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고 있는 매슬로우의 인간의 욕구 5단계 피라미드를 장기 여행과 접목시켜 생각해 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나는 여행=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일상 생활이 아닌, 지극히 비일상스러운 일 중 하나가 여행이라는 말이다. 휴학을 하거나 직장을 때려치고, 적금을 깨거나 전세금을 빼어들고, 내 인생 최대의 이벤트라 생각하고 떠난 장기 여행도 그 기간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곧 일상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 온다. 대부분의 장기 여행자들이 그런 증상을 겪으면서 흔히 향수병이라 표현을 하기도 한다.

 

다시 피라미드로 돌아가 보자.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에의 욕구, 총 5단계가 있다. 이 중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 욕구가 충족이 되면, 사람들 마음속엔 존경 욕구와 자아실현에의 욕구가 고개를 들게 된다. 그 욕구 해소의 한 방편으로 장/단기 여행을 선택하기도 한다(물론 기초 3단계가 해결이 안 되었는데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도피성이니 뭐니 한다). 이 중 단기 여행은 대부분 기초 3단계가 흔들리기 전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장기 여행의 경우에는 어느 순간 소속감도 사라지고 안전하지도 않고 심지어 생리적 문제까지 발생하는 상황에 닥치게 된다. 그럼 매슬로우의 피라미드에 따라 기초 3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된다. 그럴 땐 어찌해야 하는가?

 

그럴 땐 내게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 즉 기초 3단계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한국으로의 귀국이 되거나 혹은 유목민으로서 떠돌아 다님을 멈추는 상태, 즉 정착민으로서의 귀의로 해결할 수 있지만(실제 우리 주변에 제법 알려진 장기 여행자 중에 이제는 여행을 안 하거나 혹은 여행 중 타지에 잠시 정착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장기 여행자들은 너무나 큰 것을 투자하고(혹은 놓아버리고) 떠나온 상태이기에 그런 멜랑꼴리한 감정에 기대어 섣불리 쉽게 귀국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여행을 일상으로 해내는 것이다(다행히 우리의 일상을 뒤돌아 보면, 일상 속에서도 문득문득 빛나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다, 그래서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속에서도 문득문득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곳에 더 이상 처음같은 자극은 적게 마련이다).

 

지금의 나(와 김원장)로 말하자면, 돈은 없고 시간만 많은 학생 시절을 지나, 혹은 돈은 있으나 시간이 없는 직장인 시절을 지나, 돈도 있고 시간도 낼 수 있는 자영업자 신분이므로 이제는 원할 때 떠날 수 있고, 다시 원할 때(즉 비일상의 이벤트격 여행이 일상으로 변해가는 순간에)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경험상 김원장은 요즘 그 기간이 3주 정도이다. 나의 이론대로라면 앞으로는 그 기간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한국의 일상 생활에서 1, 2, 3, 혹은 4단계까지의 욕구를 충족하고 살면서 5단계에 대한 욕구를 끊임없이 지니고 살다가, 막상 5단계가 채워지면 이번엔 다시 흔들리는 1, 2, 3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현재의 상태. 일견 완벽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100% 만족스러운가? 

 

결국 이 모든 것이 팔랑거리는 마음의 장난이 아니련가. 순환적이던 직선적이던 욕구는 끝이 없는 것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