박 12.5리알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어떤 방보다도 큼지막하다. 바퀴벌레 새끼들이 몇 마리 보이는 것만 빼면 오케이.
“채널 40여개째 이렇게 연속으로 우중충하게 만들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푸헐, 이렇게 깰 수가!>
여기는 남서울 영동,이 아니라 아라비아반도 오만이다.
# onTC(Oman National Transport Co)의 루위-살랄라 버스는 1일 3회 운행한다. 12~13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고 하여 우리는 오전 6시 첫차를 예매했다. 사무실은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며 왕복 예정이라면 왕복표를 끊는 편이 때마다 편도를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www.ontcoman.com. onTC외에 다른 몇 회사도 살라라행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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