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 중엔 아빠를 더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생김새를 따지자면 엄마를 더 닮았겠지만(엄마가 미인이니까 엄마를 닮았다고 우기고 싶지만),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아빠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나 여행을 좋아하는 면은 아빠를 꼭 빼닮았습니다. 우리 엄마로 말하자면, 여기서 편안히 앉아 TV로 설명 곁들어 자세히 보지, 왜 힘들게 거기까지 낑낑거리고 찾아가서 보냐는 논리주의자거든요. -_-;

 

실제 직통 DNA를 떠나 방계로 나서면, 그 폭은 더욱 넓어집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제 외할아버지는 여행을 사랑하셨습니다. 솔직히 여행을 사랑하셨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보낸 건 아니지만, 지금도 친정집에는 제가 갓 태어났을 때쯤, 할아버지가 시집 간 막내딸(울 엄마)에게 보낸, 조사와 영어 단어 몇 빼고는 모두 한자인 엽서가 한 장 있습니다.

 

그 엽서는 해외 여행 중 피지에서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보내신 겁니다. 지금은 직항 노선도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지는 우리나라에서 따로 찾아 가기도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나이를 고려해보자면, 자그마치 30여 년 전의 피지라니요!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엔 3남 4녀가 태어났는데, 그 순서는 이렇습니다.

아들, 딸, 아들, 딸, 딸, 딸(울 엄마), 아들.

(참고로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열을 낳아 그 중 다섯을 길러내신 것에 비해,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대로 모두 무사히 길러내셨습니다).

 

이 중에서도 큰 이모는 할아버지의 재능을 고스란히, 혹은 그 이상 가지셨던 분이라 자라면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큰 이모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의사시면서, 작가시면서, 화가시거든요.

 

그래서 우리 외가 사촌들 중 계집 아이들은 자라면서 학교 성적이 좋을 때마다, 글을 잘 써서 상을 받거나, 그림을 잘 그려도 얘는 큰 이모(혹은 큰고모)를 닮았네, 란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물론 그렇게 자란 아이들 중에 아무도 큰 이모처럼 동시는 커녕 의사나 작가나 화가로 따로 성장한 사촌들이 없으니 이모는 얼마나 대단하신지요.

 

어쨌거나 큰 이모는 의사, 작가, 화가 이외의 일에도 다재다능한 분이셨습니다. 뭐, 글로 다 옮기기 어려울 정도니까요. 얼마 전, 40년에 가까운 병원 생활을 드디어 정리하시고 은퇴를 결심하셨기에 제가 이모 싸이에 축하의 글을 올리자 이렇게 대답하셨지요(이모는 홈피 이외에 싸이도 하셨거든요).

 

이제 난 행복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참이다. 어디엔가로부터 해방된다는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다.  

 

그간 세계 안 가본 곳 없이 여행도 워낙 많이 하셨기에(요즘엔 여행 많이 다녀서 또 이모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엊그제 엄마로부터 이모가 세부에 가 계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하나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워낙 예전부터 병원 하시는 중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데다 골프도 잘 치시니까.. (알고보니 이번엔 국외에도 세컨드 하우스를 하나 알아보러 이모부랑 두 분이서만 출국하신 모양이어요) 그런데 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 일어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의식을 잃으셨다고요. 현지 병원에선 뇌동맥류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어제 결국,

이모는 단 하루 만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길로 떠나셨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정말 많았는데, 정리도 잘 안 되고요.

 

이모,

 

딱 한 번만 더 뵙고 싶어요...

드리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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